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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

손선아 시인, 우리동네사람들 출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늦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이런 날엔 시집이 읽고 싶다. 그 누구의 시집이라도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시집이 배달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를 쓴 사람은 손선아 시인이다. 아! 벌써 그녀가 환갑의 나이를(?) 하며 책장을 연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한다” 라는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침묵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첫 시집을 낸 이후....사느라 바빠서, 개점휴업, 장기간의 코로나, 게으름의 늪, 갑작스레 닥친 친정어머니의 죽음,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등의 사연이 있어 두번째 시집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공감 모드다.  친정어머니의 죽음까지 어쩌면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과 같을 수가 있을까? 듣고보니 손선아 시인의 ‘개점휴업’ 이유가 명색이 시인인 내 삶과 닮은 것 같다. 그래, 누구든 비슷한 삶을 사는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시를 읽어 나갔다.

 

 

행간을 살피며 시를 감상해 나가는 동안, 나는 손선아 시인이 ‘명색이 시인’인 나와 다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시인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글을 쓴 손 시인의 이 말은 귀여운 변명(?)일뿐 시집을 다 읽고 나니 단 한 번도 그녀의 가슴속에서 ‘시를 방치’ 한 적이 없어 보였다. 그랬다. 그녀는 형상화한 ‘시어(詩語)’를 남기지 않았을 뿐이지 가슴 속에는 언제나 샘물처럼 시어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어들은 수행자의 화두처럼 늘 가슴 한켠에서 갈 길을 찾고 있었던 흔적이 뚜렷했다.

 

“나 사는 이야기, 우리 가족 이야기, 아픔 그 혼돈의 시간들, 계절이야기, 행복한 여행이야기, 삼의 뒤안길, 남기고픈 편지글” 등 모두 7장으로 구성한 손 시인의 시어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단독으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얽혀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등이 마치 누에고치가 뿜어내는 실타래처럼 보였고 그것은 다시 씨실과 날실로 엮어져 세상에 견줄수 없는 ‘비단’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나는 보았다. 아니 느꼈다. 그러면 성공한 것 아닌가? 시집으로건 인생으로건 말이다.

 

거기에 손선아 시인은 겸손하기 까지하다. “어찌보면 하소연에 불과한 글들이지만 이 또한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이력인지라 미진한 작품이지만 용감하게 세상에 내놓는다” 라는 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라.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시인이 존재하는가를! 그들 중 어떤 이는 되지도 않은 시를, 온통 분칠하여 비싼 종이에 장정판(하드커버)으로 위장하여 버젓이 서점가 맨 중앙의 비싼 매대에 올려놓고 있지 않는가!

 

“꼬부랑 길을 돌고 돌아 / 삼십년을 함께 걸었다/(가운데 줄임)/ 산사에 올라/ 삼십 주년 꽃 화분 팻말도 꽂아주고/ 알록달록 연등들의 향연과/ 거대한 와불상 사진도 찍어보고/ 새끼들 보내준 축하금으로 /몸보신 닭백숙 배부르게 먹어/ 데이트의 마무리를 짓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의 동행(뒷줄임)/ - ‘진주혼 데이트’ 가운데-

 

”노란 옷 입고 총총총/ 뛰놀던 막둥이/ 어느새 자라/ 모처럼 쉬는 휴무일/ 부모에게 힐링의 하루 / 선사해주었다. (가운데 줄임)/ 맛난 먹거리에 기꺼이/ 아빠 술벗 해주는 막내랑/ 살뜰히 엄마 챙기는 큰딸애/ 함께 먹는 점심/ 서로 챙겨주는 마음에 / 소복소복 배부르고 / 모터 보트 타며/ 해묵은 스트레스 / 강바람에 둥둥 / 날려 버리고(뒷줄임)/ -‘딸농사 대박’ 가운데-

 

멀리서도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선본사의 풍경소리에/ 누덕누덕 때 낀 마음의 얼룩이/ 조금은 엷어진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마다의 간절함을 담아/ 한가지의 소원만은 꼭 이뤄준다는/ 영험한 약사 여래불의 / 인자한 미소/ 흔들리지 않는 믿음 하나로/ 가파른 계단을 힘겨웁게 오르고/ 또 올라/ 천년의 미소에 기대어 /소원성취를 / 갈망하는 / 중생들의 끝없는 간구(懇求). - 팔공산 갓바위-

 

한 권의 시집 속에 무수한 시간과 공간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손선아 시인은 그속에서 웃고 울며 지난 세월을 보냈다. 이제 시인의 나이 예순한 살, 환갑(還甲). 그러나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 ‘사람 냄새’ 가득한 그녀의 시집은 마치 잘 구운 군밤처럼 구수하기 조차하다.

 

가족의 해체가 심화되어 가면서 노년의 삶이 외로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아우성인 시대에 《예순 한살 인생 그래프》에 점을 찍고, 이제 다시 칠순을 향한 첫발을 디딘 손선아 시인의 미래에 다시 탄생할 제3시집의 시어(詩語)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