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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역동적인 춤사위가 관중을 홀린 ‘일무’

종묘제례를 법고창신한 서울시무용단 공연을 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대극장의 까만 무대 위에 새하얀 문관의 옷을 입은 24인 무용수가 전통 문무와는 반대로 오른손에는 적(翟)을, 왼손에는 약(籥)을 들고 무대를 꽉 채운다. 아니 그 큰 무대에 24인의 무용수만으로도 꽉 찬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대 임금의 문덕을 찬양하는 '보태평' 음악에 맞춰 느리고 진중한 전통의 춤사위가 시작된다. 1막 일무연구 중 '전폐희문지무'가 공연되는 내내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감동의 연속이었다. 이 춤 만으로도 종묘제례가 왜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뽑혔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숨 가쁜 순간이었다.

 

 

 

‘줄을 지어 행하는 춤’이라는 뜻으로 ‘일무(佾舞)’라 부르는 이 춤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악'의 의식무인 일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온 정구호가 연출과 시노그래피를 받았고, 정혜진ㆍ김성훈ㆍ김재덕의 안무에 서울시무용단의 무용수들이 함께해 2022년 탄생했다. 세종문화회관 대표 공연으로 자리 잡은 '일무'는 초연 이후 끊임없이 변화해 2023년 재공연 매진, 뉴욕 링컨센터 초청공연 전회차 매진 등 의미 있는 기록을 써온 작품으로 이번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고고한 학 같은 문관의 춤 '전폐희문지무'이 끝나면 무관의 춤 '정대업지무'가 이어진다. 강렬한 주황빛 옷을 입은 18명의 무용수가 정대업 음악에 맞춰 화려하고 힘 있게 검을 휘두르고, 빙글빙글 돌며 칼군무를 현란하게 춘다. 검을 든 각도와 움직이는 모양, 그리고 속도를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잘 맞아떨어지게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무용수들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다시 막이 오르면 궁중 여인들의 춤 '춘앵무'가 펼쳐진다. 춘앵전은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정재(궁중무용)인데 봄날의 꾀꼬리가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종묘제례와는 달리 원래는 이 공연에서는 녹색의 앵삼을 입었으며 옷깃을 넓게 하여 한삼을 착용한 느낌이 들게 했다. 처음엔 네 명의 무용수가 나와서 춤을 추다가 점차 네 명씩 늘어나더니 마지막엔 스물네 명의 무용수가 추는 군무가 되었는데 원래 독무인 춘앵전과는 달리 매우 웅장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이후 펼쳐진 춤은 ‘죽무’와 ‘신일무’다. 일무가 가진 미학과 의미를 법고창신(法古創新)한 무대로, 현대무용에 가까운 춤사위들이 이어진다. 특히 ‘신일무’는 종묘제례 일무에서 들고나오는 도구는 없이 순전히 몸의 움직임만을 가지고 춤을 춘다. 무용수들이 입은 옷도 원래와 달리 흰색의 웃옷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 자주색 치마를 입었음은 물론 무용수가 한쪽이 길게 트인 치마 사이로 힐끗힐끗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은 순간 선정적인 느낌이 들게도 했다.

 

 

공연 내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작할 때 들리는 박(拍) 소리는 물론 편종(編鐘)과 편경(編磬) 그리고 축(柷)과 어(敔), 절고(節鼓) 등 다양한 타악기들의 소리는 웅장하고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어’는 호랑이 모양으로 등줄기를 따라 톱니 같은 형태를 가진 악기인데 이를 채로 훑으면서 내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신일무’에서 아쟁은 더블베이스로, 편경은 노래하는 명상주발이라는 ‘싱잉볼’로 소리를 내 음악감독을 맡은 김재덕의 법고창신하는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더하여 간간이 들리는 청아한 정가 소리는 공연을 훨씬 품격 있게 해준다.

 

옥수동에서 온 은수희(47) 씨는 “‘종묘제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거기에서 추는 ‘일무’를 재창작한 공연이 있다고 해서 왔다. 공연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감동 속에서 봤다. 그 많은 무용수가 같은 동작으로 또한 약간은 느낌이 다른 모습으로 춤을 추는 모습에서 우리춤의 진수를 느껴본다. 다만 ‘법고창신’한 것으로 보이는 ‘신일무’는 과장된 관의 모습 등 약간 이질적인 모습을 느껴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춤 공연이 있다고 해서 엄마를 따라서 왔다는 월촌초등학교 6학년 김아민 양은 “‘일무’는 줄을 지어 행하는 춤이라고 설명을 들었는데 정말 24명의 무용수가 줄을 지어 웅장한 모습으로 춤을 추는 것에 감동하였다. ‘일무’를 보면서 나도 저 춤을 추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을 것은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창작춤'의 산실로 전통춤의 재현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공연을 해온다는 ‘서울시무용단’이 수작을 빚어냈다는 느낌을 받은 공연이었다, 70분 동안 전통의 느림과 현대의 빠름이 한 무대 위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목격한 봄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