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조선 시대 수령이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업무,‘수령 7사’
수령은 임금을 대신해 백성의 안위를 보살펴야 하는 무거운 자리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지난 1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관”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http://story.kosnet.kr/front/webzine/wzinMain.do)를 펴냈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국가적 성격이 엄연히 다르지만, 좋은 관료를 선발하여 임명하는 것은 시대를 넘어 국정 운영에 핵심이 되는 사안이었다.
조선은 국가 권력이 임금에게 집중되는 왕조국가였으나, 통치 기간 내내 성리학적 민본주의(民本主義)를 표방하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을 최대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은 매년 정기적인 인사고과를 거쳐 지방관을 엄중히 뽑았으며, 임금의 명을 받든 지방관을 전국 330여개의 고을에 파견하여 임금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을 두루 보살피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수령이 해야 할 일을 ‘수령 7사’라고 하였는데, 큰 틀에서 보면 지금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해야 할 일과 매우 비슷하여, 지방선거의 공약으로도 유의미한 부분이 많다.
농업을 발전시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수령의 몫

수령 7사의 첫 번째는 ‘농상성(農桑盛)’으로 농업과 양잠에 힘쓰는 일이었다. 조선의 기간산업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한 해 농사에 힘쓰지 않으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고, 민심은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령은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경제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호구증(戶口增)’으로 호구수를 증가시키는 일이었다. 호구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백성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일종의 지표가 되었다. 세금이 가혹하거나,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살던 마을을 떠나게 되기 때문에 호구수는 줄게 된다. 중앙정부는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 수령에게 묻고 고과에 이를 반영하였기에, 수령은 평시에 구휼물자를 준비하고, 그렇지 못하면 중앙정부에 요청해서라도 구휼할 곡식을 마련해야 했다.
학교를 일으키는 것과 군대를 정비하는 것까지
고려시대의 수령보다 더 늘어난 두 가지 책임과 권한
세 번째 ‘학교흥(學校興, 학교를 일으키는 것)’과 네 번째 ‘군정수(軍政修, 군정을 정비함)’는 고려시대 수령에게는 부과되지 않았던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이 두 가지 사항이 새롭게 덧붙었다. 학교를 일으키는 것은 유교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채택되었는데, 이에 따라 조선시대 수령은 관내에 유학경전을 교육시키는 향교를 설치하고 운영해야 했으며, 책판을 만들어 서책을 펴내는 일도 담당하였다.

또한, 지방군의 훈련과 군기를 정비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 수령은 지방의 행정 뿐 아니라 지방에 배정된 군인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이들을 조련시키는 한편, 군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이를 관리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한 가족의 가장일 수도 있는 성인 남자를 군인으로 차출하여 먼 곳으로 보내거나, 군대를 위한 물자를 거두는 일에 있어서 만약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거나, 조금만 지나쳐도 백성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기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리 없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비로소 수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행정, 군사, 사법에 이르기까지 수령의 무거운 책임
부패한 향토세력에 대한 질타와 비판에도 앞장 서
다섯 번째 책임은 ‘부역균(賦役均)’으로서 부역의 부과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여섯 번째 책임은 사송간(詞訟簡)으로 재화의 소유권이나 신분상 문제들에 얽힌 백성들 사이의 법적 분쟁들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처결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책임 역시 백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서, 수령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이었다.

법률상으로는 조선시대 수령의 권한은 행정, 군사, 사법의 세 가지 영역을 모두 관장하는 막강한 것이었으나, 외지인인 수령이 향토세력의 뿌리 깊은 권력구조에 맞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령의 일곱 번째 책임으로 간활식(奸猾息)이 주어졌다.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그치게 한다는 내용으로 이는 다소 추상적인 조목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행정실무를 장악한 향리(鄕吏)와 품관(品官)에 대한 제재를 뜻하는 것이었다. 수령은 이들이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을 사전에 단속하고 규제하는 일에 힘써야 했다.
목민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기류에서 창작소재 발굴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삶을 조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임금이 선발하는 지방관과 국민이 선발하는 지방관은 비록 형식은 다르지만, 지방관이 권한을 위임 받아 지역 살림을 책임지고 운영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 수령 7사는 권한이기 이전에 무거운 책임이며, 백성의 생활을 속속들이 보살피려는 의지와 노력 없이는 이행하기 어려운 조목들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낯선 타향에 수령이 되어 살아간 조선시대 지방관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구구한 삶의 이야기들은 귀양을 떠난 양반들이 직접 써내려간 “일기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4,27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 달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미디어에서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조선의 지방관들에 대한 이미지는 춘향전의 변학도나 고부군수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수령 7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목민관들의 노력은 분명히 존재하였다.”면서, “목민관의 일상생활과 백성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는 수령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일기류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의 역사콘텐츠가 창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일기 속 지방관 이야기>
❚ 떠나는 수령에 대한 평가 예안현감이 파직되어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조선시대 수령의 고과) 김령, 계암일록, 1625-12-24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3171
헤아리기 어려울만큼의 선정을 베푼 고을수령, 떠날 때 백성들이 눈물로 길을 막다 서찬규, 임재일기, 1852-02-22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HS_0025
예안현감 박선장이 파직되다 김광계, 매원일기, 1609-04-05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HAR_6127
❚ 새로 부임한 수령에 대한 기대 이웃 고을 수령들의 어진 정치를 듣다 (목민관의 표본 정세규) 김령, 계암일록, 1631-11-28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4027
영천 수령 김언의 미담을 듣다 김령, 계암일록, 1629-12-18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3241
공주 목사로 부임하다 (3) - 언 뱃길을 도끼로 깨고 목사를 마중 나온 백성들 권문해, 초간일기, 1580-11-22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SE_2005
신임 예안현감 나무송이 부임하다 김령, 계암일록, 1630-12-14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3264
❚ 지방관, 재지사족과의 공조와 대립 예안 현감 홍석우의 어리석음을 논하다 김령, 계암일록, 1631-11-07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4025
예안 현감이 신주를 새로 만드는 예를 의논하다 김령, 계암일록, 1638-05-29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4185
상여일꾼을 관청에서 빌리다 (관청 노동력의 활용) 권상일, 청대일기, 1711-09-05 ~ 1711-09-20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B_3011
어질고 현명했던 신임 감사, 추악한 본 모습을 드러내다 김령, 계암일록, 1623-06-10 ~ 1623-07-01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SE_1068
청렴하고 고지식한 신임 감사의 임기 연장을 위해 통문을 돌리다 김령, 계암일록, 1622-05-15 ~ 1622-05-19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SE_1052
고을수령과 지방토호의 기싸움 김령, 계암일록, 1607-03-13 ~ 1614-11-01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HS_1085
만날 약속을 번복하는 군수와 신경전을 벌이다 (조선시대 재지사족과 수령)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6-09-21 ~ 1616-10-01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CEJ_0008
종 유남이가 새 현감을 흉보다가 걸리다 김령, 계암일록, 1634-09-13 ~ 1634-09-16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4109
신임 예안 현감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다 김령, 계암일록, 1641-01-15 ~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SSK_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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