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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에 붙은 하나부사 일본공사 이름을 빼라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 (29)]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최 참판 댁의 기둥 군데군데 초롱이 내걸려 있고 행랑의 불빛도 환하게 밝었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초롱이라고 하면 왠지 귀여운 등불이 연상된다. 전기가 없던 시절 불을 밝히는 도구였던 초롱은 꽃이름에도 붙어 있는데 금강초롱이 그것이다. 꽃모양이 흡사 신랑신부 가마타고 시집가던 날 들던 청사초롱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정겹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금강초롱 :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20~40cm이며, 잎은 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이다. 여름에 초롱 모양의 자주색 꽃이 가지마다 몇 송이씩 핀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산지(山地)에서 자라는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지에 분포한다. ≒금강초롱꽃. (Hanabusaya asiatica) "라고 해서 하나부사 학명이라는 것은 영어로만 살짝 써두고 있다. 


 

 

                    ▲ 학명이 하나부사인 금강초롱 1 / 사진작가 박효섭 제공


금강초롱이라고 요즈음 부르는 이 꽃이름은 화방초(花房草,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화방초는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1842-1917)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25살 때 유럽과 미국을 순방한 경험을 토대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시기의 조선주재 초대공사이다 


하나부사가 조선 땅을 빈번히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35살 때로 고종실록 14(1877) 기록에 보면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일본 외무대승(外務大丞)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가 호남 개항지대의 수심(水深)을 측량한 뒤에 이어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개항지역을 지적하는 것은 비록 약조(約條)에 들어 있긴 하지만 통상하는 일로 수도에 주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허락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래부(東萊府)에서 여러 번 타일렀지만 그들은 기어코 올라오려고 하는데 우호(友好)를 지속시키려면 또한 강하게 거절하기도 어렵습니다라는 보고가 있다 


 

 

▲ 조선 초대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 금강초롱에 그 이름이 학명으로 붙어 있다.

물속깊이 까지 측량하고 다니면서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 일제의 간악함에 조선정부는 골머리를 알았을 것이다. 이후에도 하나부사의 조선 내 행적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 43번이나 상세히 나와 있을 만큼 드나드는데 나중에는 순종을 시켜 훈장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아름다운 꽃에 일본 초대공사 하나부사의 이름이 붙었을까? 금강초롱에 하나부사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타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3)이다. 그는 동경제국대학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조선에 건너와 조선식물연구라는 명목으로 방방곡곡의 식물을 조사하게 되는데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의 조선연구가 모두 그러하듯 식물연구 역시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금강초롱 같은 조선의 꽃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카이는 금강초롱 말고도 조선총독 이었던 테라우치(寺內正毅 1852-1919)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사내초(寺內草) 외에도 섬백리향(thymus przewarskii nakai), 섬나무딸기, 고로쇠나무, 회양목, 고들빼기, 도라지 등 헤아릴 수 없는 조선의 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학명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나카이 말고도 조선의 꽃이름에 일본 식물학자 이름이 붙은 것으로는 등나무의 마츠무라(matsumura), 씀바귀의 마키노(makino), 오동나무의 우에키(ueki) 등 그야말로 조선땅은 일본 식물학자들의 실적 남기기에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 학명이 하나부사인 금강초롱 2 / 사진작가 조성대 제공

 

그에 견주면 한국 특산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on)1907년 제주에서 발견한 어니스트 H 윌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915년 종소명을 코레아나라고 이름붙인 것을 보면 일본 식물학자의 양심이 확연히 드러난다금강초롱은 1902년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 근처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경기도 가평군 명지산에서도 금강초롱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다.  

1997년에 산림청 선정 희귀 멸종식물로 지정된 금강초롱은 8~9월에 연한 보라빛 꽃이 청사초롱 모습으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지만 국제적인 꽃이름은 아직도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가 새겨져있어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