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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소득이 생겨 카페에 가다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 소설은 필자가 국토개발원에서 근무하던 1988년에 네 차례에 걸쳐서 연구원 소식지에 연재했던 단편소설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35년 전에 쓴 글이므로 술집의 풍속도나 화폐의 값어치가 지금과는 다릅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중산층 봉급생활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십시오. 소설이란 반쯤의 사실과 반쯤의 허구로 구성되는 것이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16회를 매주 금요일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필자 말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같은 봄꽃은 이미 다 지고, 더워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금요일,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사보에 잡문을 하나 썼는데 그 원고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원고료라고 해도 소득세에 방위세,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세까지 떼고 나니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매월 봉급 타서 지로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는 봉급장이에게 5만 원은 큰돈이었다. 더욱이 그 돈은 아내가 모르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처분소득이고 보니 김 과장은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자,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하던 김 과장은 동료인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자기가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호기 있게 제안하였다. 그동안은 박 과장에게 얻어만 먹었는데 이번 기회에 빚을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 과장이 일하는 부서는 업자를 상대할 일도 없고, 따라서 국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깨끗한 자리였기 때문에 봉급만 받아서는 룸싸롱이나 카페라고 이름이 붙은 술자리는 여간해서 가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박 과장과 함께 고급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수준의 카페에 큰맘 먹고 한번 가보리라고 결심하였다.

 

두 사람은 가끔 들르던 돼지갈비집에 먼저 갔다. 김 과장은 평소에도 돼지갈비집을 선호했는데, 그곳은 값도 부담이 안 되고 같이 간 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이른바 ‘여자가 나오는 고급 술집’에 가면 술값도 비쌀 뿐만 아니라 옆에 앉은 아가씨와 그저 깊이도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느라고 정작 같이 간 친구와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평소에도 김 과장은 고급술집보다는 돼지갈비집을 좋아했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라는 게 뭐 비슷비슷하리라. 상사에 대한 불만, 떠다니는 소문, 부동산 투기, 부하 직원 이야기, 노조가 어떻고, 노처녀가 어떻고 등등 한참 떠들다 보면 사람들은 이른바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그러나 김 과장은 스트레스의 정확한 뜻을 아직도 모르려니와, 스트레스라는 외래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이 하루하루를 잘도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아는 게 병이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스트레스라는 말이 퍼진 후에 김 과장은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시작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끔 퇴근길에 소주 한 잔이라도 하게 되었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아홉 시쯤 되어 두 사람은 카페 나목(裸木)으로 갔다. 나목은 이름대로 풀이하면 ‘벌거벗은 나무’라는 뜻이다. 그 카페는 작년 연말인가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괜찮고 아가씨들도 예쁘장해서 다시 가볼 생각이 나게 되었다. 왜 분위기가 괜찮다고 느꼈는가 하면 우선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이 술집에 어울리지 않게 은은한 동양화였으며 칸막이로 된 방안에 마이크가 연결되어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무대에 나가지 않고 그냥 앉아서 부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주앙 한 병하고 마른 안주 하나.” 김 과장은 굽신거리는 웨이터에게 주문했다. 술잔을 들고 ‘위하여’를 한번 한 뒤 박 과장은 자기가 군대 있을 때 고생했던 경험담을 시작하였다. 웨이터가 다시 들어와서 물어보았다.

“아가씨를 불러드릴까요?”

“좋지, 특별히 예쁜 아가씨를 들여보내! 새로 온 아가씨가 있으면 더욱 좋고.”

박 과장이 외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