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코로나19 위기로 온 나라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확진자가 자가격리를 어기는 일이 벌어져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슈퍼전자파’로 지목된 31번 확진자는 자가격리 조치를 통보받고도 다음 날 고속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에 있는 딸 집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국립발레단 한 단원은 자가격리 기간 중 해외여행을 다녀왔는가 하면, 격리조치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카페 영업하다 발각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대구경북 자가격리자를 GPS로 관리하고, 위치이탈 시 경보가 울리는 대책을 내놓았지요. 또 개정된 ‘감염병 예방ㆍ관리법’에 따르면 자가격리나 입원치료 조치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확진자가 자가격리를 위반하는 일은 요즘의 일만은 아닌가 봅니다. 동아일보 1927년 7월 9일 치 “유행기에 드러가는 전염법예방법”이란 기사를 보면 위생국에서 장티푸스 보균자로 확인하여 거주제한을 명령받고도 이를 어기고 산과의원에 가서 밥을 지어주고 있던 중 그 병원에 장티푸스 환자가 끊임없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개구리가 칩거 생활에서 풀려나며 파안대소하네 반기룡 시인의 “경칩”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이지요. 원래 이름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 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했었는데 뒤에 한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 BC 157~141)의 휘(諱, 곧 이름)에 '啓'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어 이것을 피하려고 비슷한 뜻의 '驚(경)'으로 바꾸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겨울잠 자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지요.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때임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2월 27일 문화재청은 약 1,500년 전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파손되지 않고 완벽한 한 짝으로 출토된 거북장식 가야도기 1건을 보물로 지정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야도기는 바로 보물 제2059호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과 목짧은항아리”로 복천동 11호분의 석실 서남쪽에서 출토되어 출토지가 명확한 5세기 유물입니다. 원통형 그릇받침은 특히 거북이 토우 한 마리가 앙증맞게 붙어있어서 눈에 띄지요. 이처럼 삼국시대 토우(土偶) 가운데 거북이 토우가 붙어있는 것은 이 도기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유물이 발굴된 부산 복천동 11호분은 1980~1981년까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석실분으로, 5세기 무렵 부산에 있었던 가야 세력의 수장급 인물의 무덤인데 가야 고분 가운데서는 보기 드물게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되었지요. 특히 이 그릇받침과 항아리는 규모가 크고 형태가 조화롭고 안정적인 점, 잿물이 자연스럽게 발라지고, 견고하게 제작된 점, 11단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다양한 종류의 구멍을 뚫고 물결과 지그재그 등 무늬를 새겨 조형성이 우수한 점 등 여러 면에서 가야도기의 특징과 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 수정같이 맑은 우물 펑펑 뚫으세 / 조상대대 자자손손 먹고살고 먹고살고 / 뚫으세 뚫으세 펑펑 뚫으세” 이 노래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우물치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전 사람들의 식수원은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마운 우물에서 물이 잘 나오도록 하고, 물이 맑아서 마을 사람들이 배탈 나지 않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빌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물치기”입니다. 마을에서는 동제(마을 공동의 제사)를 올리기 사흘 전 마을 공동우물을 찾아가 샘굿을 합니다. 물론 샘굿을 하기 직전에는 우물에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금줄을 칩니다. 그리고 우물 속에 빠져버린 끊어진 두레박이라든가 줄 따위를 말끔히 치워내고, 깨끗한 자갈을 다시 깔아 둡니다. 그런 다음 풍물패들이 우물에 다다르면 상쇠가 용왕님께 축문을 외웁니다. 축문을 외우고 난 뒤 노래를 부르고 풍물을 치며, 우물을 몇 바퀴 돕니다. 그러면 이 우물은 신성한 생명수의 원천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금줄을 거두고 누구나 우물에서 물을 퍼 갈 수 있습니다. 수돗물을 마시는 지금 이 수돗물도 믿을 수 없다며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 가슴 속 저 밑바닥 속 / 한 줌 한도 꺼내 말린다 / 비바람 치는 날 / 바닷속 헤매며 떠올리던 꿈 / 누구에게 주려 했는가 / 오늘도 불턱에 지핀 장작불에 / 무명옷 말리며 / 바람 잦길 비는 해녀 순이" - 김승기 ‘불턱’- “여기서 불 초멍 속말도 허구, 세상 돌아가는 말도 듣고 했쥬.” 제주 해녀는 ‘붙턱’에 대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무자맥질해서 작업하다가 언 몸을 녹이기 위하여 불을 피워 몸을 녹이기 위해서 바닷가에 돌을 둥그렇거나 네모나게 쌓아 만든 공간을 말합니다. 이곳 불턱에서 해녀들은 불을 쬐면서 속에 있는 말들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말들도 얻어듣곤 했습니다. 보통은 제주에 많은 돌로 담을 쌓아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바닷가에 설치한 해녀들의 탈의장이었지요. 예전 해녀들은 물소중이 또는 ‘잠수옷ㆍ잠녀옷ㆍ물옷’ 따위로 불렸던 옷을 입고 바닷속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입고 벗기가 편하게 만들었던 이 물소중이는 자주 물 밖으로 나와 불을 쬐어 체온을 높여야 했지요. 그런 까닭으로 제주에는 바닷가 마을마다 여러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에서도 박사가 되랴면 전과 가티 성균관 가튼 데만 다녀서는 안된다. 적어도 관립전문학교나 또는 경성대학 가튼 곳을 졸업한 다음에 무엇을 또 연구하야 론문을 제출하고 그것이 입격이 되여야 명색 박사가 될 것이다. (중략) 그것도 년수가 너무 멀어서 각갑하거던 남에게 구걸을 하야서라도 돈을 몃 백원만 주선하야 손쉽게 박사 운동을 하여라. 