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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세 사람 평창강 따라 걷기 시작

[평창강 따라 걷기 – 제1구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평창강 따라 걷기 – 제1구간]

 

<답사 날자> 2020년 11월 11일 (수), 오전 10:10~ 오후 4:00

<참가자> 이상훈, 우명길, 원영환

<답사기 작성 날자> 2020년 12월 5일

 

2015년 8월에 25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에 작은 집을 짓고 귀촌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꿈도 많고 가슴이 뜨거웠던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대머리 양쪽에 하얀 서리가 내린 칠십 노인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에 견줘 힘든 일을 안 하고 잘 먹고, 또 건강 관리도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주민증 나이로는 70이라고 해도 남이 나더러 노인이라고 부르면 때때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나 착각하기도 한다. 내 나이를 말하면서 고희(古稀: 人生七十古來稀를 줄인 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인구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2018년 기준으로 80세라고 하니, 남만큼만 산다고 해도 아직은 10년이라는 세월이 남았다.

 

내가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내 벗 가운데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사대 화학과 68학번 동창인 우명길(주: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이 시인마뇽이었으므로 이하 그렇게 호칭함)은 대기업인 쌍용그룹 계열 회사인 쌍용제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퇴사한 뒤에 중소기업 사장을 하기도 했다.

 

시인마뇽은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다 오른, 문자 그대로 ‘산 사나이’이다. 그는 총길이 2800km에 달하는 남한의 백두대간과 9정맥을 5년 동안에 완주하였고, 올해에는 섬진강을 발원지에서부터 하구까지 223km를 걸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추었지만, 내년부터 5년 동안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시원지부터 하구까지 모두 걷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시인마뇽은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친구 원영환(주: 호가 석주(石舟)이므로 이하 그렇게 호칭함)은 서울사대 지구과학과를 졸업한 동창인데, 그 역시 산을 좋아하기는 시인마뇽 못지않다. 석주는 서울 배화여고에서 10년 전에 교감을 끝으로 정년 퇴임을 하였다. 그는 퇴직 뒤 백수생활을 시작하면서 “1년에 100개의 산을 오르겠다”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계산해 보면, 매주 2개의 산을 올라야 1년에 100개를 채울 수가 있다. 얼마 전에 석주를 만나 물어보니 지난 10년 동안 모두 1,000개의 산을 올랐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의 수는 4,440개라는데 앞으로 30년은 더 등산할 수 있겠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제는 기력이 떨어져서 앞으로 500개의 산을 더 오를 수 있으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다”라고 매우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산을 좋아하는 세 사람이 어느 날 만났는데 내가 제안을 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나이도 있으니, 힘들게 산을 오르는 대신 평평한 강길 따라 걸어 보자. 우리 집 근처에 220km 길이의 평창강이 흐르는데, 평창강 따라 쭉 한번 걸어 보면 어떨까?” 뜻밖에도 쉽게 두 사람이 좋다고 맞장구를 쳐주어서 평창강 따라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창강 따라 걷기는 시작은 올해에 하지만 평창강을 20구간 정도로 나누어서 내년에 본격적으로 걸으려고 한다. 한 달에 2번 정도 걸으면 내년 말까지는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간혹 중간에 빠지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람이 참가할 수도 있어서 참가자 수는 들쑥날쑥하겠지만 나는 빠지지 않고 걸으려고 한다. 평창강 가까이에 살고 있고, 또 내가 제안했기 때문에 여행 준비와 답사기 쓰기는 내가 맡아서 하기로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평창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의 계방산(桂芳山, 1577m)에서 속사천이 발원하여 봉평면의 흥정천과 합류하면서 평창강이 되고 이후 대화면, 방림면, 평창읍을 지나 영월군의 무릉도원면, 한반도면을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직선거리는 60km에 불과하나 총길이는 220km에 달하는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의 중상류에서 지반의 융기 또는 침식기준면의 하강으로 원래 형태를 유지하며 물길이 깊게 파인 하천)로 유명하다.

