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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달이 좋은 까닭

비우니까 채워지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내니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6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벌써 아침인가?​

 

부스스 눈을 부비며 일어나보니 창밖이 훤하다. 날이 벌써 새나? 이런 생각에 밖을 내다보니 아직 지지 않은 둥근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다. 내일이면 8월 보름 아닌가? 곧 더 원만해질 달이 자애롭게 서쪽 하늘에서 웃고 있는 새벽이다. 한가위 대보름을 위해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어지며 달려온 저 달이 오늘 새벽에 일찍 나를 깨운 것이다. ​

 

그 달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밑으로 내리니 세상이 온통 은빛 속에 춤을 춘다. 북한산 자락에 세워진 아파트 사이의 도로도 차량의 흔적이 끊긴 채 고요하고, 올려다보이는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시립(侍立, 웃어른을 모시고 섬)한 그 위로 달빛 공주의 춤을 보며 손뼉을 쳐주고 있다.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은 어떻게 그리 이 달빛을 보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절창을 했을까? 어떻게 이 달빛을 보며 고단한 인생,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나그네의 심사를 온통 다 쓸어 담았을까?​

 

床前明月光  침상 앞 달빛 어찌 그리 밝은지

疑是地上霜  서리가 내린 줄 알았잖아

擧頭望明月  고개 들어 밝은 달 보다 보니

低頭思故鄕  고향 생각에 고개 절로 내려가네 。

 

다섯 글자로 넉 줄, 곧 20자의 한자로 표현한 가장 간결한 달밤 정경인데, 초저녁이 아니라 나처럼 새벽에 깬 상태이리라. 정야사(靜夜思), 곧 고요한 밤에 생각나는 것이란 제목에서 사람들이 달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비로소 알겠다.

 

우리가 보름달이 좋은 것은 그 속에 고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고향은 곧 부모님이고 부모님은 곧 우리에게 언제나 먹을 것을 대어주시던 포근함이고 넉넉함이다. 무엇이든 해주려 하고 무엇이든 먹이려 하고 무엇이든 객지에 나간 자식을 위해 싸주려 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다.

 

 

우리가 추석이라고 그 고생을 해가면서도 고향에 가려고 하고 겨우 한 시간을 보고 올망정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마음, 그 포근함, 그 사랑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도시로 나가서 살지 않으면 갈수록 어렵고 그 속에서의 삶이란 팍팍함과 살벌함으로 점점 달려가는 이 현실에서 우리에겐 고향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운 것이고 아무 걱정없이 부모님이 해주시던 그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은 것이리라. 비록 팔순 구순이 되어 이젠 움직이기도 힘들어지신 부모님일지라도 그 주름진 손으로 만든 음식을 받아먹어 보고 싶고, 그 깊게 팬 눈가의 주름이 웃음과 기쁨으로 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먹고 산다고 고향을 나와 일에 매어 살다 보니, 또는 찾아갈 부모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대신 부모을 만나는 것이다. 그 달 속에 부모가 있고 고향이 있고 사랑이 있고 풍성함과 풍요로움이 있다. 달은 곧 어머니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빛을 보고 고향의 서리를 생각한 이태백보다는 달빛을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 달빛을 서리가 아니라 어머님의 백설기 쌀가루라 생각하면 비록 지금 남들보다 모자란 것 같고 못난 것 같아도 마음은 더 풍요롭지 않은가? 겨우 하루가량 둥글다가 곧 하현달로 접어들 저 달이 펼칠 공주의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추는 춤을 되도록 더 많이 보고 조금 더 창밖의 백설기 쌀가루를 마음으로 받아먹어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저 보름달이 기울지 않고 언제나 둥글었으면 하지만 말이다. ​

 

 

십오야의 달(十五夜月)

十五寒宵倚石欄 십오야 차가운 밤 난간에 기대어 서니

多看月色正團團 둥글둥글 보름달 참 밝기도 하구나

初陞嶺首開金鏡 고갯마루 처음 떠오를 땐 황금 거울 열린 듯

轉上天中掛玉盤 하늘 한가운데 올라서는 옥쟁반 걸린 듯

玄兎杵邊光自滿 검은 토끼 절구 옆엔 눈부신 흰 빛

姮娥窓外影無剜 항아의 자태도 어김없이 드러나네

誰干上帝同弦望 달이 언제나 둥글도록 누가 하느님께 청해다오

長使淸輝遍世間​ 맑은 이 빛 두루 세상을 길이길이 비추어 달라고

 

                                                   ... 이응희 [李應禧, 1579 ~ 1651]

 

 

 

그러나 보름달이 좋은 것은 언제나 둥글기만 하지 않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믐과 초승달,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아주 감출 수 있는 날도 있기 때문이리라. 늘 훤하게 보름달만 있다면 누가 그 고마움과 덕을 알리오. 스스로 몸을 줄여 비움의 고마움을 실천하니 다시 채움의 덕이 두드러지는 것이리니.

 

비우니까 채워지는 것이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낸다.

 

그러므로 보름달이 좋은 것은 늘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29일을 지나서 얻는 한 번의 선물이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가장 큰 달은 한해 365일 가운데 하루니 말이다. ​

 

그러고 보면 달은 참 자유로운 존재라 할 것이다.

그 비움의 덕을 우리가 배울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손길 같은 저 보름달도 올해는 고향의 어머니와 같이하지 못하고 각자 도회지 자기 집에서 오로지 아들딸들만 같이 보라고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기에 아빠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실증해 보일 수가 없구나. 그저 마음만으로, 그러다가 혹 영상으로라도 서로 함께 하는 것이지, 눈앞에서 그 사랑을 만져가며 확인할 수는 없겠구나.

 

아 올해는 부모님의 사랑도 부모님이 해주는 송편의 맛도 모두 머리로만 생각으로만 맛보는 정말로 전대미문의 추석이 되겠구나. ​

 

보름달이여, 내년에는 부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당신의 원력을 발휘해 주세요! 당신 비움의 내공이 내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신공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