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6월, 대전에서 열렸던 제21회 한밭 전국국악경연대회이야기를 하였다. 최고상은 대통령상으로 관악과 현악, 판소리, 전통무용 등 4개 분야였고, 각 분야는 학생부와 일반부, 특히 무용은 학생부와 일반부 위에 명인부가 포함되었다는 점, 한국의 전통음악이나 춤은 장단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 연주태도나 올바른 자세나 시선, 특히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표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밭대회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점인데, 《대전사랑 시민모임》이 전국에서 모인 심사위원들을 성의껏 맞이해 주었고, 출전자가 지난해에 견주어 2배 이상 몰렸으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바라는 점은 현재의 관악, 현악, 판소리, 무용분야 외에 정가(가곡, 가사, 시조), 경서도 좌창, 선소리, 풍물굿 분야까지 포함하여 보다 확대된 경연대회를 만들어 나간다면 국내 최고의 국악경연 대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등도 곁들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7월 1~2일 열여덟 번째 중국에서 가진 한ㆍ중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이 행사는 해마다 이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그러나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와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날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른다. 유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유두에 관한 기록들 유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명절로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13세기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인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金居士集)》에는 "동도(東都 : 경주)의 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다. 이제 찌는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 삼복의 유래는 무엇이고, 전해져오는 세시풍속은 무엇이 있을까?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후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한다. 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ㆍ을축ㆍ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경일'이란 천간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한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다. '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이다. 그런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라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도 과천시에서 열린 전국경기소리 경창대회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경기소리보존회》가 제10회째 열고 있는 경연은 종합대회가 아니라 성악의 한 분야인 경기소리만을 4개 부문, 곧 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 명창부로 나누어 각 부문별로 최종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체적으로 고른 편이었으나 그 중에서도 중, 고등부 출전자들은 노래 가사의 암기나 좌창의 창법, 특징적 표현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이야기, 대회의 권위는 심사위원들의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천 경창대회는 정성을 다하는 대회, 공정한 대회, 투명한 대회로 출전자들이 믿고 참여하고 싶은 대회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예로부터 과천은 전통문화와 관련이 깊은 도시였는데, 한 예로 1930년대에는 《대동가극단》이란 단체가 과천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일제치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을 위로해 주었고, 현재에도 서울과 근접해 있는 도시로 자립도가 높고 환경 등, 살기 좋은 도시임에도, 과천 경기소리 대회가 아직도 관(官)에 의지하는 영세한 대회로 남아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겸해서 본선 경연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주에서 열린 장월중선 명창대회의 이모 저모를 이야기하였다. 지난해에 견주어, 고법(鼓法)분야가 새로 신설되는 등, 대회의 규모가 커졌으며 이에 따라 참가자 수도 작년 245명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 이것은 경연대회의 신뢰나 평가가 외부에 긍정적으로 나타난 반응이라는 이야기, 앞으로는 분야를 더욱 확대해서 기악부문이나 무용분야도 포함시켜야 된다는 이야기, 경연자들의 기량수준이 높았으며 특히, 학생부의 판소리분야나 가야금병창 분야가 돋보였다는를 했다. 또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나 매일신문사와 같은 기관의 후원이 인상적이고 전 경주시장을 비롯한 경주시민들로 구성된 행사를 위한 후원회의 도움도 대회의 큰 자랑거리였다는 이야기, 진행요원들의 연락체계나 효율적인 진행, 집계와 성적공개 등, 신속하고 세련미를 보여주었다는 점 등을 칭찬했다, 그러나 종목별 경연장소가 떨어져 있는 탓에 본부의 통제가 다소 어렵고, 야외경연장은 음향이나 주위의 소란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덧붙여 먼 곳을 찾아온 출전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 즉 교통편의나 식사제공, 홈스테이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세종 임금이 아무리 훌륭한 글자를 만들었어도 1894년 고종이 국문 칙령을 발표하기 전까지 주된 공식 문자는 한자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훈민정음도 공식문자였다는 것이다. 한자 다음의 비주류문자였지만. 