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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소중한 나의 인생, 하지만 편견일수도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13 (금산정사 방문기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송광사에서는 재가불자들이 4박 5일의 출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짧은 출가 긴 깨달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담 거사도 세 번인가 이 같은 수련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신청자가 많아 2, 3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단다. (최근에는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절에서 불교를 경험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참가자들 가운데는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도 더러 끼어 있는데 개신교의 목사님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니, 종단의 포용성 또는 개방성을 보여 주는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원래 30년 동안이나 성당에 다니다가 혼인한 뒤에 부인 따라서 개신교에 나가는데, 언젠가는 이러한 4박 5일 출가에 참여하여 불교를 맛보고 싶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색깔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 답변은 이렇다. 나는 아직도 진리의 구도자이다. 지금까지도 진리를 찾는 중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진리를 체험하고 싶다. 내가 아직 진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이 진리를 체험했다고 말하면 그의 체험을 존중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의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라고 자꾸 이론적으로 설명하려 드는데, 나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내 생각에 진리는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체험하는 것 또는 느껴지는 것이다.

 

종교의 창시자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인간의 삶은 있었고, 바른 삶의 길, 곧 진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먼저 있었고 그다음에 언어니, 종교니 하는 것들이 나타났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는 하나이되, 진리의 이름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것은 눈앞에 존재하는 ‘빨갛고 주먹만 하고 맛있는 과일’의 이름을 우리는 사과라고 부르고 서양 사람은 apple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눈앞에 존재하는 과일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아니고 사람이 먹으면 맛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사과 맛을 알 수 있는가? 말로 사과 맛을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먹어 보면 된다. 먹어 보는 체험이, 경험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관해서도 설명보다는 체험이 중요하다.

 

우리는 오후에 거금도로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전혀 바쁘지 않았다. 그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여기서 사진 한 장, 저기서 사진 한 장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마음 편하고 느긋한 여행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제격인데.

 

우리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간단한 선물을 샀다. 나는 향나무를 달걀 모양으로 깎은 것을 하나 샀다. 만지작거리면 지압도 되고 향내도 나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을 넣어 코팅한 투명한 부채를 하나 샀다. 또 이번 여행을 반대하지 않은 착한 아내에게 줄 수정 목걸이를 하나 샀다.

 

송광사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벌교읍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에 나는 영양탕을 먹자고 무심코 말했더니 연담 거사가 하는 말, “스님을 뵈러 갈 때 고기를 먹으면 냄새가 난답니다.” 나는 실수를 얼른 사과하고 짬뽕을 시켰다. 벌교 지방은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는 고장으로 “벌교에서 힘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사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민속학자에게 언제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주: 후에 나는 이러한 표현의 근거를 찾아냈다. 다음 주소로 들어가 확인해 보면 좋겠다.

http://www.ziksir.com/news/articleView.html?idxno=6510)

 

벌교를 지나 고흥반도를 남쪽으로 달려 우리는 녹동이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는 도양읍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현지에서는 모두 녹동으로 쓰여 있었다. 녹동항 바로 건너에 나환자촌으로 유명한 소록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소록도 건너편에 보이는 섬이 거금도라고 한다.

 

거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인데도,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정 스님이 거금도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섬이다. 거금도 출신 유명인으로서는 옛날에 박치기를 잘하는 레슬링 선수 김일(1929~2006), 그리고 국악인으로서 동초 김연수(1907~1974)가 있다.

 

차를 싣고 가는 연락선을 타고서 우리는 바다를 건넜다. 배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언제나 바다를 보면 인생이 하찮게 보인다. 우선 바다는 너무 크고 너무 물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작은 나는 압도당하고 만다. 바다의 평균 깊이는 3,730미터로, 육지의 평균 고도 840미터의 4배가 넘는다니, 물이 땅보다 훨씬 많다. 곧 해면 위의 육지를 다 허물어 바다를 채우면 육지는 없어져도 바다는 남을 것이다.

 

바다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출렁인다. 바다와 파도는 같은가, 다른가? 얼마 전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반야심경⟫을 정독했는데, 그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파도와 바다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파도는 바다에서 나왔다가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보다 근원적인 것은 파도가 아니고 바다다. 물고기는 바다에 살아도 파도는 보지만 바다를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색을 보지만 공은 보지 못한다. 한 사람의 인생살이를 하나의 파도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인생이 나에게는 굉장히 소중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 그것은 나의 편견일 뿐이다. 바다에는 수많은 파도가 일어나고, 또 짧은 시간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파도 같은 인생은 그러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불교의 해답은 바다 같은 공(空)에서 왔다가 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연담 거사에게 내가 이해한 색즉시공을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될지도 모르고, 또 연담 거사 역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