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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유지숙 명창 치유와 염원의 무대 <기원과 덕담>

북녘의 무가, 고사소리, 화청, 민요가 함께 빚어내는 공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7518일(목) 밤 8시, 삼성동 코우스(KOUS 한국문화의집)에서는 당대 서도소리 최고의 명창으로 알려진 유지숙 명창의 특별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더 이상 북녘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무가와 민요, 강화도 고사소리가 한 무대에서 공연된다. 민간에 전해지는 무속전통을 담고 있거나 불교 포교목적으로 민간에 전해지며 민요화된 것으로 아픔을 위로하며 나쁜 액운을 막아내는 삶의 축원을 담은 노래들이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북녘땅의 전통과 이어져 이제는 어디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렵게 된 소리들이다. 그 노래들이 유지숙 명창에 의해 끊어졌던 숨을 이어가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다. 이번 <기원과 덕담> 공연은 유지숙 명창이 사비를 들여 만들어낸 국내에서는 네 번째 무대이며, 일본 공연을 2회를 포함하면 여섯 번째 공연이다.

 

북녘땅에 두고 온 민요의 명맥을 잇는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


 

20143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열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인 상상축제의 개막공연이었던 이 공연에서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 최경만 명인의 호적풍류와 함께 유지숙 명창의 서도소리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때 유지숙 명창의 서도소리 공연을 지켜본 프랑스 국영방송국 라디오 프랑스의 관계자는 깊은 감동을 받고, 음반 제작을 제안했다. 유지숙 명창은 16개월의 긴 시간을 들여 북녘의 민요와 서도소리를 한 장의 음반에 담았다. 궁심동아리랑, 감내기, 관음세기, 고기벗기는 소리 등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북녘의 민요들을 <북한의 전통민요(Corée du Nord: chants traditionnels)>라는 음반에 담았고, 라디오프랑스의 오코라(OCORA)에서 출시되었다.

 

이 음반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의 유통으로 60여개 국가에 소개되며 한반도 민요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서도소리와 북녘의 민요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순간이었다. 이 음반은 2015-2016 한불상호교류의해 공식음반으로도 지정되었다.

 

유지숙 명창은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했던 강화도에서 태어났다. 실향민들이 북녘에 두고 온 고향땅을 그리며 설움에 겨워 부르던 한반도 북서지역인 황해도와 평안도 민요가 어려서부터 귀에 익숙했다. 말문이 트이자마자 노래 잘하는 아이로 근방에 알려졌던 유지숙 명창은 운명처럼 서도소리와 만났고, 서도소리가 삶을 지배했다. 고 오복녀 명창에게 배웠으며, 오복녀 명창의 수제자로 성장했다. 오늘날 서도소리의 정석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지숙 명창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 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로도 활동 중이다.

 

<기원과 덕담> 국내공연만 네 번째, 일본 센다이와 도쿄에서도 공연한 바 있어...


   

<기원과 덕담>은 유지숙 명창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낸 음반과 동명의 공연이다. 음반에는 이제는 잊혀져가는 강화도의 고사소리, 불교의 화청과 민요의 선율이 섞인 반메기 비나리,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전문 민요가수들에 의해 불려진 화청과 탑돌이, 서도의 무속전통을 담고 있는 축원경, 삼재풀이 등을 2012년부터 2년에 걸쳐 녹음했다.

 

유지숙 명창은 <기원과 덕담> 음반을 출시한 2014년부터 매년 공연 <기원과 덕담>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로 국내에서만 네 번째 공연이다. 지난 2015년에는 일본 센다이 시민회관과 도쿄 호국사에서 한일국교정상화5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센다이 시민회관 1,300석을 가득 메운 공연과 도쿄 호국사 특설무대에 몰려든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며 망자의 명복을 기원하며 살아남은 삶에 대한 축원을 담은 공연에 깊은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매번 공연 프로그램을 조금씩 다르게 구성해온 유지숙 명창은 이번 공연에서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무가를 새롭게 구성하여 소개한다. 평안도에서는 다릿발이라고 부르는 무명천을 굿당 밖에 걸어두는 규모가 큰 진혼굿을 다리굿이라 불렀다. 이 다리굿에서 불려지는 무가들이 유지숙 명창에 의해 새롭게 무대화된다. 또한, 황해도의 무가 중에서 흥겨운 소리들인 부정거리, 영부정, 쑹거타령 등을 추려서 공연한다. 망자를 천도하는 굿판에서 무당이 하는 노래가 아닌, 서도소리 명창을 통해 평안도와 황해도의 무가가 재조명되는 계기를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안도, 황해도의 무가와 강화도 고사소리를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


   

이밖에도 <기원과 덕담> 공연에서는 전통음악계에서조차 깊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소리들이 유지숙 명창에 의해 공연된다. 한때는 서민들의 삶에 녹아있었던 노래들이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소리들의 명맥이 무대에서나마 이어지는 것이다. ‘강화도 고사소리는 경기민요와 서도소리가 혼재되어 있는 강화도의 특성이 담긴 노래다. 정월에서 섣달까지 열두 달의 액운과 살을 풀어내는 일종의 달거리 또는 월령가의 한가지이다.

