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는 서유구 선생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 완성한 조선시대 실용백과사전의 하나다. 그 내용은 농업ㆍ목축ㆍ어업ㆍ양잠ㆍ상업 따위 생산 전반에 관한 것과 의학ㆍ먹거리ㆍ살림살이ㆍ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 생활 전반의 것을 주제로 하여 16개의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과 분량으로 볼 때 가히 조선의 브리태니커라고 할 만하다.
그 가운데 〈섬용지〉는 《임원경제지》 16지(志) 가운데 9번째 주제로서 건축과 생활용품 및 생활도구에 관한 제반 지식을 담고 있는 생활백과이다. 4권 2책, 모두 99,167자로 이루어진 〈섬용지〉는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 가장 취약했던 분야 중 하나로 알려진 기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으로 “섬용(贍用)”은 ‘쓰는 물건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이다.
‘쓰는 물건’이란 숲에서 사는 데 필요한 물건으로 집을 비롯하여 일상의 주거공간에 필요한 집 재료나 가구 및 소품 일체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섬용지’라는 제목에는 이러한 물건들을 제대로 만들고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넉넉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섬용지〉 권1은 건물 짓는 제도, 권2는 건물 짓는 재료, 나무하고 물 긷는 도구, 불로 요리하는 도구, 권3은 복식 도구, 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방 안의 도구, 색을 내는 도구, 권4는 불 때거나 밝히는 도구, 탈것, 운송 기구, 도량형 도구, 공업 총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섬용지〉에서 주로 소개하는 물건들은 가옥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 그리고 주요 일용품과 배ㆍ수레ㆍ가마 같은 교통수단, 흙ㆍ나무ㆍ돌ㆍ금속 같은 원재료와 이것들로 가공하여 만든 갖은 공산물들이다. 서유구는 당시에는 너무 흔해서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던 물건조차도 하나하나 모두 적어놓았다. 덕분에 요즘은 보기 힘든 전통 생활 물품들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백과사전’이라 하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나열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서유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낙후된 제도와 도구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물건을 응용해 새로운 물건을 개발하여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한옥의 6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옥에서 나오는 찌꺼기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적 배치에 신경 쓰라고 제안하거나, 《왕정농서》에 나오는 곡갑을 응용하여 한 달 동안 소요되는 쌀을 30칸에 나누고 이를 매일 한 칸씩 쓰도록 한 ‘일계체’라는 쌀서랍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이는 서유구가 단지 지적 유희나 호기심이 아니라 실용정신과 애민정신에 바탕해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이와 같은 거작을 저술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섬용지〉는 모두 3권이다. 지난해 11월에 권1과 권2를 엮어 〈섬용지1〉을 펴냈는데 〈섬용지1〉에는 건물 짓는 방법과 재료, 나무하고 물 긷는 도구, 불로 요리하는 도구에 대해 기록이 소개되었다. 올해 1월에는 권3을 번역한 〈섬용지2〉를 펴냈다. 〈섬용지2〉는 복식 도구, 몸을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색을 내는 도구에 관한 기록이다. 〈섬용지3〉은 올해 4월 권4를 뒤쳐서 나왔다. 내용은 불 때거나 밝히는 도구, 탈것, 운송기구, 도량형 도구, 공업 총정리에 관한 기록이다. 이로써 〈섬용지〉 3권을 완역하여 내놓은 것이다.
임원경제연구소 정명현 소장은 “〈섬용지〉는 조선 사람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무엇(기물 및 재료)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방대하고 치밀하게 탐구한 저술이다. 전통시대 기술의 최대이자 최고의 저술이라는 평가에 주저할 이는 없으리라 믿는다.”고 뒤친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풍석문화재단 신정수 이사장은 “서유구 선생은 ‘사대부는 공업 제도를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라고 밝히신 바 있다. 시대를 발전시키고 백성의 삶을 개선할 책임은 결국 지식인에게 있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진정한 사대부라 할 만하다. 선생의 이 같은 마음이 담긴 〈섬용지〉는 21세기 실용학에도 많은 이바지를 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