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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경복궁에 살았던 임금의 하루는 어땠을까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청동말굽(글), 박동국(그림), 문학동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9)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경복일레라.

-《시경》-

 

이렇게 좋은 의미를 지닌 집에서 사는 인생은 어땠을까? 하루하루 술에 취하고 덕을 베풀며, 큰 복을 누리며 살았을까?

 

이 집의 주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법궁, 경복궁에서 일상을 보내던 임금들이다.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중국의 시집인 《시경》에 있는 말을 따서 지은 것으로, 임금의 큰 은혜와 어진 정치로 만백성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책,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는 경복궁에서 흘러가는 임금의 일상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겹고도 다정하게 들려준다. 어린이용 책답게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담아냈고, 풍부한 그림도 함께 실려있어 우리 궁궐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임금의 하루는 익선관포를 갖추어 입고 차림새를 단정히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침 수라에 해당하는 자릿조반을 먹은 뒤, 어머니인 대비가 기거하는 자경전으로 가서 아침 문안을 드린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고종 때 조대비(익종의 비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건물로, ‘자경’은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늘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문안 인사를 마치면 아침 공부를 하러 사정전으로 향한다. 사정전에서는 학식이 높고 덕망 있는 신하들과 더불어 ‘경연’이라 불리는 학습시간을 가졌다.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하루에 세 번을 하는 경연에서는 사서오경, 역사, 성리학 등 유교적 소양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국정 현안을 의논하기도 했다.

 

아침 경연이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강녕전으로 향한다. 임금을 위한 정식 상차림은 아침과 저녁 수라였고, 두 끼 식사 외에 새벽에 죽이나 미음으로 자릿조반을 먹고, 낮에는 국수나 죽으로 낮것을, 늦은 밤에는 약식이나 식혜로 밤참을 먹었다. 수라는 기본적으로 열두 가지 반찬을 올리는 12첩 반상이었고, 임금이 수라를 들 때는 수라 상궁 셋이 옆에서 시중을 들며 음식에 독이 있는지 살피고, 그릇 뚜껑을 여닫고, 즉석 전골을 만들었다.

 

아침에 조회가 있는 날 조회를 알리는 북소리가 세 번 울리면, ‘보여’라는 가마를 타고 근정전으로 간다. 조회는 신하들이 임금에게 인사를 드리는 자리로, 정식 조회인 조참과 약식 조회인 상참으로 나뉘었다. 조참은 매월 5, 11, 21, 25일에 근정전에서 열렸고, 서울에 있는 모든 신하가 참석했다.

 

조회가 끝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낮것을 먹은 뒤, 정오에는 사정전에서 다시 경연을 열었다. 낮 경연이 끝나면 외국의 사신이나 지방에 파견되었던 신하를 접견했다. 낮 세 시가 되면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의 암호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그날 근무하는 당상관이 암호가 적힌 편지를 세 시에 비서실 격인 승정원으로 보내면, 승정원에서는 이것을 임금에게 올려 허락받았다. 임금이 그 암호를 허락하면 이것을 다시 국방부 격인 병조에 보내고, 병조는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전달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경연 시간이었다. 임금은 해가 지기 전에 사정전으로 가서 저녁 경연을 열었다. 정말 하루 세 번, ‘밥 먹듯이’ 공부를 한 것이다. 경연을 마치고 강녕전으로 가서 저녁 수라를 들고 나면 공부와 나랏일로 바쁜 하루도 저물어 갔다.

 

저녁 수라를 마치면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자경전에 들러 대비께 저녁 문안을 드렸다. 그러다 보면 밤이 늦어서야 왕비가 있는 교태전으로 갈 수 있었다. 교태전은 왕비가 쓰는 침전으로, ‘교태(交泰)’는 부부가 조화를 이루고 아이를 잘 낳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p.54)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는 경복궁을 보다 생생하게 즐기기 위하여 가상의 왕을 만들고, 그 왕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며 경복궁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여 나랏일을 돌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왕의 발길이 닿는 경복궁 구석구석을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어진 정치를 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효성스런 아들과 자상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왕의 모습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공부하고, 효도하고, 나랏일을 챙기며 열심히 일해야 했던 조선의 임금. 조선은 이렇게 으뜸 지도자의 끊임없는 학습과 수양, 헌신을 요구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오백여 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복궁에서 생활하는 임금의 하루를 보면, ‘왕 하라고 해도 못 하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빡빡하고 고달프다.

 

이 책의 장점은 조선시대 왕의 하루를 세밀하고 정답게 풀어주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큰 권력에는 큰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는 점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지도자의 덕목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