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오는 9월 22일까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효명세자(1809~1830년)가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본 3년 동안의 대리청정 기간(1827~1830)에 궁중 잔치와 궁중정재(呈才), 궁궐 영건, 궁궐도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과 이러한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성장 과정과 교육, 문예적 재능 등을 주제로 조명한다.
* 궁중정재(宮中呈才):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는 악기연주ㆍ노래ㆍ춤으로 이루어진 종합예술
* 영건(營建): 국가가 건물이나 집을 짓는 것
특별전은 ▲ 효명세자의 생애, ▲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 ▲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 ▲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 등으로 내용을 구성하였으며, 110여 건의 유물과 다양한 매체와 영상기법, 재현공간 전시로 효명세자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효명세자(孝明世子)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세도를 부리던 순조(純祖, 재위: 1800∼1834) 때의 세자였다. 그는 대리청정을 하면서 국정의 혼란과 민생의 파탄을 가져온 ‘세도(勢道)정치’를 억제하고, 왕권을 회복하려 했지만 22살의 짧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왕세자였다.
《동궁일기(東宮日記)》, <왕세자입학도>, <예진(睿眞)> 등 소개





특별전은 22살 짧은 세자의 삶을 탄생ㆍ책봉, 교육ㆍ입학, 관례ㆍ가례, 대리청정, 죽음의 시간 순으로 소개했다. 왕세자 책봉 뒤 지속적으로 기록된 《동궁일기(東宮日記)》와 대리청정 시 정무 내용에 대한 기록인 《대청시일록(代聽時日錄)》을 비롯해 성균관 입학과 관례 등 왕세자 효명의 주요 통과의례를 그림으로 기록한 <왕세자입학도>와 <수교도>, 그리고 효명세자의 18살 모습을 담은 <예진(睿眞, 왕세자 초상화)>과 1830년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직접 쓴 표제가 남아 있는 <순조 어진> 등의 유물이 전시됐다.
단 순조 어진과 효명세자의 예진(왕세자의 초상)은 불에 타서 현재 표제와 초상화 일부만 남아있어 안타깝다.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에서는 정조에 버금가는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를 보여주는 《학석집》 등 효명이 지은 각종 시집과 문집, 편지글들을 소개했다. 특별히, 전시 공간을 효명의 서재인 의두합(倚斗閤, 창덕궁 후원 애련지 옆에 자리함)으로 꾸며 관람객들이 효명의 서재에서 그의 꿈을 생각해보도록 꾸몄다.
효명세자는 서재 의두합의 경치를 10가지 절경으로 분류한 시 ‘십경(十景)’를 소개해 그의 문학적 재능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했다. 또 효명의 시 말고도 신하들이 지은 답시 등을 영상자료와 함께 소개했으며, 영상은 의두합 주변으로 펼쳐진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담아냈다.
그리고, ▲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에서는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에 그려진 《동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정치ㆍ교육ㆍ개인 공간들의 세부를 소개하는 9m의 대형영상을 통해 기존에 조명되지 않은 《동궐도》 속 효명세자의 거처와 창작 공간의 의미와 기능, 이를 통한 효명세자의 삶의 지향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 동궐도(東闕圖):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으로, 1828~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약 3천 여 그루의 나무와 함께 수많은 건물이 그려져 있는 조감도식 궁궐 배치도
진작위궤로 보는 궁중 정재



다음으로 ▲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에서는 궁중 잔치와 정재에서 효명세자가 이룬 괄목할만한 업적을 소개한다. 그는 대리청정기 동안 왕실의 위상 강화를 위해 해마다 궁중 잔치를 열면서 밤잔치인 ‘야진찬(夜進饌)’을 처음 행하고, 23종의 정재에 대한 창작을 주도하며 독무(獨舞)를 처음 선보이는 등 조선후기 궁중 정재의 혁신을 이끌었다.
그런 내용은 1828년 순원왕후의 사순을 기려 가행된 잔치의 내용을 담은 《진작의궤(進爵儀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진작의궤》는 영상으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는데 정재 한 장면 한 장면을 담은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829년 자경전 밤잔치의 모습을 당시 유물과 투명 디스플레이(display) 화면에 펼쳐지는 3차원 입체(3D) 만화영상으로 구현해냈다. 특히, 왕실여성이 참여한 이 잔치에서는 여령(女伶, 여성 공연자)이 정재를 연행했는데,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와 잔치의 재현을 위해 기존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여령 복식’과 왕실 잔치에 술잔으로 사용된 ‘옥잔’과 ‘마노잔’(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을 국내에 처음 전시했다.
명온공주와의 편지, 한시에 음을 적고 한글 번역과 풀이 달아
그리고 효명세자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여동생 명온공주(明溫公主)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첩도 소개됐다. 이 편지는 한시에 음을 나란히 적고 한글 번역과 풀이를 달아 한글로 문자생활을 한 공주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시장에는 한가위 연휴를 맞아 가족끼리 함께 와 효명세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상해보는 풍경이 보였다. 서울 목동에서 온 강나래(14) 양은 “효명세자가 청소년기부터 시를 짓고 궁중춤을 창작하는 등 훌륭한 분이었는데 일찍 세상을 뜬 것이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효명세자의 예진이 불에 탄 것을 보니 슬펐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 진관내동에서 온 민영아(37) 씨는 “시인이면서 정재를 창작하기도 했고, 궁궐 건물을 지은 것은 물론 궁궐도 제작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이 드러난 효명세자가 일찍 죽은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어쩌면 인조 때 소현세자가 요절한 것과 함께 조선에 큰 불운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전시를 통해 효명세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고, 왕세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