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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어떤 프랑스인의 목소리가 서울 거리에

너희는 손과 발을 독재자에게 자진해서 빌려주었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25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530년 프랑스의 귀족 집안에서 신동으로 태어난 라 보에티(Étienne de La Boétie)는 판사, 외교관, 시인, 학자로서 32년의 짧은 생애를 불사르고 떠났다.

 

그가 남기고 간 목소리가 21세기 서울의 거리에서 왕왕 크게 울린다.

내란 우두머리의 노예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어이없는 한국인들을 향해

그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아, 너희는 참으로 어리석다.

너희가 당하는 모든 불행, 너희가 입는 모든 손해는

많은 적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다.

모든 재난은 오히려 단 한 명의 적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재자가 바로 너희의 적이다!

 

너희는 아는가?

그가 이렇게 막강해진 것은 오직 너희가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임을.

너희가 단 한 명의 독재자에게 거대한 권력을 부여하고 허용하였으므로 그는

너희를 전쟁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이다.

 

독재자는, 거대한 도시의 여느 곳에 사는 보잘것없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뚱이 하나, 두 개의 손과 발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너희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너희는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을 독재자에게

자진해서 빌려주고 이로써 그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엿들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도시를 마구 짓밟지 않는가?

 

과연 어떻게 폭군이 너희의 양해 없이 마구잡이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사기꾼에게 너희들이 방조자로서 무언가를 바치지 않고

이 살인자에게 너희들이 부역자로서 시중을 들지 않는다면,

그가 너희에게 무슨 해악을 입힐 수 있겠는가?

 

너희는 약탈당하고 배신당하면서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수확하도록 너희는 밭에 씨를 뿌리고 있다.

그가 빼앗도록 너희는 열심히 집을 짓고 정돈하고 있다.

그의 복수와 탐욕을 위해서, 너희는 아들을 튼튼히 키워 전쟁터로 보내고 있다.

그가 쾌락에 탐닉하고 저열한 유흥을 즐기도록 너희는 악착같이 일하고 있다.

그래, 너희의 입에 단단히 재갈을 물릴 정도로 그가 강해지게 하기 위해서

너희는 자신을 약화시키고 있다.

 

오로지 자유롭게 살려는 욕구를 마음속에 지니기만 하면 즉시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를 창으로 찌를 필요도 없고 뒤엎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를 지지하지 않으면 족하다.

 

그러면 너희는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토대가 허물어지고 나면 제 무게에 못 이겨 저절로 붕괴되어, 산산조각나는

거대한 입상(立像)처럼 독재자가 그렇게 무너지게 될 광경을.”

 

2025년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난 지 한 달도 더 되었다.

진정 묻고 싶다.

성조기를 가슴에 두른 채 내란 우두머리를 옹위하는 어이없는 인간들은

왜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가.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