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기도 화성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염거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염거화상은 신라 구산선문의 최고 가람인 가지산파를 개창한 도의국사의 직계제자로 가지산파 2대조사로 신라 문성왕6년(844)에 입적하였다. 현재 용주사는 창건당시에는 갈양사(葛陽寺)였다. 염거화상은 당대 덕망이 높은 선승으로 갈양사를 선(禪) 수도도량으로 하여 많은 수행승들을 배출하였다. 갈양사는 이후 고려시대에는 혜거국사가 중창불사를 단행하였으며, 고려 태조의 요청에 따라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어 국가적 축원도량으로 발전하였다. 혜거국사 당시에는 고려왕실의 요청에 따라 수륙대재(육지와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의 극락천도를 위한 천도재)를 거행하여 지금 용주사의 대표적 법회로 자리잡았다. 수륙대재는 지구상 지배자인 사람은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있는 모든 존재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넋을 위로하고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에게 불법을 널리 펴는 천도의식이다. 그 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용주사는 임진, 병자 전란을 거치면서 모든 건축물이 불타서 폐사되었으나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화산으로 옮기면서 융릉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甘露王圖)」, 「양양 선림원터 출토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螺鈿菊唐草文箱)」는 2023년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로,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침엽수 계통의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인 목심저피법(木心紵皮法)으로 제작되었다. 표면에는 전체적으로 모두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하였고, 부수적으로 마엽무늬(麻葉文, 원을 중심으로 한 수평, 수직, 사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 귀갑무늬(龜甲文, 거북의 등딱지 모양을 띤 무늬), 연주무늬(連珠文, 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하여 만든 무늬)를 썼다.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국화넝쿨무늬는 얇게 갈아낸 자개를 오려내어 붙인 줄음질 기법으로 표현하였고, 부속무늬로 사용된 마엽무늬와 귀갑무늬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