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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474. 학의 깃을 자르지 않은 아름다운 재상 박순

   

“한 쌍의 학을 키웠는데 그 처지를 가엾게 생각하여 올가을에 깃을 잘라 주지 않았더니 여섯 깃털이 모두 장대하게 자랐다. 한번은 날아올랐는데 곧 되돌아왔다. 내가 이에 감동하여 노래를 짓노라.”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헌,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을 15년이나 지낸 박순(朴淳, 1523∼1589)이 쓴 글입니다.

예전에는 학을 집에서 키웠던 모양입니다. “성급은 성혼(조선 중기의 학자)의 사촌 아우인데, 학을 키우는 일로 생계를 삼았다. 스스로 칭하기를 ‘훈학옹(訓鶴翁·학을 훈계하는 늙은이)’이라 하였다.”라고 대제학을 지낸 이정구는 기록했습니다. 그럴싸하게 “훈학”이란 말을 썼지만 실은 학을 관리하는 일꾼이었지요. 이처럼 학을 관리하는 일꾼이 있을 만큼 한양 벼슬아치들 사이에 학을 집에서 기르는 문화가 어지간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위 글에서 보면 박순은 날개가 다 자랐으니 날아가야 마땅한데 되돌아왔다며 감동스러워 합니다. 보통 학을 기를 때는 학이 날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깃털을 잘랐지만 박순은 날아갈 수 있도록 깃털을 자르지 않은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 냄새가 나던 박순이 대제학으로 있을 때 퇴계 이황이 예문관제학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자 박순은 “나이 많고 학식 높은 선비는 예문관제학으로 아랫자리고, 도리어 후진 초학인 제가 그 위의 대제학에 있으니,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저와 이황의 관직을 바꿔 주시옵소서.”라며 임금에게 간곡하게 청했지요. 결국 자리바꿈을 허락받았지만 이황이 늙고 병들어서 그 직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퇴했던 아름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순은 대사간 시절 당시 임금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윤원형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시켰던 올곧은 인물이었지요. 이 시대에 어디 그런 사람 냄새나는 훌륭한 공직자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