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도자기를 하는 작가의 집을 방문했더니 응접실 나지막한 옛 가구 위 화병 속에서 맑은 매화꽃들이 보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뒤에 걸린 화가의 검은 색 바탕의 그림에 어울려 마치 영창(映窓)에 비치는 듯한 선명한 아름다움을 풍겨준다. 작가의 작업장이 있는 부산 기장 쪽에서 핀 매화란다. 꺾어 와서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옆 화병에 꽂힌 것인데 고결한 자태로 겨우내 잊고 살았던 화신(花信), 곧 꽃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 계절이 우수를 넘고 있으니 이제 봄이라 해도 누가 시비하지 못할 때가 되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살았던 옛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즈음에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보면서 이어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때에는 5일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는 그 꽃을 몰고 오는 것이 바람이라는 생각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며 반겼다는 것이 아닌가? 이름하여 ‘이십사번 화신풍(二十四番 花信風)’, 그것이 줄어서 ‘화신풍(花信風)’이라는 것인데, 양력 1월의 소한에서부터 5일마다 기후가 바뀌고, 그것을 일후(一候)라 계산하면 4월의 곡우까지 4달 120일에 24개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지 한 반에 보통 70명이 넘었다. 그러고도 10반을 넘었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새카맣게 보였다. 원래 4학년이 되면 남과 여반으로 나뉘었는데 내가 들어간 반은 남녀합반으로 6학년까지 그대로 갔다.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짝은 몹시 마르고 까무잡잡한 아이였다. 짝은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옥수수빵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연필이나 공책도 없을 때가 많았고 그림 도구는 아예 준비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 것을 많이 썼는데 정말 아껴서 잘 쓰려고 하는 것이 보여, 반쯤 쓴 크레용 세트와 도화지를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인가 그 애가 빵을 받아서 자리에 앉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자고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하면서 짝은 너무나 맛있게 도시락을 비웠고 나는 옥수수빵을 잘 먹었다. 내가 짝에게 앞으로 종종 바꾸어 먹자고 했더니 그 애는 그렇게 좋아했다. 나는 그 시절만 해도 빵순이었고 옥수수빵은 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9)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경복일레라. -《시경》- 이렇게 좋은 의미를 지닌 집에서 사는 인생은 어땠을까? 하루하루 술에 취하고 덕을 베풀며, 큰 복을 누리며 살았을까? 이 집의 주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법궁, 경복궁에서 일상을 보내던 임금들이다.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중국의 시집인 《시경》에 있는 말을 따서 지은 것으로, 임금의 큰 은혜와 어진 정치로 만백성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책,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는 경복궁에서 흘러가는 임금의 일상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겹고도 다정하게 들려준다. 어린이용 책답게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담아냈고, 풍부한 그림도 함께 실려있어 우리 궁궐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임금의 하루는 익선관포를 갖추어 입고 차림새를 단정히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침 수라에 해당하는 자릿조반을 먹은 뒤, 어머니인 대비가 기거하는 자경전으로 가서 아침 문안을 드린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고종 때 조대비(익종의 비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건물로, ‘자경’은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지구상 모든 생명의 기원은 해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의 기운을 받아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식물이지요. 그 식물 기관의 하나로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고 모든 생명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이 잎입니다. 만약에 잎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초식동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육식동물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니 지구는 무너진 먹이사슬로 인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황폐한 행성이 될 것입니다. 우린 꽃에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잎은 잘 보지 않습니다. 꽃은 화려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감상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꽃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잎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 과수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봄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아찔한 감동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잎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오갈병이나 마름병으로 잎이 병들면 열매의 수확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어쩌면 잎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는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꽃처럼 화려하게 전면에 나서서 부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달 1월 27일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사체로 발견된 17m 길이 향유고래 뱃속에서 각종 쓰레기들이 나왔다고 미국 CBS 뉴스가 2월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BS에 따르면 길이 17m, 몸무게 60t인 이 향유고래는 부검 결과 최소 6개의 통발과 7종의 어망, 두 종류의 비닐봉지 외에도 낚싯줄, 그물망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앞서 2022년 11월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해변에서도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14m 길이의 향유고래를 발견했다. 이 고래는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숨졌는데, 부검을 진행한 결과 뱃속에서 약 150㎏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대한 해양 동물을 죽인 것이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쓰레기는 대부분 물 위에 떠 다니던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은 잘 분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은 햇빛의 자외선과 출렁이는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다. 