그러면 그럿케 실패는 하지 안을 것이다. (중략) 현재 조선에도 법학통론(法通) 한 권 못 사본 사람도 법학사가 되고 우주관(宇宙觀)이니 인생관(人生觀)이니 하는 문자 한아를 몰나도 철학박사된 일이 만치 안으냐.”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47호(1932년 01월 01일 발행)에 나온 “대풍자! 대희학, 현대 조선 10대 발명품 신제조법” 가운데 “제4 박사 제조법”이란 글입니다. 당시에도 법학통론 한 권 안 본 사람이 법학박사가 되고, 우주관이란 글자 하나 몰라도 철학박사가 되었다니 박사학위의 허술함이 엿보입니다. 최근엔 한 대학 총장이 가짜 박사학위를 명함에 찍어서 다녀 말썽이 나기도 했지요. 박사(博士)는 원래 고대에 전문 학자나 기술자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습니다. 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며칠 전 국립공원공단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는 “국립공원 봄꽃…복수초 시작으로 작년보다 보름 빨라”라는 제목이 보였습니다. 지금 온 나라는 코로나19로 온통 난리입니다만 자연은 태연하게 봄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복수초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꽃이 복수를 하나?”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는 원한을 갚는 복수(復讐)가 아니라 복수(福壽) 곧 복과 목숨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복수초’ 대신 ‘얼음새꽃’으로 부르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예쁜 우리말 이름을 놔두고 일본식을 따라 부르는 것은 큰개불알꽃,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 갈고리 따위도 있습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을 펴낸 이윤옥 작가는 “푸른 꽃잎이 4장 달린 ‘큰개불알꽃’은 유럽이 원산지로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니아 등에 귀화식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 최초로 정착이 확인된 것은 1887년 명치 때 일이다.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았다고 해서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노 토미타로우(牧野 富太郎 1862~1957)가 이누노후구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얼음이 얼어붙는 추운 날에 거동하면 몸을 상하게 할 염려가 이미 적지 않고, 더군다나 지금은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니, 모시고 따라가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재소(齋所, 제사 지내는 곳)에서 밤을 지낼 수가 없고, 빽빽하게 따르는 군졸들 또한 어찌 모두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길을 가득 메우고 임금의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또한 병에 전염되지 않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며, 수레가 지나가는 길 좌우에 또한 반드시 바야흐로 병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숙종실록》 숙종 24년(1698년) 12월 12일 기록으로 돌림병(전염병)이 심해지니 임금이 거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온 나라에 코로나19가 퍼져가고 있음 사람들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어땠을까요? 검색어로 살펴보니 전염병 702건, 여역(癘疫) 418건, 염병(染病, 장티푸스) 154건, 천연두 74건, 여기(癘氣) 47건, 역병(疫病) 27건, 홍역 17건 등이 나왔습니다. 특히 《영조실록》 영조 19년(1743년) 12월 29일 기록에는 “이 해에 여러 도에 여기(癘氣)가 크게 번져 사망자가 6, 7만 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세황이 태어난 지 300해가 되던 때인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왕릉을 지키는 벼슬인 능참봉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그러나 이 초고속 승진은 누가 뒤를 보아준 덕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강세황에게는 자신이 직접 그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강세황 자화상을 비롯한 몇 점의 초상화가 전해옵니다. 특히 개인 소장인 보물 590-2호 ‘강세황상’은 정조 임금이 아끼던 신하 강세황이 71살이 되어 기로소(조선시대 고위 퇴임관리들의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구)에 들어간 것을 기려 궁중화가인 이명기에게 명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위에는 정조가 짓고, 문신 조윤형이 쓴 제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초 이후 왕실에 공헌한 신하들을 위해 궁중화가를 시켜 그리던 공신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요. 다만, 이 작품은 전통적인 화풍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재필 박사는 남 먼저 자전차를 타고 다니엿다. 그는 갑신년 김옥균 정변 때 멀니 미국에 망명하야 그 나라에 입적까지 하엿다가 그후 13년만에 정부의 초빙에 의하야 귀국함에 미국에서 타던 자전차를 가지고 와서 타고 다니엿는데 그때에 윤치호 씨는 그에게 자전차 타는 법을 배워가지고 또 미국에 주문을 하야다가 타고 다니엿다. 우에 말한 것과 가티 그 때만 하야도 아즉 일반의 지식이 몽매한 까닭에 그들의 자전타 차고 다니는 것을 보고 퍽 신기하게 생각하야 별별 말을 다 하되 서 씨는 서양에 가서 양인의 축지법을 배워가지고 하루에 몃 백리 몃 천리를 마음대로 다니더니 윤 씨는 대데가전의 차력약(借力藥)이 잇서서 남대문을 마음대로 훌훌 뛰여 넘어 다니녀니하고 또 자전차를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지여섯다.”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6~17호(1928년 12월 1일 발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축지법을 써서 하루 몇백 리 몇천 리를 마음대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한말 조선에 온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이 1908년 펴낸 책 《조선견문기》에도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처음 탄 이야기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