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어떤 모임에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일생의 지기(知己)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낀다던가, 여행하다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소를 만나게 되든가 할 때 말입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보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뜻하지 않는 보석 같은 책을 만났는데, 오래간만에 ALP 6기 동기인 정우철 회장님 사무실을 방문한 때였지요. 정 회장님은 회장실 옆에 따로 서재를 만들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많이 사서 비치해둡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임을 못 하지만, 예전에 동기 모임 때면 정 회장님은 가끔 이런 책을 갖고 오셔서 동기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방문하였을 때 정 회장님이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책이 오래간만에 발견한 보석이었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마틴 슐레스케라고 독일의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쓴 책입니다.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는 나무인데, 슐레스케는 가문비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으로 낸 것입니다. 단순히 바이올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달포 전 아침 운동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눈썰미 좋은 부인이 단풍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잎 하나를 집어 들어 보여준다. 아직 낙엽으로 떨어질 철이 아닌데 홀로 떨어진 그 잎은 팔방으로 뻗은 잎맥을 따라 빨간색이 안에서부터 번지는 모양이다. 보통은 잎이 다섯 개 정도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8개나 되어 별종은 별종이네. 그래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별종이라고 따돌림당해 먼저 가출한 것인가? 어찌 보면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혼자서 먼저 빨갛게 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미친 단풍잎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울의 대학 구내에 있는 '미친 나무'라 불리는 벚나무가 생각이 났다. '미친 나무'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한글탑 옆에 서 있는 벚나무 한그루를 말한다 이 나무에는 한 나무에 흰꽃, 분홍꽃, 진분홍의 벚꽃이 마치 ‘미친 듯이’ 함께 피기 때문에 그런 별명을 받았고 꽃이 한꺼번에 피는 때가 되면 해마다 이 나무를 보러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다. 왜 이 나무가 이처럼 ‘미쳤을까?’ 한 언론(2008년4월18일 동아일보)은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줌의 자살 약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던 혹독한 세월을 임은 어찌 참아내셨단 말입니까?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나라 잃은 35년은 실로 혹독한 세월이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다. 갓난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일제는 흥성했고 독립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임들은 계속 싸웠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윤옥 교수가 2019년 펴낸 《여성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는 이런 임들을 위한 헌사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 혹은 스스로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기도 했으며 경찰에 의해 피살되기도, 독살되기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의 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임’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주 간략한 서사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에 비해, 우리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문 시구를 하나 적어놓으셨다, 男兒立志出鄕關(남아입지출향관)하여 學若無成死不還 (학약부성사불환)이로다 그리고 풀이를 해주시길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문을 나서는 마당에, 배움에 성취가 없으면 죽어도 아니 돌아오겠습니다”란 뜻이란다. 그러고는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어디 가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 성공 못 하면 고향에 무슨 낯짝을 들고 돌아오겠느냐, 그러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때가 1967년이었고, 당시 우리는 교육당국의 망설임 덕에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않고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국어선생님은 굳이 한자로 된 시구를 적어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이 구절은 억지로 문장을 외우고 뜻을 새겼다. 조금 더 커서 글귀를 조금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시 형태로 된 이 말을 누가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영 나타나지를 않아 사실상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근대 일본의 정치가가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기에 관심을 두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시가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 말기에 겟쇼(月性)란 일본 스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현상금 100만 원. 일제가 약산 김원봉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 액수다.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 60만 원의 약 두 배, 오늘날의 값어치로 자그마치 3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그러나, 약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현상금 360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다. 끊임없이 위험한 일을 도모해야 하고, 밀정은 판치는 가운데, 한번 잘못 발을 디디면 그걸로 끝인 살얼음판. 