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오래도록 암자에서 괴로운 생각에 묶였다가
가을바람에 시냇가 나앉다
맑은 노을 두어 쪽이 솔잎 섞여 씹히니
내 앞에 신선 길 있음 비로소 알겠다
늙음에 이미 온갖 병 깊이 얽매이니
때때로 지난날의 먼 나들이 생각나다
도반에 억지로 끌려 가을산 오르니
끝없는 흰구름 무릎 앞에 둘리네
이는 해봉대사(海峯大師,1707~1785)의 ‘을미년 가을 놀이’로 69살 때 지은 시다. 해봉대사의 글은 <호은집> 4권이 전하고 있는데 그는 머리말에 쓰길 ‘누구의 퇴고를 받는다든가 문인들의 수집도 바라지 않는다’ 고 했다.
그만큼 해봉대사의 글쓰기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요, 오로지 자신의 느낌을 붓가는 대로 걸림 없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시냇물 입가심, 정신도 맑고
잣잎따서 요기하니 기운이 평안하다
세상에 만족함 아는 것보다 더한 것 없으니
어찌 명예나 이욕으로 남은 해 마치랴
-‘무진년 9월 9일 대견사 옛터에 올라’ 4수 가운데 1수-
욕심 없는 해봉대사의 맑고 투명한 삶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홍류동 바위에 고운의 시가 천년
가야산 전각에 해봉의 진영이 한 폭
시와 진영 무엇이 오래이고 무엇이 짧은가
신선은 아니 죽고 부처님은 시작도 마침도 없다
홍류동 이슬기운을 마시고
가야를 나막신으로 걸으며
나는 고운의 시를 어루만지고
해봉의 진영에 머리 숙여 예를 표한다.”
이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번암집(樊岩集)>에 실려 있는 해봉대사영찬(海峯大師影讚)으로 해봉대사를 위해 쓴 글이다.
해봉대사는 9살에 속리산에서 <소학>을 공부하다 한 스님이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를 읽는 것을 보고 깨달아 15살에 출가한 이래 28살에 가야산의 낙암의눌(洛庵義訥, 1666~1737)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로써 서산휴정-편양언기-풍담의심-상봉정원-낙암의눌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 말년에 가야산에서 15년간 출입하지 않고 수행 정진했으며 세수 78살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