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새재를 날다

‘걷는 느낌, 걷는 기쁨, 걷는 효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걷기 열풍이다. 그것도 맨발로 걷는 게 바람을 일으켜 높지 않은 산길이나 잘 가꿔진 공원길에서도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걷는 길로 가장 좋은 곳이라는 문경새재 관문길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걷고 싶은 길 1위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늘 마음에 달고 있었다가 드디어는 걸어보기로 작심하고 도전해본다. 전날 밤을 새재 입구의 ‘국민여가캠핑장’에서 묵어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눈앞의 주흘산에서 안개가 걷히는 광경을 눈으로 맛보고는 우리는 걸음을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관도(官道)로서 영남지방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서울로 가는 가장 큰 이다. 옛날 지역 수령으로 임명받은 신임관찰사가 구관찰사와 교대하는 곳,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의 흔적이 남아있고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세 개의 관문이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길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걷기 좋은 길로 소문이 나 있다. 이곳 바로 옆 주흘산 동쪽 계곡이 고향인 필자로서는, 문경새재 이야기만 나오면 속으로 켕긴 것이, 실제로 문경 새재길을 다 걸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모처럼 우리 집안 분들 몇 분과 같이 이 길을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

 

 

새재 입구에 가면 최근 여러 가지 공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지만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걷기에 좋은 작은 길로 바뀐다. 우리 일행 가운데 평생 퇴계를 연구하신 연세대학교 이광호 명예교수가 최근 맨발로 걷기를 하니 엄청 좋더라는 말씀에 우리도 맨발로 가보기로 했다.

 

다들 70을 넘은 나이여서 조금 주저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과감히(?) 양말을 벗고 마사토가 깔린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작은 모래알들이 발바닥을 압박해 생기는 통증을 느끼면서 발을 통해 땅의 기운을 직접 받는 것이다. 어젯밤 비가 와서 약간 물기가 있는 길이고, 처음 약간의 차가운 기운을 받으니 뱃속이 반응하지만,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발바닥은 편해지고 뱃속도 데워져 훈훈한 기운이 상체로 올라온다.

 

 

 

 

 

 

계곡과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난 길은 평평하다. 작은 자갈도 없고 거의 모래인데 가끔 굵은 모래가 밟히기는 한다. 그것도 없으면 발바닥에 무슨 자극이 있겠고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길 가운데가 조금 올라와 있어 빗물들이 길옆으로 자연스레 내려가 모인다. 길옆으로는 작은 도랑을 만들어 놓아서 거기로 맑은 물이 흐른다. 왼쪽에는 계곡이다. 올라갈수록 계곡의 작은 폭포랑 깨끗한 바위들이 동양화에서 보는 바위ㆍ계곡과 나무와의 멋진 장면들을 수없이 그려내 보여준다.

 

이 길가에는 원(院)터가 있다. 옛날 길을 가다가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말도 갈아탈 수 있는, 조선시대 공식적인 버스 터미널이다. 그리고 이 경상도에 내려와 관찰사 등을 하고 서울로 가던 관리들의 선정을 알리는 비석들이 줄줄이 서 있다. 다들 선정을 잘해서 주민들이 세워준 것도 있지만 개중에는 스스로 자작으로 세운 비석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 이름들을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비석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서 있다. 실제로 과거 보러 올라가던 옛길이 군데군데 어어져 있어 그 예스러운 느낌을 보는 재미도 있다. ‘산불됴심’이란 옛날식 표현의 경계석도 보인다.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부터 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을 지나면 약간의 경사가 생기면서 길옆에 물길이 더 커지고 수량도 많아진다. 2관문 앞 돌다리에 세워진 동물 조각들이 그리 친근할 수 없다. 약간은 익살을 띈 현대적인 솜씨다. 계속 올라가면서 왼쪽 물소리는 머리를 넘어 마음조차 씻어준다. 우리는 도회지에서 공기만이 아니라 소리도 잔뜩 공해인 곳에서 살지 않는가? 그런 공해가 없는 곳이고,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닫고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것 같다. 신발을 집어 들고 오는 여성들이 특히나 많다. 언젠가 그렇듯이 실제 삶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모험적이지 않던가?

 

 

 

3관인 조령관(鳥嶺關) 이름 그대로 새재관이다. 이곳이 새재의 꼭대기이다. 다들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들이 이 지역의 역사 인물들과 그들의 혼맥, 학맥,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글과 생각들을 일행인 이광호 전 연세대 교수, 이한방 대구 교육대 교수 등으로부터 듣다 보니 어느새 산길 7킬로를 걸어 올라왔구나! 맨발로 걸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2시간 반이 넘었다. 처음 오는 길이다.

 

드디어 우리도 새재를 밟았다. 거기를 다녀간 시인들의 느낌을 돌비석에서 읽으며 문경 사람으로서 새재도 안 가보았다는 일종의 부끄러움을 씻는 순간이었다. 뒤를 따라오느라 힘이 든 분들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작은 새가 되어 훌쩍 이 고갯길로 날아올라온 듯, 이번에 맨발로 걸어 올라오며 이룩한 작은 성취를 자축하는 순간이었다.

 

 

 

 

 

새재를 넘으면 곧 내려가는 길이고 거기는 괴산군 연풍면 쪽, 이화여대 생활관이 있는 곳이어서 그 밑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다. 이 길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거기서 내려 이 고개를 넘어 문경 쪽으로 오기도 한다. 우리는 일단 여기까지 걷고는 다시 문경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 길옆으로 '금의환향길'이 보인다. 과거에 합격하고 내려가는 길일 터이다.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바로 그런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곳이란 뜻이 아니던가?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문희(聞喜)도 있다.

 

새재 바로 밑에 옛날 주막에 해당하는 먹거리 휴게소가 있어서 산채전, 손두부 등을 안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는 문경시 동로면 쪽에서 집집이 키우는 오미자들로 막걸리를 빚은 것이 감미로워 다들 두 잔 이상씩 시원스레 들이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신발 싣고 올라왔으면 결코 느끼지 못할 정말 말 그대로의 '걷는 느낌, 걷는 기쁨, 걷는 효과'를 몸으로 체험하였기에 내려가는 길은 마치 구름을 밝고 가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올라올 때 가끔 밟히는 굵은 모래 탓에 발바닥을 살짝 들거나 돌리는 등 수고를 했지만 그런 것은 다 잊히고 즐거움과 기쁨만 남았다. 우리네 삶이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도 전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의 명성만큼이나 남들이 간 길을 뒤늦게나마 걸어본 것은 우리 다섯 사람의 복이라 할 것이다.

 

 

문경이 고향이지만 객지에 나와 사느라 자연도 역사도, 그 속에 담긴 고향의 아름다움도 제대로 몰랐던 우리는 서울과 대구 등으로 각각 흩어지면서 다시 먼지와 소음과 혼잡이라는 현대인들의 대도시의 삶으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문경 새재의 관문길, 새재 옛길에서 보고 느끼고 숨 쉬고 채운 맑고 청량한 기운, 역사의 숨결은 이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힘든 살을 이기는 청량제로 앞으로 당분간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 느낌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마음을 청정하고 청결하게 하고 욕심을 버리고 우리 주위도 그렇게 가꾸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