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학고재갤러리에서는 2015년 12월 4일부터 12월 30일까지 손정희 개인전 '판도라'를 연다. 손정희는 미국 버나드칼리지 예술사 학사, 홍익대학교대학원 도예 유리과 석사 과정을 거쳤다. 2008년 첫 개인전 이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조각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 개인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은 많은 공력을 요한다. 흙으로 역동적인 인체형상을 만든 다음, 유약을 바르고 이를 가마에 최소 세 차례 이상 굽는 힘든 과정을 거친다. 때로는 도자기 조각 위에 헝겊, 실타래, 깃털 등의 소재를 곁들여 보다 풍부한 질감을 살리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이렇듯 국내 여타 작가들이 거의 시도하지 않는 색다른 도예 조각에 도전하는 그의 작품의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판도라'를 통해 느끼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 |
||
▲ 데뷔탕트 7대 죄악, 2015, 도자, 양모, 35x28x85cm |
이번 전시 제목은 헤시오드가 <신통기>와 <노동의 나날>에 서술한 그리스 신화 <판도라>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신들을 총동원해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다. 제우스가 이처럼 공들여 판도라라는 여인을 창조한 이유는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금지한 불을 쓰며 전쟁을 일으키는 등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한 벌이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세상의 모든 불행과 질병, 고통과 더불어 희망이 들어있는 상자를 전했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뚜껑을 열게 되고, 그 순간 상자 속에 담겨 있던 나쁜 것들이 인간 세상에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에 깜짝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으나 남은 것은 오로지 항아리 바닥에 깔렸던 희망뿐이었다. 평온했던 인류는 재앙에 휩싸였고 판도라는 원죄의 주범이 되었다.
작가 손정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이 원죄의 주범으로 여기고 손가락질하는, 판도라와 같은 처지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담고자 했다. 연민이라는 이타적 감정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사랑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 그로 인해 불쌍하고 가련한 마음을 일으키는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인간 사이에는 사랑이 생겨난다.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손정희는 연민을 통해 판도라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희망, 곧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백설공주'에서 시작한 손정희의 개인적 서사의 세계
▲ 판도라, 2015, 도자, 깃털, 263cm 가변설치
손정희는 첫 개인전에서 전래동화를 도예 작품으로 풀어낸 작업 10여 점을 선보였다. 신데렐라를 비롯해 인어공주, 빨간 두건 소녀 등 동화 속 주인공을 살짝 비틀어 보기 한 인물 조각이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통해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도예 작품을 내보였다. 이번 전시는 이 전시 이후 4년 만의 전시다.
손정희 작업의 주제는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자녀들에게 '백설공주' 등의 동화를 읽어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비틀고 풍자하여 작품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작가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교훈, 감동 또는 재미를 준다는 점이 흥미로워 동화와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본적인 틀에 짜인 이야기들의 다양한 재해석 가능성이 매력적이었다.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 변주해내며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손정희는 이처럼 동화와 신화에서 찾은 다양한 주제를 오늘의 세계와 인간 존재에 대입시켜 현실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주목 해야 할 점은 이 발언이 비판적이기보다 포용적이라는 것이다. 좋고 싫고를 뛰어넘어 현상의 원인을 감싸 안는 제삼자의 깊이 있는 시각은 따듯하다.
공력과 집중력을 통해 펼치는 도예조각의 신세계
손정희의 작품은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한 신선한 발상과 이를 입체로 빚어낸 표현력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다양한 형태로 기이한 분위기를 뽐내는 그의 작업은 도예 조각의 신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손정희의 작업과정은 많은 공력과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흙으로 역동적인 인체형상을 만든 다음, 유약을 바르고 최소 세 차례 굽는 과정을 거친다. 불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다섯 번 이상 구울 때도 있다. 그 결과 손정희의 작품은 한결 탄탄한 밀도와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때로 도자기 조각 위에 헝겊, 실타래, 깃털 등의 소재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는 더욱 풍부한 질감을 살려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대형 공간설치작업을 진행하는 경우 음악과 조명을 곁들여 감각적 효과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