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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신발을 신은 것은 매우 최근의 일

오대천 따라 걷기 3-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2년 5월 30일 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부명숙,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이규성,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10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6월 10일

 

이날 걸은 제3구간은 월정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대천 따라 간평교 아래까지 주로 둑길을 걷는 9.6km 거리다.

 

 

국도 6번 길가에 있는 옛골청국장 식당에 11시에 모여 이른 점심을 먹고서 월정사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12시 50분에 아홉 명이 주차장에서 출발하였다. 시인마뇽은 혼자 일찍 상원사로 가서 선재길을 걸어 내려와 우리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있는 아치형 다리가 금강교고 그 아래에 있는 연못이 금강연(金剛淵)이다.

 

예전에는 금강연에 하중도(河中島, 내의 중간에 물흐름이 느려지거나 흐르는 방향이 바뀌면서 퇴적물이 쌓여 형성되는 섬)가 있었다. 작은 하중도에 함박꽃나무(산목련이라고도 말함)와 소나무가 서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멋있었다. 그런데 이날 보니 연못을 정비했는지 하중도가 사라지고 경치가 밋밋해져 버렸다. 답사 뒤에 내가 아는 월정사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니 2021년에 홍수가 나서 하중도가 황폐해지고, 굴착기로 하중도를 깨끗이 밀어버렸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금강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나 있는 전나무숲길로 들어섰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무장애 순환형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안전하게 길 따라 탐방할 수 있도록 데크 길을 만들고 경사도를 크지 않게 만들었다. 전나무 숲길의 전체 길이는 1.9 km이고 경사도는 1.0%다. (100m 걸어가면 고도가 1m 차이가 난다.)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석주가 “이 길은 맨발로 걸어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신발을 벗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길을 맨발로 걸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날은 신발을 벗지 않았다. 내가 시인마뇽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월정사 후문 가까이에 있다. 나는 일행을 먼저 보내고 잠시 기다렸다.

 

5분이 채 안 되어 시인마뇽이 나타났다. 그는 선재길 9km를 걷고서 추가로 오늘 구간을 같이 걷는다. 그는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오래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하는 산악인이다. 우리 두 사람은 조금 빨리 걸어서 일행을 만났다. 모두 시인마뇽과 반갑게 악수하면서 “잘 걷는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쓰러진 전나무는 전나무 숲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이다. 이 전나무는 2006년 10월 23일 밤에 쓰러지기 전까지, 전나무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이(약 600년)를 자랑하던 전나무였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쓰러진 전나무를 사진 찍는다.

 

정선댁(아래 가타리나 자매를 말함)은 모처럼 맨발로 걸으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다른 친구들도 맨발로 걸어본 적이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말하면서 좋아한다. 고운 마사토를 깔은 전나무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 오대천으로 내려가 흙 묻은 발을 씻었다. 발을 씻은 석영이 나를 보더니 “발이 고맙다고 말하면서 (이런 기회를 얻게 해 준) 무심을 칭찬한다”라고 말한다. 발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쑥스럽다.

 

 

우리는 양말을 신고 신발을 당연히 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이 신발을 신은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인류 역사 200만 년 가운데서 농경을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이다. 무려 199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채취를 하여 먹을 것을 구하는 원시생활을 하였다. 당연히 양말도 없고 신발도 없고, 모든 사람은 맨발로 다녔다. 아직도 뉴기니아나 아마존 밀림에 사는 원시 부족은 맨발로 다닌다.

 

아마도 농사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조악한 신발을 신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양말은 신발이 등장하고서 훨씬 이후에 나타났을 것이다. 양말과 신발이라는 이중 구조는 발바닥과 흙과의 접촉을 차단했다. 발바닥이 흙과 접촉하지 못하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게 되자 나타난 피부병이 무좀이지 않을까? 나는 예전에 무좀으로 고생했었는데, 집 근처 흙 산책길을 맨발로 걸었더니 무좀이 사라진 경험이 있다. 발바닥은 흙과 접촉하는 상태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전나무 숲길은 순환형이어서, 일주문까지 갔다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주문에서 찻길을 건너서 둘레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작년(2021)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알지 못한다. 이 둘레길을 따라 오대천 왼쪽 언덕을 걸을 수 있다. 둘레길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수로가 나타났다. 아마도 밭농사를 위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로 같았다.

 

둘레길은 월정사 성보박물관 앞에서 차도와 연결된다. 연결지점의 오른쪽에 자연명상마을의 후문이 나타났다. 후문은 차단기로 막아놓아서 차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사람은 옆으로 왕래할 수 있다. 이곳을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내가 앞장서서 차단기를 우회하여 자연명상마을로 들어갔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은 2018년 7월에 개장한 독특한 숙박시설이다. 평창군과 월정사 측에서 사업비 295억 원을 들여 월정사 입구 3만 평 터에 21개 동의 목조건물을 지었는데 한꺼번에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자연명상마을은 보통의 펜션이나 콘도와는 달리 개별 숙소에 주방시설이 없다. 밥은 공동식당에 와서 먹는데, 밥값은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숙소에 TV, 냉장고, 인터넷이 없다는 점이다. 전자 제품이 없는 대신 모든 숙소에는 편백나무로 만든 명상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명상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독특한 시설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다.

