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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을 걸으면서 무얼 깨달았을까

동강 따라 걷기 2-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선재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자작나무숲이 보인다.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이 종이처럼 갈라져 있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나무다. 폐가를 지나 조금 내려가니 거제수나무 옆에 안내판이 서 있다. 거제수나무는 자작나무와 비슷하게 껍질이 벗겨져 있는데, 색깔이 황갈색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물자작나무라고 불리는 거제수나무는 척박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나무로, 보통 높이는 약 30m, 지름 1m 정도로 자랍니다. 꽃은 5~6월쯤에 피며, 수피는 흰색 또는 갈백색을 띄고, 종잇장처럼 잘 벗겨집니다. 옛날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거제수나무껍질에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도 했답니다.”


 

 

선재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섶다리가 나타난다. 섶다리 안내판이 서 있는데, 아래와 같이 섶다리를 설명한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입니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10~11월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리를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너다니는 다리로 이용합니다.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므로 ‘이별다리’라고도 합니다.“

 

 

선재길 곳곳에서 하얀 꽃이 잔뜩 달린 풀꽃이 무더기로 보인다. 손말틀(휴대폰)의 새로운 기능인 ‘꽃 검색’을 이용하여 사진 찍어 보니 ‘미나리냉이’라고 나온다. 마침 옆에서 걷고 있는 동창생 김종화에게 확인차 물어보니 미나리냉이가 맞는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미나리냉이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쌍떡잎식물강 십자화목 십자화과 황새냉이속에 속하는 속씨식물. 미나리와 비슷한 냉이라고 해서 ‘미나리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약 40~70cm이다. 옆으로 뻗는 땅속줄기에서 곧게 자라는 줄기가 나온다. 잎은 겹잎으로 5~7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지고 어긋나며, 잔잎의 가장자리에는 고르지 않은 톱니들이 있다. 꽃은 흰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를 이루고, 꽃잎은 네 장으로 열십자처럼 나 있다. 열매는 길이 약 2cm인 각과(殼果)로 익는다. 꽃은 6~7월에 핀다. 원산지는 일본과 한국, 중국이고, 주로 골짜기나 개울가, 숲 변두리의 그늘진 곳에 서식한다. 음습지에서 잘 자란다.”

 

학술적인 용어로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잎이 미나리 같이 생긴 냉이“ 정도만 기억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날 선재길을 걸으며 내가 관찰해보니 길가에 조릿대가 많은데 모두 말라비틀어졌다. 조릿대는 산죽이라고도 부르는데, 대나무 종류 가운데 가장 키가 작다. 가뭄 때문인지 또는 다른 원인이 있는지 궁금해서 답사가 끝나고 며칠 뒤에 오대산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답변은, 지난해 겨울에 오대산에 눈이 적게 내렸고 또 올봄에는 비가 적게 와서 토양수분이 매우 적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뭄 때문에 조릿대가 손해를 입는 것 같다고 답변한다.

 

 

조금 더 자세히 원인을 알아보기 위하여 한국생태학회장을 역임했던 국민대의 김은식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에 의하면 조릿대는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서 옆으로 기어서 퍼져나가는데, 뿌리의 깊이는 약 20cm에 불과하다고 한다. 뿌리가 깊지 않으므로 아무래도 가뭄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에 추측한 대로 선재길의 조릿대가 말라버린 것은 가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녁 4시 50분에 선재길의 월정사 쪽 입구에 도착했다. 선재길을 걷는 사람은 대부분 월정사에서부터 상원사 쪽으로 올라가는데, 우리는 거꾸로 상원사에서부터 내려왔다. 선재길 입구의 간판에는 선재길을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이라고 표현했다.

 

 

선재길을 걷고 나니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리 일행 12명이 선재길을 함께 걸었지만, 깨달음의 분량은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니, 무엇을 깨달았을까 궁금한 사람은 선재길로 와서 꼭 한 번 걸어 보시라.

 

저녁 5시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이날 답사를 끝냈다. 이날 선재길 9 km를 걷는데 3시간 50분이 걸렸다.

 

아직 현역으로 근무 중인 가타리나 자매는 정선병원으로 먼저 출발하였다. 나머지 일행은 산들산채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은곡을 포함하여 몇 사람은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는 2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서 헤어졌다.

 

<답사 후기>

 

석영이 선재길을 걸은 뒤에 소회를 적어서 단톡방에 올린 것을 여기에 소개한다.

 

「오대산 선재길을 걷다」

 

오늘 옛 벗들과 걷는 날입니다. 오대산 상원사 위에 있는 국립공원 탐방 지원 센터가 출발지점입니다. 여기 오월 바람이 얼마나 삽상 시원한지 나무와 풀과 숲이 바람의 세례로 흔연하고, 저도 그 중심에서 정신을 맑게 씻어 냅니다.

 

이제 여기서, 저 아래 월정사로 내리는 오대천(五臺川)을 따라 걷습니다. 키 큰 전나무 숲이 내 마음의 키도 훌쩍 키워줍니다. 축복 같은 자연의 향훈입니다. 심호흡합니다. 감사가 있는 곳 기도가 따라붙습니다. 오대천은 길과 맞물리면서 나타났다 숨었다 합니다. 바람과 물과 숲과 산길, 자연의 사중주 심포니입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을 선재(善財)길이라 부릅니다. '선재'는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온 이름이라 합니다. 선지식(善知識), 즉 깨달음을 향해 모든 난관을 뚫고 나가는 선재동자, 그 구도의 정신을 새겨 남기고자 이 길의 이름을 선재길이라 붙였겠지요.

 

아, '구도(求道)'라는 말은 얼마나 아득하고 요원하게 가슴을 두드리는지요. 한때는 동경의 자리에서 나를 손짓하던 구도! 그 요원함의 힘으로 현실의 각박을 넘어서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록 트래킹 코스로 왔지만, 오늘 선재길 행보에 나는 어떤 구도의 마음을 품을까. 그 생각 잠시 하는 동안이 자못 그윽한 유열에 이끌립니다.

 

선재길 10킬로를 묵묵히 걷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길은 속인의 인적 드물고, 월정사 본사에서 상원암 오르며 수도하던 스님의 수행길이었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울창한 수목 너머 푸른 하늘에 걸린 구름 한 조각까지도 큰 섭리 안에서 통어되는 표정들을 짓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에서는 이 선재길 단풍철 풍경이 가히 절창이라 합니다. 나는 지금도 너무 좋습니다. 그렇듯 빛(景/色)을 굳이 다투어 보려 할까요. 색즉시공 (色卽是空)의 각성이 지금 내게 바로 찾아드는 것이 기특합니다. 직은 수행(修行)의 염(念)을 한 조각 품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나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나무, 풀, 꽃, 새, 벌레 등을 무수히 만납니다. 나는 그들 이름을 대개는 모릅니다. 이름을 알고 보아야 그 존재를 의미 있게 보는 거라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리라 마음 먹습니다. 이름 모르지만 한참 응시해 봅니다. 그 초목에 대한 나의 직관만을 메모해 봅니다. 이름이 사물의 진여(眞如)를 터득하는 데에 도움도 되지만 훼방도 될 수 있으려니...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느리게 걸어 월정사 경내에 드니, 해가 기웁니다. 이 고맙고 마음 뿌듯한 고단함을 잘 간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