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생각해 보니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난날의 내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본다.
1960년대까지도 우리는 보릿고개를 이야기하던 가난한 살림살이었다.
당시 대구상고 정문 앞에는 소설가 송일호 씨가 운영하던 희망서점이 있었고
그 건물 2층에는 <재구농촌출신학우회>라는 기다란 나무 간판이 붙어 있었다
대구로 유학 나온 학생들이 하숙이나 자취를 하면서 이 모임에 참여하였고
함께 모여 토론하고 또는 저마다의 생각을 웅변으로 발표하고 연습하면서
청운의 꿈을 품고 함께 힘을 기르자는 그때는 매우 뜻깊은 모임이었다.
그 모임 2층 사무실 큰 거울에는 <먼저 거름이 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때의 그 글은 소설가 송일호 씨의 삶을 이끈 마음의 깨우침이었으리라!
농부가 알찬 열매를 거두려면 농작물에 충분한 거름을 주어야 한다.
또 거름은 먼저 썩어야 하며 썩는다는 것은 자기의 희생을 말한다.
실한 열매만 가지려 했지 먼저 거름이 될 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두가 높은 자리 권력과 돈을 가지려 이렇게 혼탁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먼저 거름이 되라!>는 이 말 새겨듣기 바란다.
오늘은 소설가 송일호 씨의 이야기다.
송 일 호*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나가 버린 깊은 인연이다
나는 아직도 변함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받고 있다
대구일보에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원로작가며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을 운영했던 주인이다.
농촌에서 대구로 유학 온 하숙생 자취생을 모아서
<재구농촌출신학우회>라는 계몽 모임을 만들었고
큰 꿈을 품게 하고 함께 토론하며 힘을 기르게 했던 분
그분이 만들었던 <재구농촌출신학우회>는
귀한 인연을 이어가는 꿈의 보금자리였으며,
생각하게 하고 저마다의 희망을 펼쳐 갈 수 있도록
‘먼저 거름이 되라’라는 깨우침을 가슴에 새겨주었다.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맘에 살아있는 형님이며
못나고 부족함도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내 스승이시다.
* 송일호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