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경제=유광남 작가] 윤자신이 궁금하여 물었다.
“이순신과 김충선이 여진을 입에 올렸단 말입니까? 그들이 어떤 말로 상감마마의 어심(御心)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까?”
“근래의 여진에 대해서 아시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가 여진의 전 부락을 통일시켜 통치한 이후에는 별다른 조짐이 없는 줄 아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선조 이연은 이순신과 김충선이 땅바닥에 낙서했던 글귀에 대해서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여진과 왜적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분명히 뭔가 내막이 있었다. 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심 많은 조선의 왕 선조를 자꾸만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비변사를 통하여 북방의 행적을 탐문하시오.”
선조 이연은 절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반드시 그들이 휘갈긴 낙서의 진의(眞意)를 밝혀내고자 했다.
“황공하옵니다. 신 윤자신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어디로 간다고?”
이순신의 둘째 아들 울은 김충선의 소매를 잡았다. 이울. 김충선과 동갑의 나이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여진으로 가야한다.”
김충선의 선언에 울은 별로 놀라운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너만 보낼 수 없다.”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김충선은 담담한 미소를 보였다.
“아버님을 보필해야지.”
“형님이 계신다.”
“넌, 다른 임무가 있지.”
이울은 김충선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이놈은 참 멋진 눈매를 지니고 있다. 사내다우면서도 때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눈빛이 동공에서 뿜어진다. 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선이다.
“무엇이냐? 내가 해야 할 일이?”
“각 의병진을 둘러봐라. 가능한 빼 놓지 말고 각 도의 오 백 명 이상의 의병들을 규합해야 한다. 금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과 그의 차남 고인후, 유생 유팽로와 안영을 추모하는 의병들을 소집해. 또 2차 금산성 전투에서 전원 몰살당했던 의병장 조헌과 승려 영규대사를 추앙하는 세력들을 소집하고. 그리고 경주성에서 전사한 의병장 정세아와 그의 막료 이득번의 남아 있는 의병들도 찾아내라.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김천일과 그의 아들 김상건, 역시 진주성에서 산화한 의병장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의 추종 의병들도 모조리 모아라.”
이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충선이 호명한 그들은 임진 전쟁에서 생사를 돌보지 않고 의병들을 모아서 궐기한 용맹스런 의병장들이었다. 비록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전사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충절(忠節)과 용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알았네.”
저절로 공경심이 솟아나 반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