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집에 찾아온 이 도령이 신분을 감추고 월매를 만나려 하자, “내 신수 불길해서 금옥같이 기른 딸 옥중에다 넣어두고, 명재경각이 되었는데, 무슨 정황이 있어 만나겠는가?”하며 월매가 거절하는 대목과 기어이 만나야하겠다는 이도령과의 대화 장면을 소개하였다. 김세종제 소리제에는 걸인이 와서 동냥 달라는 줄 알고,“ 물색 모르는 저 걸인, 알심 없는 저 걸인, 나의 소문을 못 들었나, 동냥은 무슨 동냥? 동냥없네, 어서 가소,”로 부르고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 춘향 낭군 이몽룡이라는 신분이 밝혀지자, 월매는 좋아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창극은 막을 내리나, 그 후의 상황은 몽룡의 남루한 복색을 보고 내 딸 춘향이는 영락없이 죽게 되었다고 판단,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방성통곡으로 울음을 울게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동안 연습을 하고 힘겹게 무대에 올린 작품이니 만큼 1회성 공연으로 끝내지 말고, 내 각 시군이나 구청, 문화원, 초등학교 등을 순회하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우리의 멋과 가락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4색 판소리마당의 마지막 무대인 <놀보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시작이며, 봄이 옴을 알리는 “입춘(立春)”입니다. 입춘날에는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였는데 입춘첩을 다른 말로는 입춘축(立春祝)ㆍ춘축(春祝)ㆍ춘첩자(春帖子)ㆍ입춘서(立春書)ㆍ입춘방(立春榜)ㆍ춘방(春榜)이라고도 하지요. 글귀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새해에는 기쁜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랍니다.)",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따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우성전(禹性傳, 1542~ 1593)이 쓴 《계갑일록(癸甲日錄, 선조 16년-1583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입춘첩도 보입니다. “묵은 병은 이미 겨울을 따라 사라지고(舊疾巳隨殘盡) 경사로운 징조는 이른 봄을 좇아 생겨나네(休祥遠早春生)” 입춘이 되면 묵은 병은 사라지고, 경사로운 징조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의 입춘에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란 세시풍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4색의 판소리마당 가운데 춘향전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어사상봉대목에 대한 이야기였다. 월매와 향단이가 정화수를 받쳐 놓고 정성을 다해 비는 대목은 슬픔이 극대화되어 처절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을 제공하고, 반전의 기회를 만드는 대목이 바로 어사상봉대목이라는 이야기, 딸 춘향을 위해 정성을 다해 비는 월매의 모습을 대문 밖에서 살피던 이몽룡은 스스로가 어사된 것이 우리 선영의 덕인 줄만 알았더니 우리 장모와 향단이 비는 덕이 절반이 훨씬 더 된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장모를 불러내고자 하는 이도령의 끈질긴 요구와 안에서 버티는 월매와의 신경전이 향단을 중간에 놓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부분이라는 이야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도령의 ‘나와라’와 월매의 ‘못나간다’의 신경전이 향단의 심부름을 통해 웃음을 제공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대목이 슬픔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던 관객들을 한바탕 웃게 만들어 주는 대목이 된다는 점, 이러한 의미에서 월매와 이도령의 대화를 이어주는 향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 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7년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지난 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해 온 국민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밝아온 새해는 지난해의 시름을 떨쳐 버리고, 힘찬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설날,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세배를 하고 성묘를 하며, 정을 다진다. 또 온 겨레는 “온보기”를 하기 위해 민족대이동을 하느라 길은 북새통이다. “온보기”라 한 것은 예전엔 만나기가 어렵던 친정어머니와 시집 간 딸이 명절 뒤에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보기”에 견주어 지금은 중간이 아니라 친정 또는 고향에 가서 만나기에 온보기인 것이다. 설날의 말밑들 그러면 “설날”이란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먼저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 ~ 1628년)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 했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리다',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는 설을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본다. 또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말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큰 명절 설날이지요. 설날 음식 가운데 떡국이 반드시 들어가는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떡국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떡국은 집에서 가래떡을 만들어 끓여먹었는데 가래떡은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여러 번 쳐서 둥글고 길게 떡을 뽑아 만들었지요. 떡메로 여러 번 쳐대기 때문에 떡이 차져서 쫄깃 거렸지만 지금은 거의 떡국용 떡을 편의점에서 사다 끓이는 집이 많습니다. 가래떡이란 말의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그 유래 가운데 한 가지는 '가래'라는 낱말이 '떡이나 엿 따위를 둥글고 길게 늘려 만든 토막'이라는 뜻이 있는데 가래떡의 모양이 이와 같아서 가래떡이라 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밖에 농기구 '가래'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한 갈래 두 갈래 할 때의 갈래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가래떡은 떡국 말고도 떡볶이의 주재료이며, 떡꼬치로 해먹기도 하고, 간단하게 꿀이나 엿, 또는 간장이나 참기름에 찍어 먹기도 하고 살짝 구워서 먹기도 하며, 떡산적・떡찜 따위를 해먹기도 합니다. 