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안평대군의 무릉도원 별장 자리 무계원에서 펼쳐지는 “풍류산방” 그 세 번째 공연이 어제 12월 19일 저녁 4시 펼쳐졌다. 역시 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의 맛깔스러운 해설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은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에서 가야금병창의 진수를 한껏 느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출연하는 정경옥 명창은 어디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삼대에 걸친 명창 가문의 명창인데 큰할아버지가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판개 대명창이고, 어머니는 그 유명한 장월중선 명창이며, 언니 정경임 명창은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흥부가 예능보유자입니다. 그리고 정경옥 명창은 가야금병창계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한 분이시지요.”
▲ 정경옥 명창과 제자 허나래가 함께 한 가야금 병창 모습
▲ 무계원 "풍류산방"은 일주일 전에 이미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경옥 가야금 병창에 몰입된 청중들
가야금 병창은 쉽지 않은 장르다. 가야금만 잘 해서도 안 되며, 소리만 잘 해서도 역시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절정에 다다른 정경옥 명창의 공연은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힘 있고 구성진 소리는 물론 분명하게 들리는 사설과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이 무계원을 신선이 노닐던 무릉도원으로 만들어간다. 특히 제자 허나래와 함께 부르는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는 우리가 흔히 듣던 것이 아니라 박귀희 명창이 가야금병창을 위해 새로 만든 춘향가로 청중들은 연신 “잘헌다”를 외친다.
청중은 정경옥 명창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소리높이 재청을 외친 끝에 정경옥 명창은 제자와 함께 “북한 창작아리랑”을 혼신을 다해 부른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던 스승과 제자의 가야금병창에 청중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
▲ 풍류산방에서 맛깔스러운 해설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이어서 무대에 오른 이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이수자이며,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 장원에 오른 이기옥 명창이다. 서한범 회장은 송서ㆍ율창을 소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의 하나라는 송서•율창(誦書•律唱)은 선비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를 예술화한 장르입니다. 지난 12월 10일 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송서•율창(誦書•律唱)> 학술회의와 공연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학술회의 내내 공연장은 청중들로 메워졌었지요.”고 서한범 회장은 얘기한다.
이기옥 명창은 좌창으로 송서 “등각왕서”와 율창 “계제자서”를 부른다. 예전 아기 울음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와 함께 책 읽는 소리는 세 가지 아름다운 소리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던가? 청중들은 흔히 듣는 공연이 아니어서인지 신기한 듯 송서•율창 공연에 푹 빠져 집중하고 또 집중한다. 청중들은 “저런 공연도 우리에게 있었던 것인가?” 하는 표정들이다.
▲ 이기옥 명창이 율창 "계제자서"를 부른다.
송서•율창이 끝난 뒤 청중을 위한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한오백년 등 경기민요 한마당을 펼친다. 청중들은 이기옥 명창의 힘 있는 소리에 맞춰 모두가 함께 후렴을 부른다. 청중들은 흥으로 하나가 되고 무계원 사랑방은 노랫소리에 들썩인다. 서한범 회장의 설명대로 이날 무계원은 유교 경전 《예기(禮記)》에서 말한 “예(禮)와 악(樂)이 하나 된 무아지경”이 된 듯 했다.
이날도 공연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청중들은 지난주에 이어 공연 내내 추임새 넣기에 바쁘다. 어떤 국악 공연장보다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다. 어머니를 따라온 고등학생 한여울 양(17)은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며 끝까지 일어서서 본다. “엄마가 가자고 하길래 그냥 한번 가본다 하는 마음으로 따라와 봤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소리를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책을 음율에 맞춰 읽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친구들 만나면 공연 본 거 자랑할 거예요.”라고 웃는다.
동대문구동에서 왔다는 장금자(61) 씨는 “국악에 관심이 있어 공연장에 자주 가는데 아직 추임새 하기는 쑥스러워 선뜻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저절로 제 입에서 추임새가 나오네요. 이것이 진정 우리의 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공연장과 프로그램이 종로구만이 아니라 우리 동대문구에도 아니 나라 곳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공연이 끝나고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들은 이미 다음 주 공연도 예약이 마감되었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프로그램은 성공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은 물론 12월 한 달만 할 것이 아니라 상설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들 말한다. 청중들은 1시간 동안 짧지만 달콤한 꿈을 꾸었는지 행복한 얼굴로 자리를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