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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새우’가 ‘술고래’ 되다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10 (금산정사 방문기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 일행은 이제 4명이 되었다. 우리는 정 교수의 모교이자 광주의 명문고이며 광주 학생 운동의 본거지인 광주일고를 잠깐 구경했다. 광주 학생 운동 기념탑이 한쪽에 있었다. 광주일고는 원래 변두리에 있었는데, 이제는 시내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근처의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호남 지방을 여행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한정식을 주문하면 정갈하고 맛있는 반찬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따라 나온다는 사실을. 왜 이렇게 반찬이 많이 나오는가를 연구한 사람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이 지방에는 첫째, 손님을 환대하는 전통이 강하였고, 둘째, 은연중에 음식 팔아 돈을 버는 것을 악덕으로 여기는 상도덕이 자리 잡고 있었고, 셋째 물림상 습속이 발달하여 어른이 먹고 나면 사내 식구가 그 밥상을 물려 먹고, 다시 아녀자에게, 다시 종에게 상을 물려 먹다 보니 반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습이 쓰레기 종량제 이후 비판을 받아 요식업자들은 음식 쓰레기를 줄이자는 차원에서 반찬 줄이기 운동을 벌였단다. 그래서 나온 안이 24가지 반찬은 너무 많으니 18가지로 줄이자는 운동이라고 하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식사 뒤에 우리는 광주의 번화가를 어슬렁어슬렁 구경하였다. 이미 해가 진 지 오래지만, 거리는 휘황찬란하고 소란스러웠다. 거리는 젊은 여성들로 가득 차 있었고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통계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수가 비슷하련만 쇼핑 거리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요즘 세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서울이나 광주나 시골이나 젊은 여성의 옷차림이 비슷비슷하게 화려하고, 내 눈에는 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야한 옷차림을 보면 눈을 돌린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 조카딸이나 우리 학과의 여학생들은 덜 야한 옷차림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전에는 서울의 명동이나 압구정동이 유행의 첨단을 걷는 곳으로 생각되었는데, 요즘은 여성의 옷차림에 관한 한 지방 도시와 서울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국토의 균형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광주의 거리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도로에 써있는 ‘왼쪽을 보시오’라는 글씨였다. 왼쪽에서 오는 차를 조심하면서 길을 건너라는 뜻이니, 시민을 아끼는 광주시의 행정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거리 구경을 마치고 모처럼 젊어진 기분을 느끼면서 우리는 카페에 들렀다. 객지에서 어찌 한 잔 술이 없을까! 나는 연담거사더러 따라가겠느냐고 물어보니 ‘물론’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나는 아직 원효 대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고기 먹고, 술 마시고, 요석 공주를 만나 설총까지 낳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한 그의 사상을 무어라더라. 무애(無碍) 사상? 아무것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니 술 마실 때 참 편리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을 마시고서 이성을 잃고 실수하면 몰라도, 그냥 즐기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면 술 마시는 것하고 차 마시는 것하고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실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술을 금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지나쳐서 실수하는 것이 어디 술뿐인가? 밥을 많이 먹으면 체하고, 공부를 많이 하면 눈이 나빠지고,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잠이 부족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절제력이다. 절제의 대상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 용어로 곡차(穀茶)라는 말은 곡식으로 만든 차, 곧 술을 뜻하니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계에서 내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스님이 있다면 그분은 단연 원효 대사이다. 대사라는 칭호까지 붙인 것을 보면 어쨌든 원효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같다. 아무튼 연담 거사도 원효를 존경한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기독교계를 보면 개신교에서는 술을 금하나 천주교에서는 괜찮다고 인정하니 불교도들이 보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기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보면 술을 금하지 않은 것 같다. 요한복음 제2장을 보면, 어느 날 예수는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그만 술이 떨어졌다. 마리아가 예수를 조용히 불러 술이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는 서슴없이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했고, 여섯 항아리의 물이 술로 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내 생각으로 예수는 분명코 술을 마셨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예수가 행한 첫 기적이라는 점이다.

 

 

나의 주관(酒觀)은 어떤가 하니, 술은 사람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담을 허물며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매우 좋은 음료라고 생각한다. 나의 주량은 친구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는데, 소주 3잔이면 얼굴이 빨개져서 꼼짝 못 하다가 슬그머니 누워 자고 만다. 나의 이런 습관을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인제 그만”하면 더는 술을 권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에게 아내는 ‘술 새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고, 나는 가끔 장인에게 핀잔을 듣는다. 장인께서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임하셨는데, 나에게 가끔 말씀하신다. “이 사람아, 남자가 어느 정도 술을 마실 줄 알아야지. 내가 39살에 교장이 되었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줄 아는가? 술을 잘 먹고 사람들을 잘 사귄 덕분이야.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출세하려면 어느 정도 술을 먹을 줄 알아야 하네.”

 

(주: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이제 70을 훌쩍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다. 주량은 변하지 않고 똑같이 소주 3잔. 그런데 요즘 술자리에 가면 엉뚱하게도 내가 ‘술고래’ 소리를 듣는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건강상 이유로 술을 아예 끊었거나, 마지못해 한 잔만 받고서 입술만 축인다. 그런데 나는 소주를 무려 3잔이나 마시니 그들이 볼 때 술고래로 보이나 보다. 술 새우가 술고래로 변한 것이다. 세상만사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불교 사상의 표현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