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지역 민속조사의 결과물인 《2024년 국립민속박물관 권역별 자유주제 민속조사 보고서》를 2025년 7월 31일 펴냈다. 박물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되어 전승되는 전통문화를 기록해 널리 알리고, 민속 연구의 진흥과 연구자의 연구 활동 지원을 위해 해마다 ‘자유주제 민속조사 과제’를 꼽아 민속 현장을 탐구하고 있다. 과제를 수행한 연구자들은 전국 구석구석의 민속문화의 단면과 조각들을 엮어 기록으로 담아낸다. 올해는 다섯 가지 주제의 민속문화를 선정해 다섯 권의 보고서로 묶었다.
제주굿에서 음식은 어떤 의미일까? 심방(무당)은 굿판을 둘러싼 여러 잡신까지 하나하나 불러내 굿상에 가득 쌓인 음식을 먹이고, 굿판에 참석한 사람들은 저마다 음식을 준비해 서로에게 권한다. 제주 해녀굿을 처음 본 연구자의 마음 한 가운데에 자리했던 것은 굿판을 풍성하게 하고 서로를 보듬는 열기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잘 먹여 보낼 굿판의 음식이었다. 서울 구석구석 산비탈 집과 골목이 철거되며 달동네라 불렸던 마을은 수십 층 아파트 촌으로 변해갔다. 수십 년 전 도심 개발에 따라 서울 변두리의 산자락으로 밀려났던 철거민들은 또다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또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제주굿의 먹거리는 굿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크게 주목되지 않았던 주제이다. 서울의 철거민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 보고서에는 이렇게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지만 주목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호남권에서 전승되는 모정문화와, 영남권의 농악인 달성의 농악, 경기지역이 중심이 된 길군악칠채까지 지역별로 전승 양상과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민속과 전통문화가 주제가 됐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다섯 가지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조선 후기의 마을회관 ‘모정’을 아시나요?
- 제1권, 송화섭, 《호남문화권의 모정문화와 장원례 술멕이》
모정(茅亭)은 호남지역 농촌마을 입구나 촌락과 평야 사이에 세워진 정자를 말한다. 예로부터 모정은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자 휴식과 놀이의 공간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 모정 앞마당은 모내기와 김매기를 마치고 두레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어주는 장소이자 농경의례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대식 건물의 마을회관이 건립되며 모정이 헐리기 시작했고, 기계화된 경작에 따라 모정문화 역시 점차 사라져 갔다. 이 책은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자 마을의 민속문화가 펼쳐지던 모정과 모정문화가 없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저자가 이의 계승을 위해 모정문화의 마지막 세대를 직접 찾아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모정의 역사문화적 내력과 가치를 기록한 현장 보고서이다.
달성군 다사지역에 전해내려오는 흥겨운 가락
- 제2권, 정모희, 《달성의 농악 –달성군 다사지역을 중심으로-》
농악은 우리 전통음악의 뿌리이자 농경사회의 대표적 의례 가운데 하나다. 농악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고 지역에 따라 가락과 연행방식이 달라 지역의 고유한 특징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나고 자라며 오랫동안 지켜보고 배워왔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지역의 농악을 대상으로 가락과 판제, 진법 및 연행 형태 등을 기록한 보고서다. 달성다사농악(12차진굿)에는 경상북도 금호강과 낙동강 부근 지역 특유의 춤과 가락,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사지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의식까지 탐구하며 지역의 전통문화유산으로서 다사농악이 생명력을 가지고 널리 전승되기를 바라고 있다.
드리고, 먹이고, 살린다: 제주 굿판에서 벌어지는 신과 음식과 사람들의 관계맺기
- 제3권, 김영희·김시연, 《‘먹는 것’으로 들여다보는 ‘제주 큰굿’》
제주굿에서 음식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공물이자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주굿의 기능과 굿판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굿판의 음식을 통해 탐구하고 기록한 보고서이다. 서울에 사는 저자는 1년여 동안 60회가량 제주 굿판에 참여하며 굿판의 음식이 상징하는 것과 신과 굿판의 참가자들의 먹고 먹이는 의례와 행위를 살펴보았다. 음식은 ‘먹는 것’이지만, 굿에서는 이와 연결된 행위와 주체로서 ‘먹이는 것’ 역시 강조된다. 음식으로써 굿판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제주굿 연구가 제차(第次)와 형식, 무속으로서의 특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제물로서 먹거리와 굿판에서의 맥락을 분석하여 제주굿을 이해하고자 했다.
길굿의 지역적 특색과 길군악칠채에 대한 상세한 설명
- 제4권, 시지은, 《길군악칠채의 분포와 지역적 성격》
길을 걸으면서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연주한다는 뜻의 길군악칠채는 길굿이자 농악의 다양한 장단 가운데 하나다. 지역마다 농악의 가락과 연행방식이 다르듯이 길굿 또한 지역에 따라 이름과 장단의 형태가 다르다.
길군악칠채는 경기도를 비롯하여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길굿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전승되는 길굿 가운데 그 분포가 가장 넓다. 이 책은 연행지역을 중심으로 길굿의 유형을 구분하고 길군악칠채의 전승 지역에 따른 지역적 차이점과 함께 길군악칠채에서 사용되는 말을 분석함으로써 길굿의 형태와 연희적 특징을 두루 살피고자 했다. 특히 각 지역의 농악 보존회에서 전승, 연행되는 장단과 구음의 사례를 설명하고 연행 장면이 담긴 사진을 수록함으로써 길군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상계동 달동네 사람들의 이주와 정착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 제5권, 김태우·류영희, 《서울의 철거 이주민 정착지 –상계동 양지마을·희망촌 도시민속지-》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 따라 재개발이 진행되며 수많은 철거 이주민이 생겨났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팽창하며 재개발은 더욱 확대된다. 이 책은 상업지역 재개발로 인해 새로운 지역에 정착했지만, 주거지역 재개발로 정착지에서 또다시 밀려날 위기에 놓인 철거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울 상계동 양지마을과 희망촌은 1960년대 후반 낙원시장과 청계천 복개공사로 내몰린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이들은 정착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며 마을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주택 노후화와 생활여건이 낙후되며 재개발이 계획되자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곧 떠나야 한다. 이들의 이주와 정착 과정, 생업과 종교, 생활상 등을 두 명의 연구자의 시선으로 꼼꼼히 담아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2년부터 권역별 자유주제 민속조사 보고서 발간 사업을 추진하여 지역 민속을 발굴하고 연구자의 저술활동을 지원하여 다양한 민속 연구자료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마다 과제 공모를 추진하여 우리 민속의 현장과 생활문화를 국민에게 소개하고자 하며,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는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www.nfm.go.kr)에서 원문을 내려받아 읽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