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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선돌, 영월의 제1경일 것

시간은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공간과 결합한 개념
평창강 따라 걷기 12-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고전 물리학을 완성한 뉴톤이 생각한 시간(time)과 공간(space)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으므로 시공간(timespace)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별이다.

 

나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두 권의 물리학책을 읽어 보았다. 첫 번째 책은 《우주의 구조》라는 제목의 책으로서 수원대의 박배식 교수가 추천하였다. 2004년에 펴낸 이 책의 저자인 그린(Brian Greene)은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수식을 하나도 쓰지 않고 순전히 말과 그림으로만 설명한다.

 

두 번째 책은 평창강 걷기를 시작한 뒤에 만난 홍 교수가 나에게 읽어 보라고 준 《우주와 나》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용민 교수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물리학자로서 통일장 이론의 발전에 공로가 크다고 한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펴낸 이 책은 조용민 교수가 친필 사인을 해서 홍 교수에게 주었는데, 홍 교수가 내가 우주에 관해 관심을 보이자 나에게 준 것이다. 이 책 역시 수식을 동원하지 않고 일반인을 위해 쉽게 쓴 책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그린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공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이 보기에 정지해 있는 주차된 자동차는 공간상의 이동이 전혀 없는 대신 시간을 따라 미래로 이동하고 있다. 정지해 있는 자동차와 그 안에 앉아 있는 운전자, 도로, 그리고 그들에 대해 정지해 있는 당신과 당신이 입고 있는 옷 등은 시간이 완벽하게 일치된 상태에서 일제히 시간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지해 있던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간을 따라 이동하는 속도는 이전보다 느려지면서 공간상의 이동이 새롭게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간만을 따라 이동하던 자동차(정지상태)가 시공간에서 방향을 바꿔 시간과 공간으로 동시에 이동하고(주행상태) 있는 것이다. 주행 중인 자동차는 시간을 따라 이동하는 속도가 느려졌으므로, 이는 곧 자동차의 시계가 길에 서 있는 당신(그리고 길에 정지해 있는 모든 것)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뜻이다.”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이 시계와는 아무 관계 없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계가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서 느려질 수도 있어서 시간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상식과는 어긋나 보이는 이러한 주장의 진위는 토론으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실험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시간이 조건에 따라서 느리게 간다는 사실을 두 개의 시계를 이용한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1971년에 조지프 하펠레와 리쳐드 키팅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세슘 원자시계를 이용하여 시간이 느리게 가는 효과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두 개의 시계를 준비하여 하나는 민간용 항공기에 싣고 다른 하나는 지상에 내버려 둔 채 장거리 여행을 한 뒤 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비교한 결과, 비행기에 탑재된 시계가 지상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과학적으로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느 날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상대성 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상냥한 여자와 함께 보내는 2시간은 2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난로에서의 2분은 2시간처럼 느껴진다.”

 

재미있는 비유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감각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건에 따라 실제로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간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는 과학적인 진실은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물리학책을 읽은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뉴톤(1642~1727) 같은 과학자나 칸트(1724~1804) 같은 철학자도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으로 생각했다니 일반인이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은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간과 결합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내가 믿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는 분명하다고 한다. 해와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천동설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믿던 시대에 지동설이 맞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동설은 일반인의 경험과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일반인의 경험과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러나 물리학자가 그렇다고 주장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믿지 않는다면 천동설을 고집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오후 4시 15분에 선돌 입구에 도착했다. 둑길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표시판이 있는데, 선돌까지는 400m 거리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길은 사전답사 때에 가보지 못한 길이다. 힘들면 여기에서 중단해도 된다. 그러나 모두 한번 올라가 보자고 한다.

 

 

 

밭 옆길로 조금 올라가자 산 쪽으로 망을 쳐서 막아놓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등산로를 알리는 작은 리본이 망에 걸려있다. 그 지점에서 비닐끈으로 엮은 망을 열 수 있다. 선돌까지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경사도가 거의 45도인 구간도 있었다. 나는 등산용 지팡이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뭇가지로 임시 지팡이를 만들었다. 산에 오를 때에 지팡이를 사용하면 한결 수월하다.