풍어제에서는 용떡이라고 해서 가래떡을 굵고 길게 뽑아내어 고사를 지내기도 하지요. 요즘은 흰떡이 아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4색의 창극 가운데 심청가의 한 대목인 뺑파전을 소개하였다. 뺑파역을 아주 멋스럽게 열연한 세천향 민속예술단원 손미영, 심봉사 역의 정성룡, 황봉사 역의 오영지, 그리고 도창의 이준아 등이 최선을 다해 열연하였다는 이야기, 심청가는 봉사 아버지를 위해 팔려간다는 심청의 효심을 극대화하한 이야기로 곽씨 부인과 심청이를 떠나보낸 심봉사가 슬픔에 젖어 살다가 주위의 권유로 뺑덕이(뺑파)라는 여인을 맞이하게 되고, 그 이후 갖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바로 뺑파전이며 뺑파의 등장으로 인해 극의 분위기가 또 다른 웃음바다로 안내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의 전개나, 뺑파역, 황봉사의 역할을 맡은 소리꾼들이 창과 함께 실감나는 연기실력을 보여주어 시종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예를 들면 사또가 부른다는 소식을 접한 심봉사 “사또가 나하고 골프를 치자는 얘기인가! 바둑이나 두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그나 하자는 것이것제”한다든가, 뺑덕이네가 “당신이 사회발전의 비젼을 갖고 있어 부르겄소? 하는 부분 등이 유머가 담긴 대사라는 점을 들었다. 또 곽씨 부인의 죽음이나, 홀로 젖을 얻어 먹이며 심청을 키우는 과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넷째로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입니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꼭 소한보다 더 춥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거나 걸렀지요. 또 죽을 먹는 다른 까닭은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의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을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지요. 그 절분의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되지요. 김영현의 소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 보면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4색 판소리마당>, 곧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가운데서 재미있는 한 토막을 중심으로 짤막짤막하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옴니버스 형태로 엮어 공연한 제1탄, 수궁가의 창극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원로 예술인들은 극중에서 합창이라든가 또는 풍물과 같은 연주를 맡아서 진행하였고 주로 젊은 소리꾼들이 주인공으로 분하였는데, 토끼의 역할에는 김예진 양, 별주부 역은 정소라 양, 그리고 여우의 역할은 조아라 양이 분장하였고, 많은 시민들과 특히 초등학생들이 주관객으로 참여해 의미가 깊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작창은 정순임 명창, 연출은 정경호, 음악감독에 정경옥 명창이 심혈을 기우려 만든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첫 번째 무대는 수궁가 중에서 토끼와 별주부가 만나는 대목에부터 함께 용궁으로 떠나가는 대목까지를 창과 연기로 꾸몄다는 이야기, 수궁가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용왕의 중병에는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고 해서 별주부 자라가 나서서 천신만고 끝에 토끼를 유인해 오나, 막상 토끼의 간을 꺼내려 할 때, 간을 청산에 두고 왔다는 궤변(詭辯)으로 토끼가 무사히 탈출한다는 이야기, 임금을 위한 자라의 충성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2016년 11월 21일과 22에는 아주 재미있는 창극이 경주 소재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이름하여 <4색 판소리마당>이다. 이 공연은 현재 경북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정순임 명창의 이름을 딴 <민속예술단 세천향>이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4색의 판소리마당이란 4종의 판소리로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판소리 전체를 창극 형식으로 꾸며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재미있는 한 토막을 중심으로 짤막짤막하게, 재미있게 옴니버스 형태로 엮은 것이다. 시민과 학생들이 주관객이었고, 정순임 명창의 작창, 정경호 연출, 정경옥 명창이 음악을 맡은 작품이었다. 주로 젊은 소리꾼들이 주인공으로 분하였고, 원로 예술인들은 극중에서 합창이라든가 또는 풍물과 같은 연주를 맡아서 진행하였다. 첫 번째 무대는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와 별주부가 만나는 대목에부터 함께 용궁으로 떠나가는 대목까지를 창과 연기로 꾸몄는데, 출연 배우들의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연기도 다듬어져서 관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토끼의 역할에는 경상북도 무형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남사당과 사당패, 그리고 걸립패의 차이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명칭이 비슷해서 분별이 어렵긴 하지만, 심우성이 쓴 《남사당패연구》를 참고해 보면, 사당패의 조직은 그 주된 구성원이 여자들이어서 <여사당>으로도 통했다는 점, 표면상으로는 모갑이가 이끄는 패거리 같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가무희를 펼치고 그 수입으로 살아가던 집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 걸립패란 우두머리 화주(化主)를 정점으로 승려나 승려출신의 고사꾼이 있고, 보살이나, 풍물잽이, 연희자들, 탁발 등으로 조직되었으며 모두 15~6명 내외로 구성된 조직이란 점, 이들 걸립패는 반드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의 신용장 같은 신표(信標)를 제시하고 집걷이를 하게 되며 풍물놀이로 시작해서 터굿-샘굿-성주굿 후에 비나리를 하고 받은 곡식이나 금품을 그들의 수입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남사당패는 우두머리 꼭두쇠를 위시하여 그 밑으로 보통 4~5명의 연희자를 두고 있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크게는 40명, 50명 이상을 거느린 조직도 있었으며 대부분은 일정한 거처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