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妙句堪擒錦 淸歌解駐雲(묘구감금금 청가해주운) 偸桃來下界 竊藥去人群(투도래하계 절약거인군) 燈暗芙蓉帳 香殘翡翠裙(등암부용장 향잔비취군) 明年小桃發 誰過薜濤墳(명년소도발 수과벽도분)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세상을 떠나네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에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1610년 허균은 부안의 기생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창 계생을 애도하며 쓴 시입니다. 매창이라면 황진이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기생 시인 아닙니까?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하는 그녀의 시를 외우려고 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부안에서는 지금도 매창을 기려 매창공원도 조성하고 해마다 매창문화제도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균이 어떻게 매창을 알게 되었기에 그녀를 애도하는 시까지 썼을까요? 허균은 1601년 조운판관(漕運判官, 조운선의 정비, 세곡의 운반과 납부 등을 관장하는 종5품 관직)이 되어 전라도에 내려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번에도 또…공부의 신(神) 이율곡, 9번 수석합격 신화를 쓰다!> 오늘날 이런 일이 있다면, 신문에 이런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지 않을까. 1564년(명종 19년), 대과 명경과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던 날. 한양은 온통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의 탄생으로 술렁거렸다. 그 어렵다는 과거시험을, 9번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이율곡. 500년 조선사에 이런 공부 천재는 없었다. 이 책, 《율곡의 공부》는 5,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자 신사임당의 아들인, ‘이율곡’이라는 전무후무한 공부 천재가 이뤄낸 9번 수석합격의 비밀을 9가지 공부법으로 풀어낸 책이다. 입지, 교기질, 혁구습, 구용구사, 금성옥진, 일목십행, 택우문답, 경계초월, 지어지선으로 요약되는 이 9가지 공부법은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어우러져 공부의 본질을 꿰뚫는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실,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흔히 접하는 조선의 신하들은 그저 ‘공부 좀 했던’ 정도가 아닌,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었다. 조선에서 대과에 급제해 조정에 출사하는 것은 평생을 공부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만큼 소수의 수재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은 이산화탄소(CO2)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인간이 잘못해서 만들어내는 오염물질이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리고 인류가 문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오염물질이다. 이산화탄소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울 때,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휘발유를 소비할 때, 밥을 먹기 위하여 쌀을 재배할 때, 고등어를 요리할 때 등등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발생하므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적게 하는 것이지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재는 하나의 척도로서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라는 개념이 제안되었다. 탄소발자국은 캐나다의 웨커네이겔(M. Wakernagel)과 리스(W. Rees)가 1996년에 쓴 책 《Our Ecological Footprint》에서 제안되었는데, 근래에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지구환경문제로 인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탄소발자국은 우리가 모래밭을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듯이 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내 나이 어느덧 올해 47살 아이를 낳아 이제야 부모가 되었구나 기르고 가르치는 건 진실로 내 몫이나 수명과 자질은 너에게 달려있다. 내가 만일 70살까지 산다면 25세 된 내 아들 모습 보겠구나 나는 네가 대현이 되기를 바란다만 하늘의 뜻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我今行年四十七 生男方始爲人父 鞠育敎誨誠在我 壽夭賢愚繫於汝 我若壽命七十歲 眼見吾兒二十五 我欲願汝成大賢 未知天意肯從否 ... 소옹(邵雍),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 소옹(邵雍, 1011~1077)은 중국 송나라 때의 대유학자이자 정치가, 문장가였다. 그의 호를 따서 흔히 소강절(邵康節)로 더 유명한데, 특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역(周易)에 완전히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었다고 알려져 그에 따른 일화도 많다. 소강절은 가난 속에서 공부에 심취하여 45살의 늦은 나이에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제자의 누이와 혼인하여 47살에 첫 아이 백온(伯溫)을 낳았다. 늦게 본 자식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시에 절절히 나타난다. 신규야 부르면, 코부터 발름발름 대답하지요. 신규야 부르면, 눈부터 생글생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김영갑. 제주가 좋아, 제주에 살며, 제주의 자연을 필사적으로 렌즈에 담은 한 예인의 이름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제주에 온 사람들은 한 번쯤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를 찾곤 한다. 이 갤러리는 사진작가 김영갑이 루게릭병을 앓으며 자신의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워 세운, 폐교를 개조한 사진 갤러리다. 필자 역시 이곳을 찾아 그의 사진에 크게 감명받은 적이 있다. 사진에 대해 평할 만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눈에도 그의 작품세계는 퍽 비범해 보였다. 제주의 바람이 스치는 찰나, 파도가 들이치는 순간을 기막히게 포착한 그의 사진은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한 공감각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예인 김영갑이 제주에서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찍었는지 생의 마지막 몇 달 동안 담담히 구술한 기록이다. 자신의 몸과 정신을 오롯이 사진에 바치며 너무나 몸을 혹사한 탓일까. 40대 초반, 루게릭병을 앓게 된 그는 출판사의 책 출간 제의를 받고, 자신의 사진 판형을 변형시키지 않고, 자신이 예전에 쓴 책에서 원고를 뽑아 쓰며 필요한 내용은 구술하는 조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田家少婦無夜食(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雨中刈麥林中歸(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길로 돌아온다. 