 

 

누군가 말했다. 단종은 이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맞지 않는 말이다. 이 길을 걸을 당시 단종은 만 16살이었으니, 요즘으로 비교하면 고1 정도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16살이라면 이 정도의 산길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유배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낙오한 사람 없이 모두 선돌에 올랐다. 이곳 선돌에서 옥녀봉까지 1.8km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선돌에서 청령포까지는 5.7km가 남았다.

 

 

드디어 오후 4시 45분에 선돌 전망대에 도착했다. 대부분 관광객은 차를 타고 31번 도로를 따라오다가 선돌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전망대로 간다. 전망대의 해발 고도는 320m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가(해발 고도 190m)에서 출발하여 전망대까지 30분을 힘겹게 올라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선돌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영월 10경 가운데서 나보고 순서를 매기라면 선돌을 제1경으로 뽑겠다.

 

아래쪽 넓은 전망대에 사람들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 조금 위쪽으로 좁은 전망대가 있다. 나는 좁은 전망대에 올라가 동영상을 찍었는데 마치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근사하다.

 

                        <동영상> ▲ 선돌과 서강

 

 

안내판에 적혀 있는 선돌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위치: 강원도 영월군 방절리 산 122번지

 

전망시설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두 갈래의 우뚝 솟아있는 바위(높이 70m)를 선돌(立石) 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으며 서강(西江)의 푸른 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한다.

 

선돌 아래 깊은 소(沼)에는 자라바위가 있는데 전설(傳說)에 의하면 선돌 아래 동네 남애(南涯) 마을에 장수가 태어나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 꼭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전하여 오고 있다.

 

현재의 38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선돌 밑으로 옛길(신작로)이 있었으며 1905년(고종42)에 목탄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석축을 쌓아 확장하였는데 이 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光武九年李春和排路修勅乙巳二月一日˼라고 자연석에 새겨진 비석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시대인 1820년(순조)에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洪履簡 1753~1827)과 뛰어난 문장가로서 풍류 생활을 즐기던 오희상(吳熙常 1763~1833), 홍직필(洪直弼 1776~1852) 등 세 사람이 구름에 쌓인 선돌의 경관에 반하여 시(詩)를 읊으면서 선돌의 암벽에다 ˹雲莊壁(운장벽)˼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붉은 주색(朱色)을 칠한 것이 지금도 남아있다.

 

등산에서는 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고 위험하다. 일행 중에 몇 명은 급경사 길을 내려가는 일이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다리가 튼튼한 세 사람만 차 있는 곳으로 내려가고 나머지 4명은 선돌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나는 올라올 때 크게 문제가 없어서 은곡과 홍 교수와 함께 경사길을 내려갔다.

 

(시인마뇽은 이날 12구간 답사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는 10월 21일에 혼자 청량리에서 기차 타고 아침 일찍 영월로 왔다. 그리고는 12구간과 13구간을 한꺼번에 걸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선돌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고 강 따라서 선돌 아래로 좁은 길이 나 있다고 한다. 이 길은 홍수가 나서 평창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다닐 수 없지만 보통 때에는 조심스럽게 건널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선돌 아래로 내려와 홍 교수가 소렌토를 운전하여 선돌 주차장으로 갔다. 일행 4명을 태우고 영월삼거리 근처에 있는 선돌마루식당에 5시 20분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차림은 묵은지삼겹살이었는데 맛이 훌륭했다. 주인장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왔다는데, 열심히 우리에게 영월과 단종과 선돌에 관하여 설명을 한다. 주인장의 열성이 매우 돋보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서 일주일 뒤에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해산했다. 홍 교수는 석영과 가양을 태우고 서울로 가고, 은곡은 방림면에 있는 집으로 가고, 나는 석주를 태우고 평창역으로 갔다.

 

이날 평창강 제12 구간 8.5km를 걷는데 4시간 3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