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의 장례가 우리나라 최초 사회장으로 치러진 날입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0만이었는데 선생의 사회장에 10만 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니 선생이 민중들로부터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과 조선교육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지요. 몇 차례나 이어진 투옥도 마다 않고 일제에 맞서 민족교육운동을 폈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회장에 취임하여 민족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대감들은 동경으로 이사를 가시지요?” 이 말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가 일어난 직후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이완용, 박제순을 만난 자리에서 이상재 선생이 한 말입니다. 이에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으로 쳐다보자 선생은 다시 “대감들은 나라 망하게 하는 데 선수 아니십니까? 대감들이 일본으로 이사 가면 일본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라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선생의 일화 가운데 또 하나는 고종 때의 일입니다. 선생이 고종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는데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김홍육 일파가 고종에게 보자기에 싼 뇌물을 바친 것을 보았습니다. 그를 본 선생은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서슴없이 그 뇌물을 보자기째 난로에 넣어 태워버렸지요. 그런 다음 통곡하며 고종 앞에 엎드려 벌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이상재 선생의 손목을 잡아주었다고 합니다. 1962년 선생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