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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한국 첫 포크록 그룹 ‘따로 또 같이’ 노래

가장 문학적인 제목 <해는 기울어 어느 가슴으로 가나>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6]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느새 가을이 다녀간다.

배추 밑동이 도려지고 무가 뽑히고 집집마다 담벼락에 장작더미가 쌓여간다. 개옻나무 밑엔 붉은 양탄자가 깔리고 찔레 덤불 참새소리가 한층 야물어졌다.

 

“빛은 휘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설이 아니다.

갈대 이삭이 일으키는 바람에도 서녘 햇살은 휘어지고 늘어져서 금실그물을 호면 위에 풀어 놓는다.

 

 

 

꽃은 땅에서만 피지 않는다.

처마마다 곶감으로 꿰어져 겨울로 가는 이정표로 피어있다.

내가 어살*에 걸린 물고기처럼 세파에 떼밀리는 동안 이렇게 가을이 다녀가고 있다.

 

그동안 참 바쁘게 살았다.

집을 짓는 일, 연못과 도랑을 파서 정원을 만들고 꽃밭 가꾸는 일만 해도 허리가 휘어질 지경인데, 비록 녹음방송이라곤 하지만 매일 나가는 프로그램을 턱 하니 맡았으니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평생 해온 일이 방송이라 앞뒤 재지 않고 덥석 달려든 게 나를 조급증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바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 말고도 '어렵다'라는 뜻을 지닌 함경도 사투리가 그것이다. 바쁘게 살면 다른 건 몰라도 살림살이의 어려움은 줄어들어야 할 텐데 더 하면 더 했지, 여간해서 나아지지도 않았다.

헛심만 쓴 것이다.

 

자연이 좋아 산골로 들어와 놓고선 정작 자연을 잊고 산 것이다.

세속적인 것에 눈높이를 맞추고 살면 그 산이 그 산 이고 그 하늘이 그 하늘이지만 세속을 비우면 단 하루도 산의 색깔과 하늘빛이 같은 날이 없다. 그 땅도 그 땅이 아니요, 그 물도 그 물이 아닌 것이다. 세상의 색깔과 모양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느껴지는 순간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멋진 일인지 알게 된다.

 

자야*는 어지간한 시가지 하나쯤은 사고도 남을 거금을 법정스님의 길상사 불사에 쾌척했을 때, “아깝지 않으냐”라는 기자의 물음에 '어느 시인의 시 한 줄만도 못한 것'이라 답하지 않았던가.

세속의 영화와 안온한 삶이란 그런 것이다.

한 줄 시만도 못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래, 춥고 배고파도 자연과 더불어 살래?”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이제는 후자 쪽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는 기울어 어느 가슴으로 가나

여린 바람 타고

그늘진 그리움 뿌리며

해는...

해는 저물어 나의 가슴으로 오나

푸른 언덕 돌아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갈

해는...

 

해는 기울어 어느 가슴으로 가나

여린 바람 타고

그늘진 그리움 뿌리며

해는 ...

 

가네 가을이 가네

가네 내님이 가네

 

낙엽 따라 떠나가네 가을이 가네

바람 따라 떠나가네 내님이 가네

가네 가을이 가네

가네 내님이 가네

 

뜨겁던 나의 가슴에 차가운 바람 뿌리고

떠나간 사랑의 그림자를

이제는 잊기로 해요

 

              - 한국 포크 록의 금자탑 ‘따로 또 같이’의 <해는 기울어 어느 가슴으로 가나>

 

미국의 포크 록 역사는 1960년대 초반에 시작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늦어져 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첫 모습을 드러낸다. 양희은의 ‘내 님의 사랑은’을 비롯하여 여러 히트곡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 이주원과 훗날 한국 록 뮤직의 황금기를 주도하게 되는 전인권, 포크 가수 강인원, 나동민의 뜻이 모아져 1979년 “따로 또 같이”가 그 첫발을 내딛는다.

 

 

1집 발표 뒤 전인권이 나가자 삼두체제로 전환하고 필요에 따라 연주인과 가수를 초빙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몇 년 뒤인 84년. 오랜만에 나온 2집 음반에는 우순실이 객원가수로 참여하여 한층 완성도를 높였다. 곧이어 강인원이 떠나고 <따로 또 같이>는 이주원, 나동민 쌍두체제로 개편되어 걸작 ‘따로 또 같이 3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서울 스튜디오의 녹음기술로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객원 연주자들 역시 각 분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대학생이 아니면서도 대학가 인기 기타리스트였던 이영재를 비롯하여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 조동진의 동생 조동익,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자 이원재 등이 초빙되었다.

 

<해는 기울어 어느 가슴으로 가나>는 가요사상 가장 문학적인 제목의 노래로 3집 음반 수록곡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이어지는 정취를 잘 나타냈다.

 

이 그룹을 만들고 끝까지 지켰으며 샹송가수 전마리의 남편이기도 한 이주원은 2009년에 심장마비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쉰아홉이라는 한창의 나이였다.

 

 

*어살 – 강이나 개울의 여울에 돌로 V자 형태의 도랑을 쌓고 나무 발을

놓아 물살의 힘으로 고기를 잡는 도구.

 

*자야 – 김영한이 본명으로 일제 강점기 조선권번 소속의 기생. 궁중무와 가무의 명인.

기생출신이지만, 일본유학과 중앙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인텔리.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본보기가 된 인물. 북에 있는 백석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