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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442. “징분질욕”이란 네 글자를 써서 곁에 붙여둔 강석덕

   

“강석덕(姜碩德)은 성품이 청렴하고 의로우며 인품이 빼어나고, 옛 것을 좋아하였다. 과부(寡婦)가 된 어머니를 지극히 섬겼으며, 배다른 형제와 매우 화목하였다. (중략)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할 적엔 매우 치밀했으며, 집에 있을 때는 주변에 책을 놓고 향(香)불을 피우고 단정히 앉았으니, 고요하고 평안하여 영예를 구함이 없었다. 손수 ‘징분질욕(懲忿窒慾)’이란 네 글자를 써서 자리 곁에 붙여두고, 손에서는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위는 세조실록 5년(1459) 9월 10일자에 나오는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의 졸기(卒記)입니다. “졸기”란 한 인물의 간결한 평가이지요. 조선 초기의 유명화가 강희안(姜希顔)과 뛰어난 문인 강희맹(姜希孟) 형제의 아버지인 강석덕은 스스로 “징분질욕(懲忿窒慾)” 곧 “분노(忿怒)를 참고 사욕(私慾)을 억제함”이라는 좌우명을 철저히 지키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병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러 아들에게 글을 읽게 하고는 이를 듣고 있을 정도였지요. 또 아들에게 말하길 “내가 먹은 나이가 60세가 되었는데, 비록 명예나 사사로운 이익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지마는 일을 행하는 데 계략과 사기(詐欺)가 없었으니,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벼슬아치들에게 이런 강석덕을 본받으라 한다면 무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