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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표준말, 문화어 이야기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33=문화어 북녘을 방문해 만난 주민들에게 '괜찮습니까'라고 물으면 금방 '일없습니다'란 대답이 나온다. '무슨 일이 없다는 거지' 어리둥절할 지 모르지만 북에서 '일없다'란 말은 '괜찮다'는 뜻이다. 이처럼 분단 반세기가 지나면서 남과 북의 언어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했다. 북에서는 도시락을 곽밥, 주차장을 차마당, 각선미를 다리매, 주먹밥을 줴기밥, 맞벌이세대를 직장세대로 부른다. 또 노크는 손기척, 레코드는 소리판, 원피스는 외동옷, 투피스는 동강옷, 삐삐는 주머니종, 아파트는 살림집 등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쓰고 있다. 현재 이북말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60년대 후반 만들어진 문화어로 지칭된다. 북한은 문화어에 대해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 각 지방의 모든 우수한 말을 받아들이고 고유말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적 특성을 살리면서 현대적 요구에 맞게 발전된 말"이라고 정의한다. 북은 1966년 5월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 서울말을 이르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평양말을 표준어로 정했다. 또 김 주석은 10여 년 전에 고유어와 한자어의 뜻이 같을 때는 고유어를 사용하며 한자어와 외래어는 되도록 우리말로 고쳐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김 주석은 "방언(사투리) 등에서 좋은 말을 자꾸 찾아 쓰라"고 지시했으며 자신이 직접 늪가스를 메탄가스로, 백당나무를 흰접시꽃나무로 쓰게 했다. 이에 따라 북에서는 2만 5천 단어의 한자어와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문화어로 정착시켰다. 여기에다 김일성 주석의 문풍을 따라배우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김 주석이 항일유격투쟁시기 많이 사용한 함경도 사투리가 가미돼 있다. 문화어의 특징은 한자어와 외래어는 한글고유어로 대체하고, 정치용어는 한자어라 할지라도 수정을 금하며, 과학·기술용어 및 대중화된 한자어, 외래어는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문화어에는 정치용어나 과학기술용어, 굳어져 버린 한자어나 외래어 등을 뺀 대부분의 한자어나 외래어가 민족 고유어로 대체됐다. 북은 평양말이 우리 민족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사용하기 편리한 말부터 학술용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상과 현상을 민족글자로 표기한다는 점에서 주체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은 우리말의 뿌리를 고구려말로 잡고 있다. 고구려말이 고조선 시기의 조선말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언어였다는 것이다. 북의 언어학계는 삼국시대의 우리 말이란 고구려 말이고 백제와 신라의 말이란 기껏해야 남쪽 변두리 지역에서 쓰인 방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북은 고고학적 유물과 역사자료들을 통해 우리 민족어의 유구성과 단일성이 증명된다고 주장한다. 삼국시대에는 우리 말이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갈라져 쓰였지만 그 언어들 사이에는 어디까지나 지역적 분산성에 의한 방언적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같은 계통의 단일한 조선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북은 민족어의 구조적 특성에 관련해 "우리 말은 원시시기의 말, 고대시기의 말을 분석해 보아도 그 어떤 비슷한 갈래나 다른 갈래의 말이 섞여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며 언어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삼국시대에 "삼국간에 과연 통역없이 말이 통했을까?"라는 질문에 북은 "사투리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는 대답을 내놓은 셈이다. 북은 민족어의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용어나 대중화된 외래어 한자어 외에 대부분 우리말로 고쳐 사용토록 강조하고 있어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는 남의 언어습관과는 대조를 이룬다. 다만 북은 90년대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제공용어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술분야는 물론 스포츠, 외교분야 등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들을 받아들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와 교류가 잦은 스포츠부문 가운데 축구경기에서 ▲손다치기→핸드(hand) ▲11미터벌차기→패널티 킥크(penalty kick) ▲구석차기→코너 킥크(corner kick) 등으로 사용한다. 또 권투경기는 ▲경기시작→복스(box) ▲서로 상대방을 떼어 놓을 때→쁘랙(break) ▲경기를 멈출 때→스톱(stop) 등 국제공용어를 사용한다. 이와 함께 전자계산기는 콤퓨터(computer), 경자기원판은 하드디스크(harddisk), 기계적 장치부분은 하드웨어(hardware), 프로그램 관련 부분은 소프트웨어(software)로 사용한다. 글자전송기는 텔렉스(telex), 글자뿐 아니라 악보나 그림, 문건 등을 전송하는 현대적 기계수단은 확스(fa x)로 부른다. 또한 최근 북은 어휘사용의 혼란을 막기 위해 부분적으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문화어 학습' 등은 "학생들이 한자어의 뜻을 모르고 망탕하게(되는대로 마구) 쓰는 현상이 있다"면서 한글전용에 따라 학생들이 한자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비슷한 한자를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북의 학생들이 자주 혼동해서 사용하는 한자말로는 '막연한 친구'(막역한), '전과목에 전통하다'(정통하다) 등이며, '노력'의 '힘쓸 노(努)'를 '수고로울 로(勞)'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남과 북의 언어차이는 단어사용보다도 맞춤법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북은 1954년 '조선어 철자법'을 제정해 종래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했다. 즉 전통적인 24자모에 ㄲ ㄸ ㅃ ㅆ ㅉ 등 된소리 5자와 ㅐ ㅔ ㅚ ㅘ ㅝ 등 총 16자를 추가해 40자모로 만들었으며 두음법칙을 부정해 '내일'을 '래일', '여성'을 '녀성'으로 표기토록 했다. 자모순차도 'ㅇ'을 'ㅅ'다음이 아닌 맨 마지막에 놓았고 '었'을 '였', '깃발'을 '기발' 식으로 일부 단어철자법도 고쳤다. 또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일부 외래어에 대해서도 '탱크'를 '땅크', '캠페인'을 '깜빠니아' 등 러시아·일본식으로 표기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세월동안 남북한간에는 언어마저 분단되는 심각한 현상이 나타났다. 남북의 언어 이질화를 어느 한쪽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북의 언어정책 중에서 고유한 우리 말을 살리고 이를 생활화한 점은 남이 분명히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의사'를 '닥터', '아내'를 '와이프'를 부르는 등 신문 잡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조차 좋은 우리 말을 놔두고 외래어를 사용하는 남의 현실은 북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남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이 남북간 언어이질화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만이 아니라 우리 말을 옳게 살려쓰기 위한 남쪽 당국과 국민들의 노력도 함께 필요한 것이다. 글쓴이 : 고지수 창원대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현재 "현대사자료실" 상임연구원 석사논문 => "90년대 북미관계전개과정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