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이 지났습니다. 앞서 여섯 차례에 걸쳐서 아직 되찾지 못한 우리말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모든 문제의 뿌리이자 모든 풀수(해법)의 시작점이 될 마지막 물음 앞에 섰습니다.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참된 '언어 광복'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한 곳을 향합니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생각을 키우는 곳, '학교'입니다. 왜 학교일까요? 아무리 나라 이름을 바로 세우고, 법률 용어를 뜯어고치고, 땅이름을 되찾아도, 그것을 배우고 익혀 다음 세대로 이어갈 아이들이 없다면 모든 노력은 한낱 구호로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은 살아있는 숨탄것(생명체)이며, 그 숨을 이어가는 터전이 바로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을 새롭게 하고 국어기본법을 고치는 것이 곪아 터진 곳을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이라면, 교육은 그 수술을 마친 몸에 신선하고 건강한 피를 돌게 하여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염통(심장)'의 구실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술을 잘해도 염통이 제대로 뛰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미국 메릴랜드주에는 1695년에 설립된 세인트존스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이 특이한 것은 몇 개의 선택과목을 빼고는 모든 교육과정이 동일한데 학생들은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을 통하여 학점을 딴다는 것이지요. 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해마다 방대한 수필을 써야 하고 졸업 논문을 써야 하며, 교수 앞에서 구두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모두가 고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이루지요. 학생들은 교수를 'Professor(교수)'가 아닌 'Tutor(지도교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학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 것이 5% 정도이고 나머지는 읽고, 토론하고, 서로 설명하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책을 읽은 뒤 감상을 말하기는 쉬울 수 있으나 지은이와 생각을 공유하며 다른 학생 및 교수와 토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생각을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떤 문명이든지 그 뿌리에는 문화의 저변에 깃들어 있는 의식세계와 정신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