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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왜 세계 으뜸 글자인가?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1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앞으로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어싣기(연재)하려 하는 신부용입니다. 왜 한글이야기를 하면서 공학박사를 내세우냐고 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에 가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았습니다. 80년 말에 KIST에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교통연구원을 만들고 원장을 지냈습니다. 당연히 한글이나 언어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중고등학교 국어교실에서 배운 것, 그리고 궁금한 점을 인터넷 검색이나 공개 세미나에 가서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하겠지만 제 한글이야기는 강단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분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을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의문점을 제시하고 토론을 유도하여 함께 해답에 도달하도록 해 볼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소득도 중요하리라 기대합니다. (글쓴이 말)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과연 한글이 세계 으뜸 문자인지입니다. 누구든 한글을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다른 문자와 견줘 본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훌륭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훌륭하다는 것과 세계 으뜸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세계에는 아주 훌륭한 것이 두 개나 세 개, 아니 더 많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으뜸이라고 주장하려면 길고 짧은 것을 대 볼 기준이 있어야만 합니다. 왜 세계 으뜸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른 문자와 견줬는지를 보여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인지 200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문자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2001년에는 방콕에서 제2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내로라하는 글자들이 다 나와 경합을 벌였지만 두 번 다 한글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심사기준으로 문자의 기원, 문자의 구조와 유형, 글자의 수, 글자의 결합능력, 문자의 독립성 및 독자성, 문자의 실용성, 문자의 응용개발성 등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행사 자체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해 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행사를 주최했던 배순직 박사의 한글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 그의 뜻을 기리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이론을 달 수 없는 방법으로 세계 으뜸 문자를 가려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우선 문자란 무엇인지, 문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합의하고 그 필요한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평가하면 될 것입니다. 세계 으뜸 문자라는 표현이 너무 어정쩡하다면 ‘문자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문자’라고 그 뜻을 구체화 시키면 될 것입니다.

 

이제 문자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학문적인 정의는 피하겠습니다. 대개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려다 보면 중요한 점이 오히려 희미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문자는 ‘말을 적는 기호’라고 할 것입니다. 한국말을 적는 문자는 한글이고 미국말을 적는 글자는 알파벳입니다. 그리고 중국말을 적는 글자는 한자구요. 이 세 글자는 우리에게 친숙하니 이들을 견줘 보고 필요하면 다른 글자로 보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럼 이들 세 글자가 자기네 말을 얼마나 잘 적는지 견줘 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한국, 중국, 미국 사람 가운데 자기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골라 가령 ‘나는 소녀이다’라고 말해주고 이를 글자로 써 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물론 미국 사람에게는 ‘I am a girl’, 중국 사람에게는 ‘我是少女’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글자를 모르므로 우선 자기네 글자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문장을 써야 할 것입니다. 가장 빨리 배워서 쓰는 사람이 1등이고 그 글자가 세계에서 문자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글자라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의 경우 한글을 배우는데 빠르면 서너 시간, 늦으면 3, 4일 걸립니다. 세종대왕도 훈민정음해례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한나절이면 깨우치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될 거라고 했습니다.

 

필자는 시각장애인 대학생 한 명에게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어서 한글 자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소리를 내려면 물체가 빨리 떨려야 하는데 우리가 말할 때도 입 안에서 뭔가가 빨리 떨려서 소리가 난다. ’그으‘ 라고 말해 보라 입 안에서 어떤 부위가 떨리느냐?’라고 물으며 그 떠는 부위가 어떤 모양이냐고 물으며 내 손바닥을 아래 그림처럼 만들어 먼저 보게 하였습니다.

 

그는 목구멍의 안쪽에서 진동이 일어난다고 하고 아래 그림에서 보인 구부린 손바닥 모양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다시 그 모양을 종이 위에 그리라 하였으며 그가 그린 곡선이 바로 ‘그으’ 할 때의 소리를 내는 글자 ‘ㄱ’이라고 해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에게 한글자모 24자를 가르치는 데 50분가량 걸렸습니다. 다 가르쳐주고 나서 나는 그에게 이름을 써 보라 하였고 그는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윤환’이라고 쓴 것입니다. 얼핏 알아보기 어렵지만 풀어 쓴 것이며 획이 다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을 다 배웠다 해도 하고자 하는 말을 쓰지 못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한글은 자모만 배우면 이를 조합하여 어떤 소리라도 표현해내는데 영어는 알파벳을 알아도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알파벳은 한글처럼 글자를 모아 소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모아 단어를 형성하고 그 단어가 고유의 뜻과 발음을 갖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단어를 모르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글자를 모르면 문맹이라 하지만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어휘를 알지 못하면 문맹이라 합니다. 한자는 더 불리합니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쳐야 공식적으로 문맹을 면했다고 합니다.

 

이제 한글이 이 셋 중에는 제일 빨리 배워 자기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글이라 해도 이견이 없겠죠? 물론 다른 글자들과도 견줘 봐야겠지만 알파벳과 한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니까 더 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상식 수준에서의 결론입니다.

 

다른 글자들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