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람처럼 그는 오늘도 섬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무심히 긴 수평선, 바다를 찌르는 곶들, 방풍을 위해 수고로이 쌓은 끝없는 돌담, 앙상한 해송들, 마지막 남은 작은 초가집, 꽃이 다 날아가버린 황량한 억새 들판, 묵묵한 오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구름들, 아니 바람결, 바람이 헤집어 놓은 구름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늘빛을 그는 만난다. - 머릿말중에서 - 그렇다. 이 책은 화가 강부언이 섬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린 그림에, 작가 현길언이 글을 덧댄 한 폭의 시화다. 강부언은 ‘삼무일기(三無日記)’라는 표제를 내걸고 그림을 그려왔다.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뜻의 ‘삼무(三無)’는 제주도 사람들의 강한 자생력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제주 특유의 삶의 방식이다. 강부언은 이런 삶 속에서 느낀 그날그날의 감상을 화폭 위에 거침없이 담아냈고, 현길언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시를 읊듯 그에 어울리는 글을 풀어냈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풍경 몇 폭을 소개해본다. # 올레길 제주 걷기 열풍을 불러왔던 ‘올레길’. 올레길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이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예로부터 제주 집은 길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 사진 보신 분들 많으시겠지요? 미 육군 소령 로버트 압보트(Robert Aborr)가 1950년 7월 무렵 대전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100년 동안의 폭풍우》에도 이 사진이 실렸습니다. 저자 김영란 선생은 보도연맹원 학살을 얘기하면서 이 사진을 책에 실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한때 좌익이었던 사람들도 전향하면 자유대한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다며 보도연맹을 만들었었지요. 그런데 6.25 전쟁이 터지니까, 이들이 위험인물이라며 즉결처형 하도록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는지 정확한 숫자도 알 수 없는데, 적게는 10만 명 많게는 3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합니다. 두 발이 붙잡혀 엎드려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움찔한 것입니다. 학살되어 구덩이에 내팽개쳐진 사람들처럼 저 사람도 사진이 찍힌 지 얼마 안 되어 학살되었을 것입니다. 죽기 직전에 애처롭게 쳐다보는 눈길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쳐집니다. 저 사람은 누굴까? 시신은 제대로 찾기나 했을까? 아무리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이라지만 잘잘못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84년 3월 2일 김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1등석에는 이주일, 조용필 씨가 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문화훈장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3등석에는 필자가 있었다. 우리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로 나라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예술가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4일 후 파리 시내 에릭 파브레 화랑, 이우환 씨의 파리초대전이 개막되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를 이렇게 서울에 소개했다. “이우환 씨의 작품은 자연석과 거대한 철판을 배열하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에릭 파브레의 넓은 전시장에 놓은 작품들은 모두 5개로서, 각각 형태와 놓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돌과 철판과의 직감적인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우환 씨가 파리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회 파리청년비엔날레. 이 씨는 넓은 유리판 위에 큰 자연석을 올려놓았는데, 유리는 깨져 사방으로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이 작품이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이우환은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필자는 1984년의 초대전 취재와 함께 암스텔담, 베를린 등 여러 나라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우환 씨의 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우리나라 문화재 이름은 참 어렵다.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어지간한 어른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밑줄 좍좍 그으며 외우기만 했지, 문화재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탓이다. 그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한자어로 된 문화재 이름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억울한 낙인이 찍히는 일도 뚜렷이 줄었으리라.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문화재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더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만 해도 그렇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들었을 때 어른이라면 뜻을 대강이야 짐작은 하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당최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p.143-144) 반가사유상은 무슨 뜻일까요? 반가(半跏)는 반만(半-반 반) 책상다리(跏-책상다리할 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유(思惟)는 깊은 생각(思-생각 사, 惟-생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재화만사성(財貨萬事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비틀린 표현이긴 한데 “돈이 있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지요.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도 비슷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값어치로 알고, 신(神)처럼 숭배하기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값어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꼭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돈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요. 돈을 한자로 전(錢)이라고 씁니다. 글자를 파자하면 ‘金(쇠 금)’과 ‘戈(창 과)’가 두 개 나옵니다. 곧 쇠붙이로 만들어진 것(돈)인데 이것을 두고 서로 창을 맞대고 싸우는 형국의 글자지요. 