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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다래기 신가 그리고 전승자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8]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며 부르는 뱃다래기

 

평안도 다리굿 신가(神歌)는 한때 평안도 땅 전역에서 전해져 왔다. 그러다가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서울로 월남한 평안도 무당들이 남한에서 성황대제와 다리굿을 재개하면서 불리게 되었다. 다리굿에서 불리는 뱃다래기도 월남한 평안도 무당들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며 평안도 다리굿의 중요한 자료다.

 

뱃다래기는 다리굿 후반부인 기밀굿의 수왕세텬(또는 시왕서천) 과정 속 들어 있는 노래이다. 무당이 망자를 오색화초가 만발한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자(使者)를 모신 뒤, 망자 혼이 실린 다릿발을 들고 저승으로 잘 데리고 가겠다고 다짐하며 부른다. 여기 소개하는 <뱃다래기>는 2003년 정대복 대무당이 구술한 것이다.

 

 

〈뱃다래기 신가〉

간밤에 백양래하니 칠백동자 전도합소사 송방은루 송동자니 사모혼신을

전도하소사 육로로 삼천리 수로로 이철리 약수삼철리 드리구 견을 쓰구

오색초롱 만발한데 환전인행하소다 동방에는 청대장군 청사초롱에 불할켜라

김일영감을 모셔라 서방에는 백일장군 백색초롱에 불발켜라 김일영감을 모셔라

북방에는 흑이장군 흑색초롱에 불발켜라 두황목에는 황이장군 황색초롱에

불발켜라 김일영감을 모셔라 이승강 서른강 저승강 서른세강은 하수강도

서른세강 아흔아홉 명주로 배를 져라 으랑만코 게고맣는 종이배는 능그라지고

옥으로 배를 짖고 진주로 선을 두르니 금에돌로 닷을 돌루니 닷줄은 산하출이다

달가운데 계수나무로 돛대를 세우고 화초잎을 따서 돗을 달고

바나나 영선뒤에 놓고 사해 용왕패두선 놓고 한칸에는 약하사자 실어놓고

또한칸 에는 못인사자 실고 착한사자 어진사자 실고 사자님께 멋으로 인정쓰고

공양미 삼백석 밧치니 일만이천량 인정쓰니 또한칸에는 수황포 실고

동점살림 하절살림 질구우환을 다걷어 실코 앞사공아 배머리 돌려라

뒷사공아 닷걷어 매라 배선도야 물두수 보아라 오동추야 달밝은데

춘풍 낫다고 돗달아라 삼주삼강을 건느니 사해용왕이 득달하시니

세천세우국이 분명하다 인왕보살이 천도하니 천당보살이 천도하고

지장보살이 천도하고 관세음보살이 천도하고 세청보살이 사보살이 미력보살이

애미보살이 팔만구암자 칠백동자 오백난이 제물보살이여 부지게

서기발 쌍무지개 서기발로 청학백학이 내려오니 날개에 가라연고

연일곱가세문을 썩 건너서니 세천 세우국에 날개짐승도 출납못하는 꽃이니

옥황 황제 벗을 삼고 선관선인에 자기동생삼고 팔선녀 히롱하고

오색화초 만발한 꽃에 부처님 아들되고 부처님 동자되고 오색화초 만발한

환천인생하니 자손만대에 부귀영화 하옵소사

 

 

다리굿 전승자 김남순

 

 

김남순은 1952년(여, 실제나이 1950년생)은 경남 사천군 사천읍 출신이지만 평북 철산 출신의 남편 김영길로 인해 평안도 문화와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을 받을 때 평안도 무당을 신어머니로 삼게 되었고, 평안도 굿을 전승하게 되었다. 김남순은 열한 살 되던 해부터 이유 없이 매우 아팠다. 심하게 아플 때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으며 밥을 먹지도 못했다. 물만 먹어도 토했다.

 

성당을 다녔는데 처음에는 그럭저럭 성당 활동을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화가 나고 머리가 아팠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 보기도 하고 피를 뽑아 보기도 하였다. 병원에서는 신경성이라 하면서 특별한 치료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먹기만 해도 아팠다. 그러면서 남의 일에 대해 꿈을 꾸고 나면 실제적 일들이 꿈대로 되곤 하였다. 그러면서 까닭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기가 일쑤였다. 결국, 김남순은 경남 곤양중학교도 중퇴하고 말았다.

 

어느 날 성당을 다녀와 집에 있는데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놀러 가자고 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는데 놀러 간 집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던 보살집이었다. 다음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 보살이 김남순의 머리 위에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앉고 있어서 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남순은 보살의 말을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남순은 당시만 하더라도 무속세계는 물론이고 타 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고 그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다.

 

 

김남순은 어느 때부터인가 꿈을 꾸게 되면 자주 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날은 꿈속에서 사람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일어나 사람을 구하라는 전언을 받곤 하였다.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꿈에 말한 곳을 가보면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여러 번 사람을 구해냈다. 한때는 딸이 심하게 아팠다. 그러다가 딸이 좀 괜찮다 싶으면 남편이 쓰려져 있곤 하였다. 자주 이상한 꿈을 꾸게 되면서 집안 식구들이 아프고 본인도 역시도 몹시 아팠다.

 

하루는 성당을 다녀왔는데 친구가 찾아와서 전에 녹번동 보살이 말 한대로 신을 받으면 이러한 고통이 모두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돈 3백만 원을 빌려줬다. 친구의 말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내림굿을 받아 보기로 하였다. 내림굿은 북한산 중턱에 있었던 어느 굿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굿을 주관한 무당이 일곱 명의 신딸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김남순이 보기에는 차려둔 굿상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굿당에서 내려와 버렸다.

 

그랬더니 친구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할 수 없이 다시 굿당으로 올라가 굿판에 앉아 있는데 신령님께 절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절을 하고 춤을 추어야 한다고 해서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1988년 5월 17일 내림굿을 받게 되었다. 이후, 김남순은 무업의 길로 들어서서 정대복 대무당으로부터 다리굿 등 평안도굿 문서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