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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하늘재를 맨발로 오르다

미개통 옛길 혼자서 당당히 걸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경상북도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청북도 충주시 미륵리로 넘어가는 해발 550여 미터의 재를 누가 하늘재라고 이름 붙였을까? 신라 초기 아달라왕 3년(서기 156년)에 이 고개를 열었다고 했고 당시에는 이 고개를 넘으면 백제나 고구려 땅이었을 터이니 아무래도 신라사람들이 붙였을 것이다. 하늘재를 문경 쪽에서 오르려면 지금 용흥초등학교가 있는 갈평리가 출발점이 된다. 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여기서 공부했다. 동행하는 이광호 연세대 명예교수는 3학년까지 다니셨단다. 추억이 서린 곳이다. 여기서부터 하늘재까지는 좀 아득하기는 하다.

 

 

사진에서 보듯 용흥초등학교 교정에서 보면 저 멀리 뾰족하게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것이 해발 1,165미터 주흘산의 주봉이고 그 험한 산들이 오른쪽으로 달려가다가 조금 낮아진 산등이에 계립령( 鷄立嶺)이란 이름으로 재가 서기 156년에 만들어졌으니 근 2천 년 전 일이다. 그때 이후 조선조 초까지 영남과 서울권을 잇는 대표적인 관문으로 활약했는데 550미터 높이라서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평지에서 넘으려면 하늘로 계속 오르는 것 같아서 하늘재란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문경이 자랑하는 시인 권갑하 씨에게 하늘재는

 

구름도 숨을 고르는

하늘재 오르는 길​

 

산은 얼마나 먼 곳에서 달려오는지​

 

고사목

부둥켜안고

일어설 줄 모른다.​

 

여기까지 오느라

몸 흠뻑 젖었지만​

 

몇 고개를 더 넘어야 하늘에 가 닿을지​

 

노을 속

새 한 마리가

삐뚜루 날아간다.

                            ...... 권갑하, '하늘재를 넘으며'(시집 《문경새재》 13)​

 

하늘재 조금 못 미쳐 오른쪽 주흘산 서쪽이 새가 넘어갈 수 있다는 새재(조령)이니 권 시인의 시는 딱 이 분위기이다. 또 문경 사람 타령을 하면 문경사람들에게 하늘재와 새재는 어른들로부터 듣고 배운 지명인데, 그러기에 가보아야 하는 곳이 강박관념이 늘 있었다. 얼마 전 집안 분들과 함께 하늘재를 오르자고 한 것도 그런 운명적인 숙제를 해결하자는 모두의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기에 이뤄진 것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수안보 미륵리 쪽에서는 얼마 전에 가보았기에 내친김에 문경 쪽에서도 올라가 보자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사실은 그동안 관음리 쪽에서는 찻길 외에는 올라갈 길이 없어 미륵리 쪽보다는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관음리쪽에서도 옛길을 만들어 곧 개통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결정했다.

 

작은 승용차에 어른들이 끼어 타고 갈평리를 지나 관음리로 접어들면서 오른쪽으로 옛길 표시가 있는지 열심히 찾았지만, 아직 안 보인다. 정식 개통이 안 되었으니, 표지판도 아직 못 세웠을 것이다.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승용차가 주차장에 선다. 아이구, 하늘재 바로 앞이다. 저번에 올라와서 내려다본 관음리쪽 길 100미터도 안 되는 곳까지 차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옛길의 정취를 찾는 분들에게는 관음리 쪽이 매력이 영 없었으리라.

 

 

 

우리는 우선 하늘재에 너무 쉽게 올라왔으니 우선 미륵리로 내려갔다 오자며 옛길 우거진 숲 사이 길로 해서 미륵리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30분도 채 안 걸린다. 중간에 생태길로 들어서니 더 숲이 좋고 새들이 반기는 목소리도 아름답다. 작은 다리가 있어 한 분이 얼른 내려가 물에 손을 넣어보시고는 아주 시원하다고 한다. 그렇게 신나게 미륵리로 내려가서 이제 새로 깨끗하게 공개되는 미륵대불과 주위를 마음껏 본다. 저번에 학회 회원들과 같이 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가림막을 막 제거한 상태라 좀 어설펐는데 이제는 깨끗하게 정리돼 전체가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다만 부처의 몸통이 약간 삐딱하게 놓여 있는 것 같고 뭔가 불안하다. 다시 잘 맞추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다시 하늘재로 올라올 때는 호기가 생겨 다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올라왔다. 처음 발바닥이 따끔거리더니 곧 그런 느낌이 약해지고 대신 땅 기운이 몸에 들어오는 것 같다. 웃으며 올라오니 어느새 또 하늘재 꼭대기다.

 

분명히 새로 옛길이 복원돼 있다고 문경시청에서 이 일을 주도했던 분이 알려주었기에 길이 있을 텐데 그냥 내려갈 수 없다. 다른 분들을 제쳐놓고 나 혼자 주차장 앞을 보니 옛길 표지판이 있다. 거기로 들어가 보니 산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아 그렇구나! 원래 다니던 길은 찻길이 되어 만들 수 없으니 산 쪽으로 길을 새로 내어 거기를 옛길로 한다는 뜻이구나... 산 가까이 가니 길이 조금 오르락내리락, 계단도 많기는 한데 하늘재를 자동차 아스팔트 길이 아닌 산속 길,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길로 다닐 수 있으니 이제야 다닐 만하겠다.

 

 

 

 

 

 

이 호젓한 길을 나 혼자 개척해 내려오다 보니 다른 일행들이 걱정이 많아 수시로 전화하는 수고를 끼쳤다. 고마운 일이지만 걱정을 떨치고 당당히 옛 산길을 3킬로 정도 걸어 내려오니 포암산 포암사 입구에서 큰길과 만난다. 그렇구나! 앞으로 여기서 걸어서 하늘재를 맨발로 오르면 되겠구나. 삼베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하는 포암산(布岩山)의 멋진 기세와 그 입구에 만들어진 수십 개의 돌탑들이 새로운 풍물이 되어 손님을 맞을 것 같구나

 

 

 

 

   신라의 아달라 왕 때

   처음 열렸다는 하늘재를

   한 세상 지게에 지고 넘어 간다​

 

   먼 옛날

   기쁜 소식 들으러

   관음이 이 길로 걸어왔으니

   당신이 선 곳이 관음리요​

 

   먼 훗날

   불같이 일어난 미륵이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미륵리라​

 

   나무 가득한 옛길은

   나이 들수록 맑고 푸르르며

   돌 덮인 새길은

   날이 갈수록 어둡고 쓸쓸해지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孫)으로

   중원(中原)을 꿈꾸고

   바다를 도모하는 자

   일어나면서 쓰러지면서

   재너머 걸어갔다는

   이 길은

   당신의 땅에서

   나의 하늘로 가는 길이라

   관음이

   미륵을 찾아가는 길이라

 

                      ...... 김종제, 관음리에서 미륵리까지

 

이제 우리는 김종제 시인과 하나가 되어 자주 하늘재를 오를 수 있겠구나. 그것도 재미없는 포장길이 아니라 옛사람들이 걸었을 그 숲속 길을 통해서 말이다. 맨발이면 더 좋겠다. 원래 길이 포장된 차로로 바뀐 지금 아쉬우나마 이렇게 조성한 새 옛길을 통해 많은 사람이 하늘을 넘나들고 저기 아득한 미륵의 세상까지를 다녀가거나 올 수 있을 것이다. 하늘재 가는 옛길의 개통을 기다리는 이유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