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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퇴계 이황의 마지막 선물, 《성학십도》

《성학십도》, 드림아이, 태동출판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천 원권 지폐의 앞면에 나오는 도산서원의 주인공, 퇴계 이황.

그가 17살의 어린 임금을 걱정하며 마지막 충정으로 바친 책이 있으니, 바로 《성학십도》다. 이 책은 성학(性學), 곧 성리학을 잘 깨우칠 수 있는 열 개의 그림을 엄선한 것으로, 어린 임금도 쉽게 그 이치를 살펴 바른 정치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하면 ‘성리학 인포그래픽(데이터 시각화 인포메이션 그래픽)’쯤 될까? 퇴계 이황은 성리학의 주요 내용을 도표로 정리한 것은 물론, 형이상학적인 관념 체계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성껏 그림을 그렸다. 퇴계 이황 같은 성리학의 대가가 평생 쌓아 올린 학문적 성취를 열 장의 그림으로 압축한 ‘족집게 과외’를 받을 수 있었던 선조는 운이 좋은 임금이었다.

 

성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고 닦아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사단칠정(士端七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단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를 일컫고 칠정은 희, 로(노여움), 애(슬픔), 락, 애(사랑), 오, 욕의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천변만화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10개의 그림 가운데 7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그림에서 골라 넣은 것이고, 제6도인 심통성정도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것이다. 제3도 소학도와 제5도 백록공규도, 제10도인 숙흥야매잠도는 글만 있는 것을 새롭게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단순히 그림만 담은 것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반드시 앞부분에 경서와 여러 성현의 글 가운데 적합한 내용을 골라 인용하고, 이황 본인의 생각도 펼쳐 도를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제3도인 소학도는 《소학(小學)》이라는 책의 서문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소학은 송나라 주희(1130~200)가 지은 어린이용 책으로, 그 내용이 단순하지만 깨우침을 주는 바가 많아 조선 선비들 가운데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소학을 늘 읽는 이들이 많았다.

 

소학도에 나오는 주요 덕목은 명륜((明倫), 인간의 질서를 밝힘), 경신(敬身, 어른을 공경하고 몸을 삼감), 계고(稽古, 성현들의 행적을 깊이 살핌), 가언(嘉言, 좋은 말을 함), 선행(善行, 올바른 행동을 함) 등이 있었다. 소학에서 강조한 부분에는 ‘청소’도 있었는데, 항상 주변을 청소하여 청결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과 같으며, 주변이 맑고 깨끗해야 자신도 깨끗해지는 법이라 하였다.

 

제4도인 대학도는 조선의 개국공신 권근이 그린 대학도를 이황이 조금 고쳐 넣은 것이다. 경전 《대학(大學)》의 주요 골자인 3강령 8조목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3강령은 밝은 덕을 밝히고(명명덕), 백성을 새롭게 하며(신민),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것(지어선)이었다. 그리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였다.

 

복잡한 내용을 이렇게 간단하게 도표로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황이 누군가? 당대 으뜸 석학이자 기대승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을 통해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선비다. 그는 숨을 거두기 2년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책을 써서 임금에게 바쳤다. 68살의 이황은 17살의 선조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p.110-111)

자사자(子思子)가 이르기를, ‘도(道)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삼가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고 하였고, 또 ‘은밀한 곳보다 잘 드러나는 곳이 없고, 세미(細微)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장소와 때를 막론하고 존양(存養)하고 성찰하여 그 공부에 힘쓰게 하는 법입니다.”

“과연 그처럼 할 수만 있다면…”

“어느 영역에서나 털끝만큼의 과오마저 없게 될 것이며, 어느 때나 순간의 끊임마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인이 되는 요결, 그것이 바로 여기에 있사옵니다!”

 

선조는 이에 화답하듯 성학십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항상 가까이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선조의 모습은 그리 빼어난 군주는 아니다. 방계 혈통에 대한 열등감 탓인지 용렬한 모습을 자주 보였으니, 이황의 맞춤형 과외도 크게 효과를 보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성학십도 병풍을 가까이했기에 그나마 그 정도에 그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성학십도 병풍, 이것이 오늘날 한글판으로 만들어져 보급된다면 어떨까. 이성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영원한 숙제다. 마지막까지 나라를 근심하며 어린 임금을 바른길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퇴계 이황,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