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약해질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목소리가 약해지고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 목멘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소리에는 사람의 혼이 스며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소중함을 느끼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과학 문명에 의존하지 않았을 때는 글 읽는 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정인지의 글 읽는 소리에 이웃처녀가 매혹된 이 얘기는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송서 율창의 확산방안》의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자로 초빙된 원로 음악평론가 이상만 선생의 말이다. 이상만 선생이 말한 “글을 읽는 소리“란 바로 ”송서”를 말한다.
‘선비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의 하나”라고 한다. 그 소리를 예술화한 <송서율창(誦書律唱)>을 “송서율창보존회 2016 정기공연” 정기공연은 새롭게 각인시켜 주었다.
공연에 앞서 이날의 사회자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한국음악과 김세종 책임교수는 “글(文)・말(言)・소리(聲)를 하나로 어우러지게 해 한국 고유의 뛰어난 예술로 탄생시킨 우리 선조들은 참으로 대단하다.”라고 송셔율창의 의미를 짚어준다.
무대가 열리자 앙증맞은 꼬마 아이들 다섯의 낭랑하고 맑은 소리가 무대를 꽉 채운다. 어른도 어려울 송서율창, 하지만 이 아이들은 씩씩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노래한다. 중간에 한 아이가 잠깐 멈칫거리자 다른 아이가 얼른 받쳐주어 위기를 넘기는 대범함도 보인다. 아! 송서율창의 미래는 참으로 밝지 않은가?
이윽고 오늘의 송서율창을 있게 한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 유창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내종하처거하처(來從何處去何處)요 무후무형지유성(無嗅無形只有聲)을 - 어느 곳으로부터 쫓아와서 어느 곳으로 갈고 냄새도 없고 형상도 없이 다만 소리만 있도다.“로 시작하는 <영풍(詠風)>이다. 송시열(1607~1689)이 지은 바람을 주제로 한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로 시창으로 읊는다. 상하 발성을 많이 해야 하는 노래로 오랜 공력을 쌓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것인데 역시 유창 선생이 왜 명창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후 유창 명창은 적벽부도 불렀다. 송나라 문장 소동파(蘇東坡)의 걸작으로 솔바람이 솔솔 부는 적벽강에 배 띄우고 노래 부르며 흥겹게 노는데 즐겁기도 하다고 슬프기도 하다. 유 명창은 그런 정경을 정말 멋지게 노래하며 ‘송서율창이란 바로 이것이다.’라고 증명하듯 한다.
끊임없이 개성이 다른 출연자들의 송서율창 공연이 이어진다. 이기옥・고수자・김인숙의 “등왕각서(滕王閣序)”도 눈에 띄는 공연이다. 중국 당나라의 천재시인 왕발의 이름을 천하에 날릴 수 있게 한 시를 율창으로 부른다. 여창이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여성의 송서율창을 각인시켜준다.
이후 등장한 노래 “계자제서(戒子弟書)”에 나의 눈은 번쩍 뜨인다. 특히 3명의 남창 속에 젊은 여창 이수완(전수장학생)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객석을 숨죽이게 한다. 소리는 아직 덜 익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있지만, 송서율창의 틀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연의 마지막은 유창 명창을 비롯하여 전 출연자가 함께 하는 아리랑 모음곡이다. 먼저 유창 명창의 전혀 다른 느낌의 아리랑이 그 시작을 알린다. 유장하고 깊이가 있으면서도 슬픔도 느끼게 하는 이런 아리랑이 송서율창의 또 다른 매력이런가? 음색이 다른 제자들의 아리랑도 참으로 멋지다. 특히 마지막으로 이기옥, 고수자, 김인숙이 등장하면서 모두가 함께 부 “뱃노래”는 전 객석이 들썩이면서 흥분의 도가니로 공연을 마무리 하도록 만들었다.
돈화문국악당 공연장은 14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지만 무대가 바로 객석의 코앞에 있도록 설치하여 청중들에게 공연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음향기기를 쓰지 않고 직접 출연자들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게 시설한 훌륭한 공연장이었다.
후암동에서 왔다는 정윤경(57) 씨는 “송서율창이 따분한 소리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공연에 와보니 정말 깊이 있고, 아름다운 소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송서율창을 자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여름 밤 청중들은 돈화문국악당에서 송서율창으로 한바탕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사진, 사진작가 목길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