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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글씨를 썼던 목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0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달 28일 문화재청은 대구 팔거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에서 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 11점이 대구 지역에서 처음 출토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 전체 11점 가운데 7점에서 글자가 보이고, 그 가운데는 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와 곡식 이름도 등장합니다. 특히 보리를 뜻하는 맥(麦)와 벼를 이르는 도(稻), 콩 곧대두(大豆)이라는 곡식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산성에 물자가 집중된 상황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산성의 행정 또는 군사기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간(木簡)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대나무로 된 죽간(竹簡)과 함께 글자를 기록하려고 썼던 목편(木片) 곧 나무 조각입니다.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 발견된 목간은 지금까지 400여 점이 나왔습니다. 목간은 보통 나무를 너비 약 3cm, 길이 약 20∼50cm, 두께 3mm 정도의 긴 판자모양으로 잘라 거기에 먹으로 글을 썼지요.

 

그렇지만, 목간 가운데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남근 모양의 백제 목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간은 일본 목간 연구의 권위자인 히라카와 미나미 국립역사민족박물관 교수가 고대 일본 왕실 제사 의식물의 원형이라고도 말합니다. 또 김영욱 서울시립대 교수는 “2002년 백제의 옛 도읍인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6세기께 목간 글자를 분석한 결과 ‘저이’(猪耳)란 한자어가 돼지란 뜻의 백제 고유어 ‘돝+△ㅣ’, 곧 ‘도치’를 향찰로 표현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