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3월 29일 저녁 7시 서울 서초구 정효국악문화재단에서는 박춘재・이창배제 “소리의 맥을 찾아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한 재담소리를 새롭게 잇고 전승해나가는 백영춘・최영숙 명창의 공연이었다. <재담소리>란 무엇인가?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익살과 해학으로 상황에 맞도록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면서 소리와 춤, 연기로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민속극의 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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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장타령을 하는 백영춘ㆍ최영숙 명창 |
정효국악문화재단은 작은 공연장인데 이날 몰려든 100여 명의 청중으로 긴급히 별도의 의자를 마련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으며 국악평론가 김문성 씨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김문성 씨는 “백영춘 명인은 지금 건강이 많이 안 좋지만 재담소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무대에 선 분이라며 큰 추임새로 응원해달라.”고 운을 떼었다. 본 공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경기민요 한바탕이 벌어졌고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서한범 회장은 “2016년 벽두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 국악을 애호해오던 독지가 한 분이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서초동에 국악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국악인들에게 발표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면서 “그 분이 오늘의 공연을 있게 한 정효국악문화재단 김정석 이사장으로 오늘 우리는 정말 역사적인 자리에 와있다.”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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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사를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양종승 박사, 고려대 김기형 교수(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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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자 김문성 국악평론가(왼쪽), 코메디언 남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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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말을 하는 정효국악문화재단 김정석 이사장 |
이어서 양종승 박사와 김기형 고려대 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그리곤 정효국악문화재단 김정석 이사장이 인사말을 했다. 그는 “재담소리의 인간문화재, 백영춘 명인은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전통예술, 특히 재담소리를 더더욱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영혼까지 불태우는 숭고한 정신에 감탄과 존경을 금할 수 없다. 또한 그의 제자 최영숙 명창의 소리는 힘차면서도 섬세하고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면서 마치 맑은 물이 흐르는 듯한 청아한 소리는 우리의 심경을 울리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는 깜짝 손님이 와 있었다. 최영숙 명창과 오랫동안 교분이 있다는 코메디언 남보원 씨는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구성진 목소리로 민요 한 마디를 해 객석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백영춘 명인과 최영숙 명창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과 함께 장대장 타령을 시작한다. “사설광대 : 지성이면 감천이라 백일정성 효험을 보아 이때부터 부인의 태기가 있어, 태기가 있은 지 열흘 만에 일개 옥동자 하나를 낳았것다. / 엇광대 : 우물에 가서 숭늉 달랜다더니 열흘만에 어떻게 애를 낳아? / 사설광대 : 대감한테 급해 죽겠는데 언제 열 달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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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장타령을 하는 백영춘ㆍ최영숙 명창 |
백영춘 명인은 건강이 좋지 않다는 데 어디서 그런 맛깔스럽고 익살스러운 소리가 나오는지 김정석 이사장 말대로 영혼까지 불태우는 듯 했다. 더구나 최영숙 명창과 주고받는 사설 하나하나에 담긴 해학은 청중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서한범 회장은 “1910년, 한일강제병탄 이후, 간악한 일제는 우리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고 식민지화 했기에 조선 민중들은 웃음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당시 광무대극장이나 원각사 등지에 박춘재의 재담소리가 열린다고 하면, 민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의 재담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하는 점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민중들의 아픔을 달래주었던 이 재담소리는 광복 뒤 다른 장르에 밀려 점차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이때 혜성같이 나타난 백영춘 명인은 정득만 명창과 몇몇 소리꾼들이 박춘재의 사랑방에 드나들며 틈틈이 익혔던 토막소리를 전해 듣고 그 위에 당시의 음반자료나 녹음자료, 원로들의 구술자료와 문헌자료 등을 활용하여 1910년대 이후의 재담소리를 완전하게 재현한 것이다. 그야말로 백영춘 명인은 재담소리의 구세주였던 것이다.
공연은 다시 최영숙 명창의 제자들이 나와 경기민요 연곡으로 흥겹게 만든다. 이날 홍제동 재담소리를 듣기 위해 참석한 유광남(57) 씨는 “재담소리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 백영춘ㆍ최영숙 명창의 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감격스럽다. 더구나 어려운 상황 아래서 재담소리의 맥을 이어나가는 두 분이 정말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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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서도 연곡을 부르는 최영숙 명창의 제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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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서도 연곡을 부르는 최영숙 명창의 제자들 |
한시간 넘게 재담이 주는 흥미와 소리가 곁들인 감격스러운 공연은 끝이났고 공연장을 빠져 나가는 청중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만, 이날 공연의 아쉬움은 음향과 조명이었다. 부천에서 일부러 재담소리를 들으러 왔다는 양 훈(55) 씨는 “두 분 발음이 명확히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특히 재담소리는 사설이 중요한데 공연장 음향시설 탓에 전달이 잘 안 되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또 자연스럽지 않은 조명도 역시 개선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날 공연은 백영춘ㆍ최영숙 명창의 헌신과 김정석 이사장의 국악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을 널리 사회에 알리는 자리였기에 청중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받게했다. 끊어질뻔한 '재담소리'가 그 맥을 이어 훌륭한 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하는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한 청중들은 "재담소리"의 발전과 확산을 기대하며 큰 손뼉으로 이날 공연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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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장타령을 하는 백영춘ㆍ최영숙 명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