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2월 19일(토)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회장 유지숙) 주최, 서울특별시ㆍ서울문화재단ㆍ한국문화예술위원회ㆍ국악방송 후원으로 서도연희극 <추풍감별곡> 공연이 있었다. 2009년 처음 무대에 올린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 명창을 중심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 남산국악당 등에서 꾸준히 공연되어 왔으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민요인 서도소리는 한과 슬픔이 묻어나 있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구성지고 구슬픈 가락, 익살과 해학, 그리고 능청거림의 신명도 있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주지 않아 생겨난 설움에 탄생한 ‘수심가’,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 ‘장한몽’, 농촌계원들의 따뜻한 정과 마음을 나누었던 ‘향두계’ 따위가 그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청중들의 사람을 받아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바로 “추풍감별곡”이다.
▲ 장필성이 채봉에게 구애를 한다.(사진 김동국 기자)
▲ 채봉이 장필성의 편지를 읽고 있다.(사진 김동국 기자)
연정, 허욕, 이별, 고뇌, 해후 등 모두 5장으로 구성, 평양 김 진사의 딸 채봉과 전 선천부사의 아들 장필성이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를 서도소리로 풀어낸 극이다.
이날 공연은 음악감독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예능보유자인 최경만 명인, 연출에 전기광(극단 ‘불’ 대표), 대본과 작곡에 이상균 교수(세한대학교), 김형신이 안무를 맡아 호흡을 맞췄다. 또 채봉 역에 김유리, 장필성 역에 김진찬, 평양감사 역에 문현과 이근찬(국악방송 감독)은 물론 문형식(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전수교육조교) 등 국악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연하여 객석의 큰 호응을 받았다.
역시 국악계의 거장 최경만 예술감독과 이상균 교수의 작곡과 대본 그리고 혹독한 담금질로 출연자들의 원성을 받았다는 연출 전기광 감독이 있어서인지 완벽에 가까울 만한 소리 완성도, 매끄럽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이 표출돼 청중이 큰 공연장 예악당을 메울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 추풍감별곡의 한 장면(사진 김동국 기자)
▲ 추풍감별곡의 한 장면(사진 김동국 기자)
▲ 추풍감별곡의 한 장면(사진 김동국 기자)
해설을 맡은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유지숙 명창이 추풍감별곡’을 또 하려한다는 말을 듣고 ‘달걀로 바위치기’일 뿐이라며 말렸지만 그의 염원을 끝내 막을 수는 없었다. 정부가 나서서 살려야 할 소리극을 개인이 큰 출혈을 감수해가면서 살려내는 모습을 보니 정말 눈물겹다. 그러나 이런 유지숙 명창과 출연진들의 큰 노력은 머지않아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을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소리 공부만 하려고 해도 피를 토해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연기까지 해야만 한다. 정말 연출 감독의 혹독한 담금질이 아니고선 이루어낼 수 없는 공연일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연습장이 없어 남의 지하실을 빌려 열악한 상태에서 연습을 하느라 추위에 떨어야 했고 급기야 주인공 채봉 역의 김유리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다른 모든 단원들도 대동소이했다. 사라질 운명의 서도소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강한 정신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올해도 단원들은 꿋꿋하게 <추풍감별곡>을 무대에 올렸다.
이날 공연은 초지일관 주인공들의 소리 완성도는 물론 조연들의 소리와 끼 있는 연기까지 청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장구춤과 함께 평양검무까지 수준 있는 춤도 공연의 완성도에 큰 몫을 했다는 평이다.
▲ 평양검무를 추는 장면(사진 김동국 기자)
▲ 채봉이 기생이 되는 장면(사진 김동국 기자)
▲ 채봉과 장필성의 재회(사진 김동국 기자)
다만, 이 훌륭한 공연에도 약간의 옥에 티는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추풍감별곡”을 보아온 팬들에겐 극의 진행이 조금은 느슨하고 변화가 모자란다는 귀뜸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갖는 한계부분도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거기에 뮤지컬처럼 오랜 연습 시간을 갖지 못한 점도 있다. 그러나 공연을 무대에 올릴 만큼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감생심 이보다 더한 완성도를 꿈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렴동에서 온 이명애 씨는 "처음으로 추풍감별곡을 보았다. 서양뮤지컬 보다 훨씬 내용도 좋고 서도소리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100% 서양뮤지컬이 판치는 세상에 우리 토종 뮤지컬의 보급 차원에서도 <추풍감별곡>의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모두가 <추풍감별곡>을 더욱 사랑해야만 할 것이다." 고 했다.
몇 해째 <추풍감별곡>을 취재해온 기자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는 예술계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추풍감별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꽉 메운 이날의 청중들이 있기에 <추풍감별곡>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