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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삶다’와 ‘찌다’

[우리말은 서럽다 34]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사람은 불을 찾고 만들어 다스리면서 삶의 길을 가장 크게 뛰어올랐다. 겨울의 추위를 물리치고 밤의 어두움을 몰아내면서 삶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먹을 수밖에 없던 먹거리를 굽거나 삶아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삶의 길을 뛰어오르는 지렛대의 하나였다. 굽는 것은 먹거리 감을 불에다 바로 익히는 노릇이고, 삶는 것은 먹거리 감을 물에 넣어서 익히는 노릇이다.

‘삶다’는 물에 먹거리 감을 넣고 푹 익히는 것이다. 감자나 고구마, 토란이나 우엉같이 단단한 뿌리 남새(채소)라면 삶아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그러나 단단하지 않은 것이라도 날것으로는 먹기 어려운 것들, 일테면 박이나 호박 같은 남새는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엇보다도 짐승의 고기는 삶아야 제대로 맛을 즐기며 먹을 수가 있다.

 

   
▲ 감자나 고구마 같이 단단한 뿌리 남새라면 삶아서 먹는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삶는 것에 아주 가까운 것으로 ‘데치다’가 있다. 데치는 것은 물에 먹거리 감을 넣고 살짝만 익히는 것이다. 삶아 버리면 너무 흐물흐물해서 먹을 수가 없을 만큼 여리고 부드러운 먹거리 감, 일테면 이른 봄에 나는 나물이나 여린잎 남새 같은 것들은 데쳐서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삶다’와 ‘데치다’는 먹거리 감을 익히는 정도를 가늠하여 달라지는 것이다.

삶는 것에 가까우면서 데치는 것과는 아주 거꾸로 맞서는 것으로 ‘고다’가 있다. 고는 것은 물에 먹거리 감을 넣고 아주 푹 익히는 것인데, 먹거리 감이 그냥 흐물흐물해지기를 바랄 뿐 아니라 아예 물에 녹아 버리기를 바라며 익히는 것이다. 너무나 단단해서 삶아서는 먹기 어려운 것들을 고아서 먹는데, 무엇보다도 물고기나 짐승의 뼛골을 뽑아내려면 고지 않을 수가 없다. 물고기로는 가물치나 잉어, 짐승으로는 염소나 소의 뼈를 고아서 먹으면 뼈에 칼슘이 모자라기 쉬운 여인네들에게는 덮을 것이 없다고 한다.

‘고다’와 비슷한 것으로 ‘달이다’가 있다. 달이는 것은 고는 것과 비슷하지만, 먹거리 감을 익히려는 것이 아니라 알맞게 물을 줄이려는 쪽에 겨냥이 있는 것이어서 그만큼 다르다. 익히려는 것이 아니므로 불을 너무 세게 하지 않고 김이 잘 오르도록 뭉긋하게 하는 것도 ‘고다’와는 다르다.

가장 흔히 달이는 것의 감은 한약인데, 약재에 들어 있는 약 성분을 남김없이 우려내는 것을 겨냥하지만 실제로는 물을 알맞은 분량에 맞추는 것에 더욱 과녁을 둔다. 그러니까 한약을 달일 적에는 반드시 붓는 물이 얼마인지를 먼저 가늠하고, 물의 양이 알맞게 될 때까지 지켜 앉아서 달여야 한다. 간장이나 젓장을 달일 적에는 성분을 우려내려는 것이 아니라 물기를 줄이는 것에다 온통 겨냥을 하는 것이라, 연신 맛을 보며 지켜 서서 줄어지는 물의 가늠에 날카롭게 마음을 써야 한다.

‘삶다’와 헷갈리기 쉬운 것으로 ‘끓이다’를 꼽을 수 있다. ‘삶다’는 물을 넣지만 먹거리 감을 앞세워 하는 말이고, ‘끓이다’는 먹거리 감을 넣지만 물을 앞세워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호박이나 감자를 삶는다는 말은 먹거리 감인 호박이나 감자를 겨냥하는 것이므로 물은 마음에 크게 두지 않는 것이고, 토란국이나 팥죽을 끓인다는 말은 물을 겨냥하는 것이므로 먹거리 감인 토란이나 팥은 마음에 별로 두지 않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삶다’는 먹거리 감이 삶겼느냐 아니냐에 마음을 쓰고, ‘끓이다’는 물이 끓었느냐 아니냐에 마음을 쓴다는 말이다. ‘끓이다’가 본디 ‘끓다’의 시킴꼴이고, ‘끓다’는 물이 뜨거워져서 김으로 바뀌며 소리를 내고 거품을 품어 올리는 것임을 생각하면 쉽게 알아들을 듯하다.

‘끓이다’에 ‘달이다’를 보태면 ‘졸이다’에 가까워진다. ‘졸이다’는 끓이면서 달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보다도 먼저 끓여 놓고 이어서 달이는 것이라고 보면 좀 더 올바를 듯하다. 끓이는 것과 달이는 것을 알고 있으니 졸이는 것을 따로 더 이야기할 까닭도 없겠다. 다만 ‘졸이다’도 본디 ‘졸다’의 시킴꼴이고, ‘졸다’는 물이 뜨거워져 김으로 바뀌어 피어오르면서 물기가 적어지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졸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다’와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 것으로 ‘찌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삶다’와 ‘찌다’는 아주 달라서 서로 헷갈릴 까닭이 없는 말들이다. 삶는 것은 먹거리 감을 물에 넣어서 익히는 것이지만, 찌는 것은 먹거리 감을 물에 넣지 않고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쏘여서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찌려면 먹거리 감을 물 위에 따로 올려놓고 물을 끓여야 한다. 떡을 찔 적에는 떡으로 만들 가루를 시루에 넣어서 물 위에 얹고, 된장을 찔 적에는 된장 감을 질그릇에 넣어서 밥솥에 올려놓고, 가오리를 찔 적에는 씻은 가오리를 대발에 올려서 물 위에 얹고, 나물을 찔 적에는 씻은 나물을 채반에 올려서 물 위에 얹는다. 그리고 물을 끓여 뜨거운 김이 먹거리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