플라스틱은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크기가 5mm 이하로 작아지면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부른다. 특히 크기가 1mm 보다 더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을 마이크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퇴계 이황(1501~1570)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자이며 한국인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분이다. 경상북도 안동 도산땅의 온혜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뛰어난 학문으로 세상에 나갔다가, 고향인 도산으로 물러나 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시다 일흔 살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그분에 대해 배웠고, 우리나라 지폐의 가장 기본이었던 천원 권에 그의 초상이 올라가 있으며, 안동의 도산서원에는 해마다 참배하는 분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퇴계에 관한 서적과 논문이 수도 없이 많고 방송과 강좌는 끊이지 않는다.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많은 책이 있다. 많은 분이 퇴계를 잘 알아야 한다며 퇴계와 성리학에 대해 강의한다. 그런데 정말, 그분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그를 우리들의 스승이라고 말하는가?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가? 많은 사람이 배워 알고 있는 ‘주리론’, ‘사단칠정론’, ‘성학십도’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진정 그를 알고 있는가? 이런 의문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퇴계의 후손인 필자가 답을 찾아보았다. 필자는 퇴계 전공이 아니고 방송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스키장에 다녀오게 되었다. 겨울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강원도에 있는 스키장에 도착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 우리 가족들에게 맞는 난이도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초부터 시작하면 초급을 찾으면 되지 않겠냐 하겠지만 어디로 가야 초급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기 위해서는 슬로프를 타고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에서 내려 스키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다른 스키장에 비해 규모가 제법 커서 스키장 안내소도 두 곳이나 있는 이곳의 난이도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각 슬로프의 이름도 난이도와 상관없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우스는 신들의 신이니 가장 상급일 줄 알았지만, 난이도가 초급에 해당하였다. 벽에 붙은 난이도 안내지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슬로프 입구에서 확인하고 되돌아가야만 한다. 만약, 확인 못하고 슬로프를 타면 초급자가 상급자 코스까지 올라갈 판이다. 지난해, 스키 강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스키를 시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 국왕은 모두 나라를 경영하는 경영자였다. 그리고 정조는 썩 훌륭한 최고경영자(CEO)였다. 조선 임금들 가운데서도 나라를 잘 경영했다고 상당히 높게 평가받는 군주다. 물론 어느 임금이나 그렇듯 정조 치세도 명(明)과 암(暗)이 있지만, 그가 조금 더 살아서 조선을 지탱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책,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는 정조의 국가경영 방식에서 시사점을 도출해 오늘날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지혜를 주는 책이다. 경영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만큼, 정조의 경영방식 가운데는 오늘날에도 취할 것들이 꽤 많다. 그의 경영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그는 기본적으로 적을 강하게 키워 적도 승리하고 나도 승리하는 상생경영을 펼쳤다. 조선시대 많은 당쟁의 역사에서 보듯 ‘나 살고 너 죽자’ 식으로 반대편의 씨를 말리는 그런 섬멸전법을 구사하지 않았다. ‘호적수’를 만났다 싶으면 오히려 그 사람을 크게 키워 견제세력으로 활용했다. 이는 어찌 보면 적이 강해도 내가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사에 자신의 의견에 순응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소나기 내리는 날 예쁜 여학생이 책을 가슴에 품고 비를 피해 도서관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몸은 젖었고 마스카라는 번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때 초로의 교수가 묻습니다. "자네 괜찮나?" "네. 몸이 젖고 화장이 번지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자네 말고 자네 책 말일세…." 공자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구간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이때 하인이 들어와 말하지요. "큰일 났습니다. 마구간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때 공자님은 묻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마구간의 불 소식을 듣고 말의 안부가 아니라 사람의 안부를 묻는 공자의 모습을 봅니다. 책의 안부를 묻는 교수와 대조적이지요. 판단의 기준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린 인본주의라고 이야기하지요. 옛날 종교가 중요한 잣대로 세상을 지배했을 때를 신본주의라고 한다면 지금 물질 만능을 구가하는 시대를 물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에 관한 것을 가장 중히 여기는 인본주의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이러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시골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쓸 돈을 아껴가면서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어 공부시킵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취직을 하면 세금은 어디로 갑니까? 시골이 아닌 도시로 빨려 들어가지요. 아들과 딸을 위해서 시골의 부모님은 먹을 것 쓸 것 아끼며 열심히 ‘선행투자’를 해서 인재로 키워내지만, 그 결과는 시골로는 전혀 돌아오지 않습니다.” 2006년 3월 8일 일본경제신문의 칼럼난 ‘십자로(十字路)’에 이런 글이 실렸다. 글의 제목은 ‘지방을 다시 본다 후루사토 세제’(地方見直す「ふるさと税制」)였다. 글 쓴 사람은 무라구치 가즈타카(村口和孝)라는 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였다. 무라구치 씨는 일본 시고쿠 섬의 동쪽에 있는 도쿠시마 현의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렇다 할 산업도 없는 곳이어서 이곳 젊은이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시로 빠져나갔다. 무라구치 씨도 예외는 아니어서 졸업하면서 도쿄의 대학에 진학했고 이어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벤처회사에서 14년 동안 일한 뒤 개인형 벤처 캐피털을 설립해 사업에 성공한다. 무라구치 씨는 이러한 자신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며 시골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 성공시키기 위해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