生薪帶濕煙不起(생신대습연불기)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은 붙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입문아녀제견의) 문에 들자 딸애가 울며 옷자락을 당긴다.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예맥요(刈麥謠)>, 곧 보리 베는 노래입니다. 저녁거리가 없어 빗속에라도 보리를 베어와야 하는 가난한 농가의 풍경을 노래하였군요. 그런데 보리도 완전히 익지 않았는데, 먹을 게 없으니 미처 익지 못한 보리라도 베어왔어야 하는 건가요? 이제 땔감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비에 젖은 생나무는 축축하여 좀처럼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면서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이겠지요. 보릿고개. 지금은 보릿고개가 없어졌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봄이 되면 식량은 바닥나는데, 보리가 익으려면 아직 좀 더 남아있는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보릿고개라고 하면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가수 진성도 자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최근 모 회사 입사 시험에 "올챙이알은 어디에 낳나?"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올챙이는 알을 낳지 못하는데…. 문제가 좀 이상하네요. 개구리알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개구리알을 기른 적이 있습니다. 봄에 연못이나 물을 댄 논을 보면 어김없이 개구리알이 한 덩어리씩 뭉쳐있곤 했습니다. 몇 개를 떠서 수조에 넣어 놓는 것만으로 부화 준비는 끝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투명한 알 속에 올챙이가 커 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올챙이는 한꺼번에 부화하여 수조 여기저기에 노닐고 빈 껍질만 남은 알을 봅니다. 올챙이는 물속 작은 벌레를 먹고 크지만 수조의 환경은 그러지 못해서 물고기 밥을 넣어주니 잘 먹고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이 가면서 몸집이 커가는 모습,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가 나오는 모습. 그 변태의 과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개구리가 앞다리가 나오면 수조 안에 큰 돌을 넣어주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개구리로 탈바꿈했는데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올챙이 때와 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홍수로, 겨울은 혹한으로 시련과 절망의 강이었지만 중국인들은 이 시련에 맞서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황하문명을 이룩했다. 로마인들은 풀 한 포기 없는 자갈밭과 역병이 들끓는 황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1934년에 저술을 시작해 27년 만에 12권의 책으로 나온 아놀드 토인비의 위대한 저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는 이처럼 한 나라나 민족을 넘어서서 한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그들이 처하게 되는 도전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을 함으로써 역사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아쉬운 것은, 비록 당시 대작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가 일본의 통치 아래 있었고 일본은 강국으로서 그 힘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문명에서 분명 한국인들의 역할과 긴 문명을 이어온 특별한 힘을 토인비가 주목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이었다. 토인비는 1954년에 이 책을 완성한 이후 내용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195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예로부터 제왕들이 배우는, 경국(經國)을 위한 통치학이자 제왕학이었다. 역사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검증된 방법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되고자 하는 자, 곧 제왕학 공부를 하는 이들은 역사를 통해 옛 선현이 마주한 갖가지 문제를 접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론을 배움으로써 경세의 도를 깨치고 리더십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룬 성군이자, 그 위대함이 극에 달하여 ‘대왕’으로 추숭받는 한 임금이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냈는지’, 그 방법론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리더십 교육으로도 손색이 없다. 세종의 리더십, 세종의 국가경영 비결에 관한 연구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이유다.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가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가 2011년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개념’이라는 주제의 연구 과제를 채택한 후 여섯 명의 연구자가 세종의 정치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가치를 연구한 결과를 모아 엮은 것이다. 이들은 세종리더십의 요체를 각자의 시각으로 분석하며 핵심사상을 도출해냈다. 정윤재 교수는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가치로 ‘균형감각’, ‘힘 실어주기’, ‘추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전쯤인 지난달 중순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울올림픽 30돌을 기리는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다시 가게 되었다. 예전에 KBS기자로 있을 때는 회사의 취재차량을 타고 갔고, 퇴직 후에는 어쩌다 가게 되면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합정동 로터리에서 타고 가곤 했는데, 이날은 코로나 사태로 서울 시내에서 갈 수 있는 셔틀버스는 운영을 중지해, 과천 서울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미술관으로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새로 전시회가 열리지만, 이날도 코로나 여파로 손님은 나를 포함해 둘 뿐, 작은 승합차를 타고 구불구불 진입로를 따라 돌아 미술관을 올라가면서 나의 머리는 35년 전인 1986년 8월로 돌아가고 있었다. 1986년 8월 25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층 연회장, 새로 완공된 현대미술관의 위용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던 전두환 대통령과 이원홍 문화공보부 장관, 그리고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미술계 원로, 현역들이 줄줄이 모여 서 있었다. 시설을 둘러보고 이같이 좋은 미술관을 갖춘 데 대한 치하의 말을 기대하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 몇 마디 치하의 말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