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성골은 28대 진덕여왕 때까지 서로 같은 핏줄끼리 결혼하며 왕위를 독점하였습니다. 물론 29대 태종무열왕( 때부터는 성골 출신의 임금이 아닌 진골(眞骨) 출신의 임금으로 이어졌지만..... 신라는 꼭 남자가 왕위를 잇는다는 생각보다는 핏줄이 가장 중요한 임금의 자격이었기 때문에 고려나 조선엔 없는 여왕이 셋이나 되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왕자가 없으면 임금될 사람을 방계에서 찾기보다는 공주가 더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참고 : <에이취디 역사스페셜> “역사의 2막, 통일시대를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