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50년대부터 이은관 명창의 “왔구나” 배뱅이굿으로 삶의 애환을 달래 왔다. 그러나 2014년 이은관 명창이 배뱅이 곁으로 간 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이제 어디서 배뱅이굿을 듣고 위안을 받을 건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은관 명창이 그냥 세상을 하직한 건 아니었다. 박정욱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남겨두고 간 것이다. 어제 5월 30일 밤 7시 30분 서울 삼성동 서울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명창 “박정욱의 서도소리 30년 기념무대”가 열렸다.
공연 전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단국대 명예교수)은 축사를 통해 “배뱅이굿 공연만 무려 500회를 넘게 했다는 박정욱 그는 배뱅이굿을 부르기 위해 태어났는가?”라면서 “서도소리의 진수를 맛보게 될 이번 무대는 전례 없는 또 다른 감동의 무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원래 배뱅이굿은 서도소리의 1인 창극조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박정욱의 진가를 발휘한 공연이 되었다. 1인 창극이 아닌 다른 소리꾼과 객석의 참여를 끌어내 다인 창극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배뱅이굿은 온갖 팔도무당들이 나온다. 이때 박정욱은 주인공인 평양 사는 엉터리 박수무당 역을 중심으로 공연하면서 다른 남도 무당, 황해도 무당 등은 지역적 소리 특색을 살리기 위해 남도명창, 경기명창, 서도명창 등을 동원한다. 특히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8호 재담소리 전수조교 최영숙 명창의 출연은 이번 공연을 훨씬 빛나게 해주었다.
거기서 끝난 공연이 아니었다. 공연 중간중간 박정욱은 객석에서 관객들을 끌어내 공연의 굄돌을 놓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되었다. 관객들은 어색한 듯 끌려나왔지만 흥을 돋우자 끼를 한껏 발산하여 현란한 몸짓으로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에 다른 관객들은 큰 손뼉으로 호응했다.
그뿐만 아니라 추임새에 인색한 다른 공연에서의 관객들에 견주어 흥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 저기 추임새가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 익숙한 사설이 나오면 따라하는 등 공연 내내 공연자와 관객은 하나로 호흡하고 하나의 잔치판이 되었다.
서울 창신동에서 왔다는 서정자(69) 씨는 공연 내내 “아유 어쩜 저렇게 능청맞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네.”를 수없이 연발하며 배뱅이굿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줄 몰랐다.
특히 하와이 사는 교포 이상윤 화백(65)은 “고국에 왔을 때 이만큼 보람 있던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동안 방송에서만 듣던 그 유명한 배뱅이굿을 직접 공연으로 만날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이런 훌륭한 문화를 가진 한국의 한 겨레임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박정욱 명창은 공연을 마무리 하며 말한다. 소리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그만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스승님들을 생각하고, 어려운 중에서도 열심히 따라오는 제자들, 거기에 더하여 이렇게 배뱅이굿을 좋아해주는 관객들이 있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말했다.
이제 서도소리는 1세대 명창들이 모두 세상을 하직하고 제대로 전승될지 우려스럽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렇게 배뱅이굿에 빠져 배뱅이굿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박정욱 명창 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이제 안심할 수 있겠다며 입을 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