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낯선 공간이 내게 말을 거는 느낌.
공간은 낯설지만, 그 느낌은 퍽 익숙하다. 오영욱ㆍ하성란 등이 쓴 책, 《어떤 외출》은 작가, 건축가, 소설가, 정원 전문가 등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18인의 지은이가 마치 공간과 대화를 나누듯,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는 책이다.
‘하동 평사리 악양 들판’, ‘통도사 가는 길’, ‘잠실야구장’, ‘서귀포 대평박수 큰 홈통’, ‘양구 방산자기 박물관’ 등 한 번쯤 들어봤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한국의 매력적인 장소들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끄는 장소는 ‘상실과 절망을 딛고 선 땅’이라는 부제가 붙은 강진 다산초당이다. 1801년 유배형에 처한 정약용은 강진 땅에서 18년간 머물렀다. 유배되었던 동안 숱한 저술을 남겼고 그 덕분에 우리는 주옥같은 지식을 만났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다산에게 고통을 잊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p.162-163)
‘원지(遠地)’에 부처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형을 받을 때 들었던 한마디 말이다. 유배형을 받은 정약용 선생이 강진 땅을 밟은 해는 1801년이고 거기서 다산 선생은 18년간 머물렀다. …(줄임)…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다산의 유배생활도 가족과 형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모두 잃어버린 고독의 시간이다. 매년 찾아가는 귤동 마을 다산초당 입구에서 그러한 다산의 외로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천하절경이 펼쳐지는 남도의 끝자락에 어찌 이리도 깊고 짙은 외로움이 배어 있을까?
다산초당은 초당 본채와 동암, 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산은 주로 동암에서 서책을 읽고 집필활동을 했다. 초당 뒤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丁石)’은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의지를 담아 다산이 직접 바위에 새겨넣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잃고 ‘원지에 부처된’ 상황에서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놓지 않았던 결기. 그것이 유배 생활 도중 세상을 원망하며 삶을 마감한 사람들과 달랐던 점이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18개 장소 가운데 마지막으로 소개된 조선의 왕릉, ‘동구릉’도 눈길을 끈다. 서울의 동쪽에 아홉 기(基)의 임금과 왕후의 능이 모셔져 있어 동구릉이라 불린다. 동구릉에 있는 임금의 묘소는 업적과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p.253)
동구릉에서 아주 관리가 잘된 깨끗한 봉분들과는 달리 선머슴 더벅머리처럼 유난히도 긴 억새풀이 잔뜩 심어져 있는 산만한 왕릉이 있다. 얼핏 보면 방치된 채 잡초만 무성한 무덤처럼 보이는데, 동구릉에서도 가장 안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 왕릉의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조선을 건국한 전주 이(李)씨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왕릉 건원릉이다. …(줄임)… 물론 태조 이성계는 1408년 74살에 창덕궁 별궁에서 승하했지만, 죽기 전 유언으로 고향 함경도의 억새들을 묘에 심어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한 나라를 건국할 만큼 위세를 떨쳤던 영웅도 죽기 전 고향 땅 함경도 영흥의 강가에 지천으로 널린 억새풀을 무덤에 심어달라고 했다니, 고향 땅을 바라보며 느끼는 향수와 감회는 영웅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나 보다.
18인의 지은이가 각자의 감성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장소가 더욱 새롭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법한 순간에도 그 장소의 매력을 십분 포착한 지은이들의 감성이 아름답다.
무더위가 점차 끝나가는 8월, 이 책이 소개하는 장소로 ‘어떤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무심히 지나가던 ‘어떤’ 하루가 아주 특별한 하루로 바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