 

사람들은 혼자서 또는 가족과 함께 공기 좋고 숲이 좋은 이곳에 와서 쉬고, 먹고, 놀고, 명상도 하면서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삶을 재충전할 수 있게 된다. 자연명상마을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누리집으로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 자연명상마을 누리집 :

 

후문을 우회하여 자연명상마을로 들어가니 오른쪽에 세심헌(洗心軒)이라고 현판을 단 기와집이 나타난다. 자연명상마을 안내도에는 ‘조정래 문학관’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문학관이라기보다는 집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작가 조정래 선생(1943년생)은 2019년 10월부터 자연명상마을 집필실에 머무르며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의 개정판 작업을 했다. 그는 2020년 11월까지 개정작업을 모두 끝냈고, 해냄출판사에서 작가 등단 50돌 기림으로 펴냈다. 이들 대하소설 3부작은 1986년 태백산맥이 처음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16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하니 인세만 해도 100억이 넘을 것이다. 부럽다.

 

세심헌을 지나 조금 내려가니 ‘오대산 동림선원’이라고 한글로 현판을 단 문이 나오고 다리 건너편에 근사한 선원이 나타난다. 동림선원이라는 이름은 중국 루산에 있는 정토종의 발원지인 동림사(東林寺)에서 따왔다. 동림사에는 혜원선사라는 고승이 거기에 있었는데,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성인들과 도를 논하곤 했다.

 

 

혜원선사와 관련된 일화 가운데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말이 있다. 동림사 앞으로 흘러가는 계곡이 호계인데, 혜원선사는 안거를 끝내기 전에는 손님을 배웅할 때 이곳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도교의 육수정 도사, 유교의 도연명 시인과 함께 도를 논하고 두 사람을 배웅할 때 혜원이 이야기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이 호계를 넘어갔다. 나중에 이를 깨닫고 세 명이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호계삼소’다.

 

우리나라에는 삼소회(三笑會)라는 모임이 있다. 가톨릭 수녀님, 원불교 정녀님, 불교의 비구니 스님이 종교를 넘어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모임이 삼소회이다. 이렇듯 ‘동림선원’이라는 이름 속에는 종교를 넘어서 함께 할 수 있는 도량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월정사에는 탄허스님의 글씨가 많다. 탄허스님의 글씨는 자유롭고 힘이 넘치며 통쾌한 기상을 잘 나타내는데, 탄허체라는 이름을 얻었다. 월정사 주지인 정념스님이 2005년부터 시작한 ‘탄허대종사 선서(禪書) 함양 전국휘호대회’가 해마다 6월에 열린다.

 

동림선원 현판 왼쪽의 글씨는 대도무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는데, 오른쪽에 쓰인 글씨는 잘 모르겠다. 向上一? 마지막 글자를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모르겠단다. 그래서 내가 글씨를 사진 찍어서 한문을 잘 아는 고등학교 동창생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답사가 끝난 뒤에 답이 왔는데, 향상일영(向上一泳)으로 추측된다는 약간은 애매한 답변이다. 마지막 글자를 헤엄칠 영(泳)으로 읽은 것이다. 내가 카톡방에 현판 글씨가 향상일영이라고 올리니 석영이 “위를 향해 한번 헤엄친다”라는 뜻이라면 선원에 어울리는 글씨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규성 교수가 향상일영이 아니고 향상일로(向上一路)가 맞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근처에 있는 탄허기념박물관에 이 글씨가 향상일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있다고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러자 가양이 탄허기념박물관에서 받은 탄허스님의 유묵(遺墨)에 향상일로라고 쓰여 있는데, “향상일로는 모두 차별적 경계를 초월한 끊임없는 향상의 일을 뜻한다. 깨달았지만 그 깨달은 경지도 초월하는 선승의 본분을 의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생 제도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풀이되어 있다고 사진까지 찍어서 카톡방에 올렸다.

 

마침내 홍 교수가 결정적인 자료를 찾아내었다. 향상일로는 벽암록 12칙 수시에 나오는 구절인데, 앞과 뒤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所以道(소이도) 向上一路(향상일로) 千聖不傳(천성부전)

그래서 향상의 길은 온갖 성인들도 전할 수 없다 하였다.

 

우리 팀에 교수 출신이 5명이나 되어서 그러한지, 학구적인 탐구 정신이 대단하다. 현판 글씨를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하여 각양각색으로 노력하여 정확한 뜻과 출처를 알아낸 것이다. 물리학을 공부한 홍 교수는 벽암록이라는 불교 서적을 읽어보고 싶다고 댓글을 달았다. 아직도 학구열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