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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은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특별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글을 새겨서 문 위에 다는 널조각 곧 현판(懸板)은 성문이나 궁궐의 문, 그 밖의 건축물의 문이나 대청 위 또는 처마 밑에 글씨를 판에 새겨서 걸어 놓는 것을 말한다. 흔히 당호(堂號)라 하여, 그 건물의 성격을 알려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특별전을 오는 514일까지 열고 있다.

 

경운궁(현 덕수궁)의 문과 전각에 걸었던 현판 13점을 통해 대한제국 첫 황궁 경운궁의 변천사를 살피는 전시회다. 지금은 대한문(大漢門)이지만 원래 이름인 대안문(大安門) 현판, 본래 경운궁의 정문 역할을 했지만 증축 과정에서 사라진 인화문(仁化門) 현판 실물을 처음 공개했다. 피나무로 만든 두 현판은 대안문이 가로 347, 세로 124, 인화문이 가로 351.5, 세로 122나 되는 엄청난 크기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가 대한문으로 알고 있는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1906년 수리하면서 바뀌기 이전엔 크게 편안하다는 뜻대안문(大安門)”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경운궁 정문인 대안문을 지나는 어가행렬자료사진에는 대안문 현판이 보이지만 고종이 죽은 뒤 백성들이 통곡한 곳은 대한문이 되는 것이다. 대안문과 인화문의 글씨는 행서에 뛰어난 서도가로 대한제국 고위 관료를 지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된 민병석(閔丙奭)이 썼다.

 

그밖에 전시된 현판을 보면 종묘 등으로 나갈 때 드나들었던 북동쪽 문인 '포덕문'(布德門, 은덕을 베푼다는 뜻), 석조전 뒤쪽에 있는 서양식 건물인 '구성헌'(九成軒) 현판,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처소였던 '영복당'(永福堂) 현판, 고종의 어진을 모셨던 '흠문각'(欽文閣) 현판 따위가 보인다. 그밖에 경운궁 궐내각사(闕內各司, 황실을 보좌하는 관청)'회계원'(會計院) 현판과 대한제국 '육군법원'(陸軍法院) 현판도 전시되었다.




그런데 전시물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경운궁의 역사 부분이다. 초기 정비사업, 정비사업 완선과 재건, 궁역의 축소를 그린 변천도를 보여주면서 대한제국의 궁궐 경운궁이 일제의 마수에 의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꿈이 담긴 공간이지만, 고종이 1919년 승하한 뒤에는 규모가 축소되고 많은 전각이 헐렸다. 대한제국의 현판을 처음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