 

유역에는 계방산을 비롯하여 흥정산(1277m), 태기산(1261m), 백적산(1141m), 대미산(1232m) 등 1,000m가 넘는 산악들로 둘러싸여 고원지대를 이룬다. 1월 평균기온은 –3.3도, 8월 평균 기온은 24.5도, 연평균기온은 10.3도이며 연강수량은 1,082mm로서 건조한 편이다.”

 

평창강 따라 걷기를 시작하는 하루 전 11월 10일에,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시인마뇽은 군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장평터미널로 오고 서울 대방동에 사는 석주는 서울역에서 KTX 기차를 타고 평창역으로 왔다. 내가 차를 운전하여 마중 나가 두 사람을 태우고 봉평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 집에서 하루 자고서 11월 11일 아침에, 각시는 우리에게 아침밥을 잘 차려주고 간식으로 먹으라고 시금자떡(주: 검은참깨를 발라 만든 떡)을 싸주었다. 내가 차를 운전하여 봉평면으로 나가서 점심식사로 먹을 참치김밥 4줄을 샀다. 그리고서 우리는 평창강이 시작되는 마을인 용평면 백옥포2리로 갔다.

 

 

우리는 강의 서쪽으로 나 있는 포장된 424번 지방도로 대신 강의 동쪽에 나 있는 작은 길을 걷기로 했다. 이 길은 비포장 구간도 있고 집들도 많지 않아서 한가하고 조용하여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이 길은 산에 막혀서 끊어진다. 카카오맵을 이용하여 조사해 보니 1구간 시점에서 종점까지 거리는 6km이다. 우리는 종점에서 차가 있는 시점으로 되돌아와야 하므로, 오늘 걷는 거리는 12km가 된다. 백옥포2리 시점에는 2017년에 평창군에서 세운 비석과 안내문이 있었다. 비석 옆, 근사한 돌에 평창강의 설명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한강의 상류 평창강은 태기산 동쪽 흥정산에서 발원한 흥정천과 오대산 남쪽 계방산에서 발원한 속사천이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2리에 위치한 이곳 의풍포에서 합류되어 시작된다. 이곳은 태기산의 이름이 유래가 된 맥국의 마지막 왕인 진한의 태기왕이 호위장군 삼형제 장군과 함께 삶을 마감한 곳으로 태기왕 전설이 내려오는 삼형제 장군 바위가 위치한 곳이기도 한다. 평창강은 직선거리 60km인데 반해 유로연장은 220km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행천으로 평창군을 가로질러 영월에 이르러 주천강과 합류되면서 영월군에서는 서강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시작된 평창강이 영월에 이르러 서강이 되고 오대산 우통수가 진부 오대천으로 흘러 영월에 이르러 동강이 되어 이 두 강이 합수되어 남한강이 된다.”


 

 

흥정천과 속사천이 만나는 곳에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위가 뾰족하지 않고 매우 평평하다. 바위 높이는 어른 키보다 조금 큰데 위가 뾰족하지 않고 매우 평평하여, 바둑판을 놓고서 바둑을 둘 수도 있겠다. 바위 이름이 ‘삼형제 장군 바위’이다. 삼형제 장군 바위는 세 개이므로 삼형제(三兄弟)가 연상된다. 그러나 바위는 세 개이지만 삼형제는 한 사람의 장군 이름이다. <평창군 지명지>에서는 백옥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부족국가 시대 맥국(貊國)의 마지막 왕 태기(泰岐)가 춘천 지방에서 다른 부족에게 쫓겨 원주로 옮기고 세력 확보를 위해 강릉 지방의 예국(濊國)과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전력에 밀려 태기산성이 함락되고 급히 피난을 떠났다. 태기왕은 워낙 당황했고 적군의 추격이 급하여 피난하던 중 옥산대(지금의 안흥동)에서 옥새를 잃어버리고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도 모두 전멸하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삼형제 장군은 단신으로 왕을 모시고 백옥포(白玉浦: 白衣장군이 옥체를 업고 물에 빠졌다 하여 백옥포라고 부름)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는 전설이 전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