돈에는 선악이나 미추의 개념이 들어있지 않지만, 그것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다툼과 전쟁으로 비화하는 예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불이익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은 돈으로 보상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권위와 존엄성이 돈으로 측정되는 세상이 되면서 배금주의(拜金主義, 돈을 숭배하는 사상)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2021년 10월 19일 환경운동연합에서는 <녹조라떼로 키운 채소에서 발암물질 남세균 독소 검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같은 날 탐사 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에서는 환경운동연합의 발표를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dAf3GnHb3r8)로 보도하였다. 보도 자료의 내용은 필자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의 보도는 낙동강 녹조 물로 키운 상추잎에서 남세균 (Cyanobacteria)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 9 마이크로그램(µg/kg)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나라 밖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의 농작물 축적 사례는 여럿 보고됐으나, 국내 검출이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 부경대의 이승준 교수와 이상길 교수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성인이 낙동강 물로 재배한 상추잎 6장만 먹어도 마이크로시스틴의 WHO 기준치를 초과한다. 4대강 사업 이후 낙동강에서는 ‘녹조라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대규모 녹조 창궐이 해마다 발생한다. 낙동강은 부산과 대구 등 영남권에 사는 1,000만 국민의 생활용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전 서울법대 문우회 회장인 김영수 시인이 《The long road to the sixth ROK)》라는 책을 뒤쳤습니다. ROK라면 ‘Republic of Korea’의 약자인데, 그러면 제목을 직역하면 ‘제6공화국으로의 기나긴 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김 시인은 이를 《한 가족의 삶에 드리운 100년 동안의 폭풍우》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한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자기 아버지가 태어난 1907년 무렵부터 100년 동안 한국 격동의 역사와 그 폭풍우 같은 역사 속을 헤치고 나온 가정사를 버무린 책입니다. 책 제목을 저자는 한국이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간정부로 들어선 6공화국까지의 공적 역사에 중점을 두고 정했다고 한다면, 역자는 그 공적 역사에 휘둘린 한 가정의 가정사를 중시하여 제목을 붙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영문책을 뒤친 것이니까, 저자는 일응 외국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자가 미국 시민권자이니까 외국인이긴 하지만, 저자는 김 시인의 친누님이십니다. 누님인 저자 김영란은 1960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그대로 미국에 눌러앉아 미국 시민이 되신 분입니다. 책을 읽으면 우리가 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중기 명종 선조 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 자손들의 건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큰아들 준(寯)에게 제대로 아버지로서의 정을 주지 못한 때문인 듯 41살 때 얻은 맏손자 안도(安道)에게는 할아버지로서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편지로 수시로 훈육하였다. 손자 안도는 퇴계가 68살 때인 1568년 3월에 아들, 곧 퇴계의 증손자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직접 수창이란 이름을 지어 한 달 뒤에 편지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때는 안도가 성균관에 유학하기 위해 한양의 처가에 있을 때인데, 안도의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있지 않아 둘째가 들어서게 되자 엄마의 젖이 끊어져 당장 젖을 못 받아먹게 된 아들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고 한다. 증손자가 자주 설사를 하는 등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을 들은 퇴계는 손자 앞으로 편지를 보내어 걱정을 많이 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늘날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떨치는 것은 평범하고 우매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너희는 폐족의 자식들이다. 만약 폐족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잘 처신하여 이전보다 더 훌륭한 가문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놀랄 만하고도 훌륭한 일일 것이다. (p.10) ‘폐족의 자식들’. 칼날 같은 이 표현이 폐부를 찌른다. 폐족(廢族)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말한다. 그랬다. 걸출한 당대의 학자이자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전도유망한 관료, 다산 정약용은 임금이 바뀌자 한순간에 폐족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배신과 상처도 컸다. 자신이 총애를 잃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벗들이 정적으로 돌변, 자신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되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마흔 살 정약용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학문에 손을 놓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학자 정약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천 리 밖에 있는 자신을 탓하며 자식교육에도 손을 놓았다면, 가문에 흐르는 유장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첫 금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호인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로서 외로운 방랑의 삶을 의미하고 또 다른 호인 청한자(淸寒子)는 맑고도 추운 사내, 벽산청은(碧山淸隱)은 푸른 산에 맑게 숨어 산다, 췌세옹(贅世翁)은 세상에 혹 덩어리일 뿐인 늙은이라는 뜻이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거기에 실린 5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남염부주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덕망 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모두 세조를 두고 비판한 내용이라고 여겨지기에 금서로 된 것이지요. 원주에 가면 치악산 자락에 운곡(耘谷) 원천석의 무덤이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은 이성계의 편에 서지 않고 멸망해버린 고려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친히 치악산 자락까지 와서 출사를 권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은 그였지요. 그는 고려 신하의 시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