국어교과서처럼 공식 문자가 아니었다고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공식문자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공식적이라는 것은 제도나 법으로 규정하거나 인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증거는 공식 제도의 중심에 놓여 있는 왕실에서 만들고 나라에서 펴낸 《사서언해》와 같은 책에서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오늘날 헌법과 같은 조선 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서 한글을 국가 공무원 시험이라 할 수 있는 과거 시험 과목으로 정했고 또한 삼강행실도와 같은 국가 윤리서를 한글로 옮겨 백성들에게 알리게 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라의 중심인 임금들은 모두 한글 문서를 나라 정책으로 활용했다. “《삼강행실》(예의범절 규범서)을 언문(훈민정음, 한글)으로 번역하여 서울과 지방의 양반 집안의 어른, 어르신, 또는 서당의 스승들로 하여금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가르쳐 이해하게 하라. 만약 삼강행실 가르침에 능통하고 몸가짐과 행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째 하지(夏至)다. 해는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인 하지점(夏至點)에 자리 잡게 되는데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짧아졌지만, 낮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정오의 해 높이도 가장 높고, 해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몹시 더워진다. 북극 지방에서는 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가 되면 모내기도 끝나가지만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으며, 다른 나라는 어떨까?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보면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우스의 신목(神木)인 떡갈나무 가지에 물을 적시며 비손했다고 하며, 로마에서는 소형 신상(神像)을 티베르강에 흘려보내면서 비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게르만 민족 사이에서는 처녀를 발가벗겨 물을 뿌리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인도에서는 개구리에게 체를 통해 물을 뿌리거나 뱀의 모조품을 만들어 물을 뿌리거나 물을 끼얹는 풍습이 있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부여에서 열렸던 내포제 시조강습회와 명인들의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시조는 충청인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오는 노래로 창법이나 말붙임, 표현법 등이 지역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라는 이야기, 내포제시조보존회가 시조창 확산을 위해 28년째 열어오고 있는데, 이러한 행사야말로 시조의 확산과 보급의 차원을 넘어 국악계, 우리문화 예술계 전반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조창은 형식미, 유장미, 절제미, 장중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로 예부터 충신이나 애국지사, 지식인, 선비들이 즐겨 불러온 노래였다는 이야기, 평시조에서 지름시조, 사설시조 등 여러 종류로 확대되었고, 서울 경기지방의 경제(京制)와 지방의 향제(鄕制)로 구분되는데, 향제는 충청도의 내포제, 경상도의 영제, 전라도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란 이야기, 시조창은 시류에 밀려 점점 외면을 받고 있는 가운데 충청남도는 내포제시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보존과 계승을 다 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경기산타령과 서도 산타령의 발표공연 이야기를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보존회는 성동구 소월 아트홀에서 6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포구락이라는 궁중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선조 전기의 포구락은 16인의 무희가 8인, 또는 4인으로 무리를 이루어 춤을 추었는데, 음악총서인『악학궤범』에는 포구락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여기에 의하면 죽간자 2인의 구호를 시작으로 기녀(妓女) 16인이 좌우로 나뉘어 춤을 추다가 차례로 채구(彩毬)를 던져서 성공하면 상포를 받고, 실패하면 오른쪽 볼에 먹을 찍고 물러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많은 궁중정재 중에서도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놀이형식의 전통성을 지니고 있는 재미있는 춤이란 이야기, 조선조 후기, 순조 때의 포구락도 전기와 대동소이한데, 다만 비교가 되는 것은 무희가 16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는 점, 반주악곡명이 달라진 점, 창사의 내용이나 횟수가 다르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또한 조선조 말엽부터 현재까지는 관악 영산회상의 악곡들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반주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이 곡이 모음곡 형식의 구성이고, 다양한 장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음향이 큰 악기들이 편성이란 점, 이와 함께 느린 10박, 빠른 10박, 6박, 4박 등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영조 때 그림 《이원기로회계도》에 보이는 춤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 그림에는 2가지의 춤, 곧 포구락ㆍ처용무의 궁중무용과 함께 3종의 연주형태가 보이는데, 하나는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 둘은 현악기 연주자의 모습, 세 번째는 박(拍)을 들고 서 있는 집박 악사의 모습이란 점이다. 집박(執拍)이란 박을 잡고 있다는 의미로 지휘자를 뜻한다는 점, 포구락(抛毬樂)은 고려 문종 때 송에서 들여온 춤이어서 당악정재로 구분된다는 점, 향당정재의 구별은 죽간자의 유무와 한문으로 된 구호나 치어를 노래한다는 점도 이야기 하였다. 옛 기록에 의하면 포구락은 무려 150여명이 추었다고 전하는데, 당시 고려 교방에 속해있던 초영(楚英) 등이 구장기별기와 함께 임금 앞에서 연희하였으며, 무희는 12명 짝수로 좌우 6명씩 두 대(隊)로 나누어 추었다는 점, 고려시대의 포구락에 관한 기록에는 반주 음악이 절화 영(折花令),수룡음영(水龍吟令), 소포구락 영 청평악 영(淸平樂令) 등이었다는 점, 포구락은 현재까지도 자주 무대에 오르는 거의 유일한 전통무용으로 무희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공놀이를 하는 춤이란 점들을 이야기 등을 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