 

굿보다는 작은 규모의 무속의례였던 고사에서 부르는 노래들은 한반도 전역에 있으며, 지역 민요의 특성을 담고 있다. 서울, 경기에서는 경기민요조의 노래들이, 전라도에서는 판소리조의 고사소리가 전해지는 것이다. 경기도와 황해도의 영향을 모두 받은 강화도 고사소리는 경기민요의 흥겨운 선율과 서도소리의 구성진 창법이 섞여있는 독특하면서도 아련한 정서를 담고 있는 소리이다. 만나기 어려운 소리였지만 유지숙 명창의 음반 <기원과 덕담>에 수록되며 오늘날에도 우리 곁에 남게 되었다.

 

염불, 화청, 민요가 만나고 융화되는 과정을 만날 수 있는 무대

 

반메기 비나리회심곡’, ‘산염불’, ‘개성 산염불’, ‘잦은 산염불등은 모두 불교가사가 민요화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황해도의 대표적인 민요로도 알려진 산염불은 불교적인 내용의 가사가 아닌 일상적인 삶의 은유적 표현을 담고 있다. 주로 이별이나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심정 또는 외로움에 대한 내용이다. ‘산염불과 빠른 장단의 잦은 산염불을 함께 부를 때는 긴염불이라고도 한다.

 

개성산염불산이로구나라는 후렴을 붙이는 노래이며, 개성에 살던 부녀자들이 봄가을에 성의 북쪽 길에서 남쪽 길을 돌며 사후의 안녕을 기원하며 불렀던 노래이다.

 

회심곡은 효()를 강조한 불교경전인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가사로 하여 불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였으나 민요화되어 전해지는 노래이다. 이 공연에서는 유시숙 명창이 노래에 승무가 함께 공연될 예정이다.

 

반메기 비나리는 축원으로 가득한 노래로, 불교의 염불과 민요조의 선율이 함께 어우러진 노래이다. “축원이갑니다 덕담가요, 건고곤명 모씨 댁에 문전축원 고사덕담, 지극정성으로 여쭌뒬랑, 석산가산에 꽃이 피고 힘든 나무 꺽어지리요, 이러니저러니 할지라도 밤이되면는 불이밝고, 낮이 되면은 물이 맑아...”하는 축원이 객석으로 향한다.

 

이번 공연에서 반메기 비나리’, ‘회심곡’, ‘산염불의 순서로 불교의 염불과 화청이 민요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무대라는 진중한 의미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무가, 토속민요, 신민요와 연희까지 끊어진 노래의 숨을 이어가는 유지숙 명창


 


 유지숙 명창은 <기원과 덕담> 외에도 이제는 더 이상 북녘땅에서 들을 수 없는 무가와 토속민요, 신민요들을 찾아내 보존하는 역할을 꾸준히 맡아오고 있다. 1997년에는 음반 <유지숙의 서도소리>에 빅터유성기 음반에 담겼던 신민요 ‘야월선유가‘를 재구성하여 수록한 바 있으며, 2006년 <유지숙의 북녘소리: 토리> 음반에서는 ‘굼베타령’, ‘끔대타령’, ‘산천가’, ‘나물타령’ 등을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맞춰 담기도 했다. 2013년에는 북녘과 연변에서 불려진 아리랑을 모아 <아리랑의 재발견: 구존동이>음반에 담았다. ‘영천아리랑’, ‘백두산아리랑’, ‘단천아리랑’ 등이 유지숙 명창에 의해 끊어졌던 숨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2015년 라디오 프랑스에서 출시한 음반 <북한의 전통민요, Corée du Nord: chants traditionnels>에 담긴 흥겨운 잔칫집에서 불리던 흥겨운 즉흥선율이 푸짐한 닐리리 타령’, 그물에 걸린 명태를 털면서 부르던 고기 벗기는 소리’, 달구지 몰고가며 부르던 소리인 감내기’, 씨 뿌리며 부르던 밟아 소리’, 전통 한증막에서 더위를 참으며 관음보살을 세면서 부르던 관음세기등 수록곡들은 모두 유지숙 명창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끊어진 명맥을 되살리는 기회를 얻었다.

 

이밖에도 유지숙 명창은 평안도의 민속놀이인 향두계놀이를 복원하여 무대에 올렸다. 평안도의 마을공동체인 향두계에서 한 해 농사의 시작인 씨고르기부터 풍년을 거두는 것까지 민속놀이로 하던 것을 되살린 것이다. 2011년에는 평안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도 5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대통령상과 지도자상을 수상하며 전통연희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민속음악의 명인 최경만명인, 진유림 명무의 안무 등 30여명이 출연




<기원과 덕담> 공연에는 당대 최고의 민속음악 명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경만 명인(현 서울시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예능보유자)을 비롯한 30여명이 출연한다. 또한 2016년 강릉단오제 특별공연 단오향을 비롯해 다수의 전통연희극과 무용공연, 뮤지컬을 연출한바 있는 전기광 연출가와 함께 진유림 명무가 안무를 맡아 유지숙 명창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2017 <기원과 덕담> 네 번째 공연이 다시금 주목받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