그는 그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걸어 해방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이 오히려 약산의 영화로운 한때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방 정국에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친일 경찰로 악명 높은 노덕술에게 끌려가 일제 치하에서도 당하지 않았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약산의 삶이 《타짜》, 《식객》 등 만화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의 펜 끝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약산의 일대기를 그린 이 만화, 《독립혁명가 김원봉(가디언)》은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진행된 성남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7호선 철산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올라오면, 바로 앞에 낮은 산줄기가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능선은 바로 앞의 도덕산에서 시작하여 구름산 – 가학산 – 서독산으로 이어지며, 서독산에서 내려오면 서해안 고속도로 밑을 지나 바로 안양의 수리산 줄기로 올라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광명의 네 산을 광명 알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 광명 알프스를 걸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팀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뭐에 관해 쓸까 생각하다가, 구름산 자락에 있는 사적 제357호 '영회원(永懷園)'이 생각났다. 영회원은 소현세자의 아내 민회빈(愍懷嬪) 강 씨의 무덤이다. 하여 13년 만에 다시 철산역에서 도덕산을 넘어 구름산 자락의 민회빈을 찾아간 것이다. 13년 전에 찾아왔을 때도 민회빈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더니, 이번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이번에도 영회원 옆을 따라 구름산으로 오르며, 나무들 사이로 힐끗힐끗 영회원에 잠들어 있는 민회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운의 세자비 민회빈 강 씨, 시호는 민회빈이나 사람들은 보통 강빈이라고 많이 부른다. 나도 강빈이라 부르겠다. 강빈은 청나라가 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독특한 성품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천성(天性)이라고 부르지요. 천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성교육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개개인 모두가 산속의 나무와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두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때론 그 나무가 내가 보기에 불편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 처지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곧추세우고 구부려 놓습니다. 나는 그 나무의 멋스러움이 눈의 호사를 가져다준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그 나무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말라 죽고 맙니다. 변해야 할 것은 그 나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아는데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했음을….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남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철학이나 지혜 지식이 비록 정당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세상엔 절대적으로 선한 것도, 절대적으로 악한 것도 없습니다. 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길상 교수가 지난주 8월 19일에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즐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역사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라면서 “고종이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책에 썼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길상 교수는 천주교를 통해 한국에 커피가 들어왔을 거라고 본다.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인 베르뇌 주교가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다량의 커피를 주문한 기록이 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는 중남미와 동남아 포교에 커피를 활용했다. 베르뇌 주교가 주문한 커피가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이 1861년이었으므로 이때 주교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인으로선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길상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커피 역사는 160년이나 되는 것이다. 커피는 이제 전통차를 제치고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음료가 되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평창에서는 대부분 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을 거닐다가 길가에 붉은 꽃들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 하나를 보았다. 아니 이 한여름에도 나무에 꽃이 피나? 자세히 보니 역시 그랬다. 배롱나무였다. 한동안 서울에서는 볼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배롱나무들이 길가 여기저기에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화무십일홍! 우리가 가끔 입에 달고 사는 이 말은 열흘 붉을 꽃이 없다는 뜻의 옛 한문식 말이다. 주로 권력의 무상함을 의미할 때 쓰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꽃이란 것이 그렇게 오래 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깔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꽃이 바로 백일홍, 속칭 배롱나무꽃이다. 화무십일홍이요 열흘 붉을 꽃 없다지만 석 달 열흘 피워내어 그 이름 백일홍이라 뜨거운 뙤약볕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꽃봉오리 터지던 날 진분홍 주름치마 나풀거리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살포시 미끈한 속살 내비치는 한여름의 청순한 화신이여! ... 조선윤, <배롱나무꽃> 왜 나무 이름이 배롱나무인데 꽃은 백일홍이라고 하는가? 원래는 백일홍이 먼저 붙은 이름인데 이것을 읽다 보니 ‘배기롱’이 되고 다시 ‘배롱’으로 줄어들었단다. 이름이 한자에서 어느 틈에 순우리말 식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식의 모범’이라는 뜻의 《의궤》. 이 《의궤》는 영상도, 사진도 없던 조선에서 많은 복잡한 의식과 행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졌던 비결이었다. 고려에는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한 행사가 끝나면 그 행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정리해 두는 ‘공식 행사보고서’이자, 행사를 치른 적이 없는 이들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행사 지침서’였다. 유지현이 글을 쓰고, 이장미가 그림을 그린 《조선왕실의 보물 의궤》는 ‘의궤’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을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대화체로 된 친근한 설명과 함께 사진과 그림이 풍부히 실려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의궤를 쉽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이런 매력을 알아본 독자가 많았던 덕분인지, 2009년 처음 출판됐음에도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책은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의궤를 임금의 탄생, 임금의 활쏘기, 임금의 혼례, 임금의 제사, 임금의 건축, 임금의 행차, 임금의 죽음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해당하는 의궤를 소개한다. 의례와 예법이 발달했던 영ㆍ정조 시대에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